힙한 문장을 쓰고 시퐁

이슬아 산문집 「끝내주는 인생」(디플롯, 2023)을 읽고

by 담담댄스

대뜸 힙한 문장을 써보고팠다.


그게 그렇게 단시간에 되는 일이겠냐만은 난 노력의 천재니까. 이것도 노력하면 되지 않겠어?


요즘 들어 글쓰기 싫어진 이유. 너무 고루하고 지리멸렬한 문체, 다정함을 가장한 주절주절 설명투, 참신할 것 없는 소재, 기타 등등. 내 눈에도 구린데 남이라고 읽고 싶겠는가. '내글구려'병은 언제쯤 나을까 모르겠다. 아냐, '내글구려'는 병증이 아닌 현상인 걸? ㅠㅠ


힙한 문장. 문장이 힙하다? 이거이거 모순형용 아냐? 문장은 깊어야지 힙해서 쓰나. 텍스트힙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나돌았다고 한다. 텍스트가 힙할 수 있는 것인가. 아, 알겠다. 얼마나 텍스트를 읽지 않으면 텍스트 읽는 게 힙해졌겠어. 성찰, 통찰 이런 게 아니라 있어빌러티, 과시, 이런 식으로도 텍스트에 접근할 수 있구나.


텍스트힙은 사실 힙한 문장과는 무관하지만, 어찌됐든 읽고 나니 힙하고, 읽는 그 자체로도 힙한 문장을 쓰고 싶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당대의 가장 힙한 문장가를 찾아 나서는 것. 그 사람의 문장을 잘 우라까이해서 쓴다면 나도 힙한 문장을 써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선택한 작가가 이슬아다.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왠지 모르게 내키지 않았던 이유는 그녀가 한국 문학의 미래라서? '일간 이슬아' 같은 프로젝트를 나도 할 수 있었는데 먼저 해버려서? 글로벌리 글로 벌어먹고 사는 삶을 살게 돼 부러워서?




에이, 이런 작가 좀 알지. 팔리는 글을 쓰려니 스타일만 추구하고 깊이는 없을 거야


그동안 이런 식으로 치부해 버렸을 게다. 하지만 이렇게 추앙받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적수다> 출연분을 보니 생각보다 그렇게 모나지 않은 성격 같고, 생각도 깊고, 말도 잘하고, 무엇보다 위트가 있어 보였다. 나는 위트 있는 사람을 참 좋아하니까. 당신도, 좋아해 볼까 ㅋㅋㅋㅋㅋㅋ (감히? 니가?)


질투는 나의 힘. 맞아, 나도 당신처럼 힙한 문장을 써보고 싶어!


그러려면 당신이 어떤 글을 쓰는지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최신작 「끝내주는 인생」을 골랐다. 이 책을 읽어보니 왜 그녀의 글이 많이 읽히는지 감이 좀 잡혔다. 그녀에게 텍스트힙의 선두주자라 수식어를 붙였던 내가 이내 머쓱해졌다. 그녀는 아마 자신의 문장이 힙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을 원치 않으리라. 그녀도 많은 작가들처럼 괴로워하며 쓴 글들이 그저 많은 이에게 닿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지금부터 나는 그녀의 투를 베껴, 최대한 힙해 보일 수 있도록 이 책의 감상과 그에 대한 단상을 써보겠다. 이 글의 끝에 다다르면 계속 이렇게 써도 될지, 맞지 않는 옷인지 알 수 있겠지.






#솔직함에 관하여


나는 꽤나 솔직한 편이라 생각하지만 실로 그런가 돌아보면 아니다. 만성 장트러블로 인해 시도 때도 없이 화장실을 들락거린다든지, 북한군처럼 과장된 걸음걸음마다 방귀를 몰래 나눠서 흘려보낸다든지, 대차게 차이고 오는 길에 너무 울어서 비오는 줄 알고 와이퍼를 켰다든지. 대관절 이런 얘기를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에피소드는 무척이나 놀라웠다. 너어어무 소소해서. 하지만 극도의 솔직함이 있었다. 표현에도 거리낌이 없다. 이를테면 '좆됐다'라는 말을 그대로 쓴다든지, 틴더 앱으로 사람을 만나본 적 있다든지, 야한 것은 좋은 것이라든지. 실수나 치부를 감추고 아주 나이스해 보이는 삶을 짓는 대신, 허접하고도 욕망적인(?)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공감받는 일을 택한 용기야말로 힙했다.


다만 그녀는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선뜻 나서지 못할 특별한 경험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었다. 동료 작가와 새로 태어난 기념으로 처음 만나 포멀한 식순에 의거한 생일잔치를 벌이거나 초딩들만 잔뜩 있는 태권도장에 등록해 덩그러니 줄넘기를 한다는 식으로. 소박하지만 남다른 경험에서 소박하지만 남다른 통찰이 잔잔바리로 탁탁 치고 나온다. 이게 뭐 뒤통수를 칠만큼 대단한 통찰이라 보긴 어렵지만, 책을 덮는 순간까지 담백하면서 여운이 남았다. 이게 힙인 건가.


