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탐험, 신비의 세계

우~아~우아 우와~~

by 담담댄스
이 아이는 어쩜 누굴 닮아 이리도 영특할고?


메타인지 성애자인 나조차 제어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면, 자식놈의 영특함을 마주했을 때다. 이 아이는 무려 300,000,000: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인재다.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경쟁률을 볼 때마다 늘 궁금했다. 급기야 회사 동료들에게 물어본 적도 있다.


ㅡ 우리 애 진짜 말도 안 되거든? 어떻게 나 따위에게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애가 나온 건지 모르겠어

ㅡ 맞아요, OO이 정말 너무 귀엽잖아여 (아이가 예쁘거나 잘생기지 않으면 귀엽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ㅡ 아니 근데, 이게 경쟁률이 거의 뭐 몇억 대 일 수준이잖아. 그러면 이게 가장 빠른 놈이 이기는 건가? 아니면 가장 우월한 놈이 이기는 건가?

ㅡ 어? 제가 안 그래도 궁금해서 알아봤는데요.(넌 싱글인데 왜?) 빨리 간다고 능사가 아니래요. 약해 빠진 녀석들은 다 튕겨져 나가고 제일 우월한 놈만 살아남는 게임이래요. 그래서 우리 모두는...... 진짜 대단한 거예요.


후배님, 틀리셨네요. 하지만 셋복만큼 탁월한 게 잘 없으니 그런 걸로 칠게






내가 우리 아이에게 반하는 순간은 무려 '부사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때다. 부사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의사소통의 단계를 넘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단계라는 의미다. 이를테면 느닷없이 라든지, 눈깜짝할새 라든지, 도대체나 대체로 같은 것들.


나는 우리 아이가 부사어를 사랑하고 유난스럽게 구사할 줄 아는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마음이다. 자신의 감정을 가장 정확한 언어로 길어 올리려면 실로 부사어를 잘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왜 문장에서 형용사와 부사를 덜어내면 좋다고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형용사나 부사는 비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형용사나 부사는 '왜'나 '무엇을'보다는 '어떻게'의 언어다. 앞으로 우리 아이가 맞을 세상은 점점 더 효율을 추구할 것이고, 무엇과 왜만 해결되면 더 이상 아무것에도, 아무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을지 모른다. 그런 세상 속에서 다른 사람이 어떤 고민을 안고 사는지, 그 고민을 알게 된 이상 사람들을 어떤 태도로 맞을지, 그 관계 속에서 스스로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지.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발현했으면 좋겠다. 끊임없이 부사어를 구사하면서.



너의 눈, 코, 입,
날 때리던 니 손길,
정말정말 작은 발가락까지 다아아~♬


유전자는 정말 신기하고도 신비롭다. 얼굴엔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지만 나와 아이는 진실로 발가락이 닮았다. 나는 칼발이라 발가락 선이 참 아름답고 야무지게 떨어지는데(와이프보다 유일하게 예쁜 구석이랄까) 아들놈 발가락이 딱 그렇다. 그래서 바깥으로 탐스럽게 톡 튀어나온 발가락 살들을 오물딱조물딱 만져댄다. 몹시 몽글몽글해진다.


또 머리카락이 날 닮았다. 다행히 풍성하고, 힘이 좋다. 지금 내 옆에서 나와 같이 책을 읽고 있는데, 위에서 내려다본 머리카락이 참으로 빽빽하니 곱다. 그래,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내가 스무 살부터 꿈꿔온 장면이 실현되는 것이다. 벅차오른다.


얼굴은 어쩔 수 없다 쳐, 남자는 머릿발이야


겨울엔 침대에서 이불 덮고 책 읽는 게 최고지!


를 부르짖으며 나를 침대로 끌고 들어오는 너. 이런 순간은 점점 줄어들 거다. 아이는 요즘 방문을 닫고 혼자 노는 시간을 즐기기도 한다. 서운함은 1도 없다. 언젠가는 곁을 떠나 훨훨 날아가겠지. 애비보다 더 높게 더 멀리. 날지 못한대도 상관없다. 그저 누군가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걷기만 한대도 참 좋을 것이다.


좋아하는 것이 명확하고, 그 명확함을 정확한 언어로 구사하는 아이. 그 언어로 하여금 많은 이의 환심을 사고, 매력적일 아이. 내가 없어져도 그 매력 덕분에 좋은 사람들이 곁에 많을 아이. 바라는 건 많아지는데 물려줄 게 없어 미안하다.


뭐 어쩌겠니, 네 팔자인 것을. 아빠도 물려받은 게 많지 않지만 잘 살고 있단다. 부디 너도 그래주겠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떻게든 이번 생에서 빚은 다 해결해 놓고 갈게 :)


비록 자고 싶을 때 잠들 수 없고, 훌쩍 떠나고플 때 떠날 수 없고, 쓸모없는 것들을 하고플 때마다 나중을 기약하는 삶이 됐지만, 유전자의 신비 하나면 이 모든 것들이 괜찮다. 맥락 없이 똥! 오줌! 방귀! 얘기만 해도 자지러지게 웃는 이 아이를 그저 오래오래 곁에서 지켜보고 싶다.






작년 기준 수능 응시자 수는 463,486명. 서울대학교 입학 정원은 3,497명이니 이 경쟁률이 132.5:1이며, 남자 초등부 축구선수로 등록된 인원이 현재 기준 12,102명. 이 중 국가대표를 보통 23명 정도 선발하니까 526:1 정도 경쟁률이다. 300,000,000:1은 비현실적인 수치다.


이렇게 귀한 인재를 결코 박하게 대해서는 안 될 일이다. 방방 뛰다가 물컵을 엎어도, 하얀 벽지에 잭슨 폴락처럼 형형색색의 크레파스로 예술작품을 만들어도, 나갈 시간이 다 돼도 옷을 입지 않겠다며 요리조리 도망을 다닌대도, 절대 화를 내서는 안 되겠지. 휴~


300,000,000:1의 경쟁률을 뚫었기에, 모든 아이는 위대하다. 우리는 모든 아이였다. 그래서 우리도, 위대하다. 가끔 이런 단순한 삼단논법조차 잊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