나도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나눈 얘기가 정말 재밌는데, 글로 한 번 옮겨볼까. 음~ 안돼. 일단 미풍양속에 저해된다. 그리고 비도덕적, 비윤리적 발언들로 사회적인 저항을 받게 될 것이다. 까딱하면 쇠고랑도 찰 수 있다규 흠흠.



#섹스에 관하여


흠흠. SEX. 말하기도 어색한 그 한 단어. 어휴, 갑자기 뭔 얘기를 하냐. 아! 다들 오해 마시길. 이 책에서 이슬아 작가가 섹스에 대해 엄청난 것들을 풀어놓은 건 결코 아니다. 별얘기 안 했다. 그저 누군가와 잤다는 얘기를 너무나도 쉽게, 그래서 쿨해 보였다는 자체가 좀 힙했을 뿐이다.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와, 2013년 프로그램이니 벌써 10년도 더 됐다. 이땐 나이도 서른 즈음이니 얼마나 혈기왕성했던가. TV에서도 저렇게 음담패설을 해대는데, 사회적 분위기가 그랬다고 변명해 본다. 그때의 나는 정말 야한 이야기를 좋아하고 또 잘했다. 야한 이야기는 선을 넘어버리면 질이 확 떨어져 버려 재미가 없다. 선을 넘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이어갈 수 있는 수준으로 해야 모두가 열광한다. 어딜 가나 내 섹드립은 환영받았다. 그땐 그래도 되는 나이라고 생각했다.


영포티가 돼 버린 지금, 섹스와 성담론(이라고 하기엔 거창한 음담패설들)조차 왠지 모르게 20대와 30대의 전유물 같아 꺼려진다. 40대 기혼남에게 섹스는 더 이상 핫한 대화소재가 아니다. 정말 내 주위에, 내 또래 아무도 섹스에 관심이 없다;;; 부부 사이의 일이라 서로 묻지도 않을뿐더러 (부부 사이가 아닌 일이라면 아주 조금은 궁금해진다) 가진 건 별로 없지만 잃을 건 또 있는 입장이라, 그런 대화소재에 함부로 발들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진다. 아니, 아예 입꾹닫이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정말 질펀하게 야한 이야기 한 번 늘어놓겠다. 담담댄스말고 음탕댄스로서.



#에 관하여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본문보다 에필로그였다. 이 챕터는 「끝내주는 인생」의 편집자, 김진형 님에 대한 헌사다.


몇 달간 '김진형 선생님께'로 시작하는 메일을 수도 없이 썼다. 아무리 깊은 새벽에 메일을 보내도 그는 곧바로 읽는다. 왜 안 자는 걸까 싶지만 나 역시 아직 일하고 있으니까 얼추 이해가 된다.

- 「끝내주는 인생」 P. 221 中


문득 워라밸을 떠올렸다. 나에게는 일종의 워라밸 강박이 있다.


일과 삶을 분리시키지 않는 모든 행위는 악(evil)이야


퇴근 이후에는 절대로 업무 연락을 하지도 받지도 않으려 애썼다. 사무실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직장인 담담댄스가 아닌, 자유인 담담댄스니까. 그런데 이 글을 읽고 미세하게 클리크를 조정했다. 나는 나의 일의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선택권을 넘기면 된다고.


요즘 세대의 힙은 일이 삶이 되기도 하고, 삶이 일이 되기도 하나 보다. 나는 그동안 배려라는 이름으로 상대방의 선택권을 뺏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진정한 배려는 어느 때고 연락하더라도 그 답을 종용하지 않는 것, 너의 시간을 네가 통제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넘겨주는 것, 일이 신나고 즐거우면 꼭두새벽에라도 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게 힙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문득 이슬아 작가의 인스타 스토리를 보았다. 자유로운 몸짓으로 비트에 맞춰 춤을 추고 있더라. 정말 부러웠다. 화면에는 내가 간절히 추고 싶었던 막춤이 있었거든. 구애받지 않은 몸짓, 하지만 그 세련됨. 어쩔 거야.


그렇구나.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용기. 그게 가장 힙한 거구나


그녀의 글이 춤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토록 충만한 자기애라니. 좋아하는 것이 명확한, 아니 명확하다고 거리낌 없이 선언하는 글이야 말로 진정한 텍스트힙이다.


완전한 존재에 사랑이라는 말을 쓸 수 있을까. 대개는 존경, 경탄, 경외 이런 것들이 어울린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은 대개 불완전한 것들이다. 내가 채워주거나 돌봐줘야만 치명적인 불완전함을 걷어낼 수 있는 이들, 그런 것들. 결점투성이에 영원할 수도 없고 너무나 유한한 너를, 나를 사랑할 수 있을 때 힘껏 사랑하겠다는 그녀의 다짐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LOVE is HIP~♡




P. S. 아, 이 글도 결국 그렇게 힙하지는 않은 것 같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건가 보다. 힙! 힙! 머리, 어깨, 무릎, 힙! 아아아아아 나도 힙한 문장을 쓰고 시퐁시퐁. 힙한 문장가가 되고 싶다고!!! 귀 뒤에서 나는 그런 쿰쿰한 냄새같은 영포티 글 껒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