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안물안궁! 글쓰기가 뜸한 이유

by 담담댄스
매일의 목표:
회사에선 70%의 에너지만 쏟고 나머지는 집에 갖고 퇴근할 것


나는 아직도 배임과 횡령의 차이를 명징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이런 목표가 회사 입장에서는 횡령인지 배임인지 잘 모르겠다.(사전을 찾아보니 배임 쪽에 가까운 것 같다) 늘 월급값보다 모자라게 일한다는 자각을 하면서도 회사에서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집에 가는 것이 점점 어리석게만 느껴진다. 행복이 있는 곳, 있어야 할 곳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 것이야말로 감정적이지 않은,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 아니던가.


마음으로야 가정과 일터 중 가정에 더 큰 에너지를 쏟고 싶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새해를 맞아 이런저런 사정으로 업무는 과중되고, 조직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그래서 굳이 7:3이라는 비중을 심리적으로라도 세팅해 둔 것이다. 그래야 녹아웃(Knock-out)되지 않은 채로 퇴근을 맞을 것만 같아서.


최근의 경험을 통해, 일상 속 루틴이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나의 생활을 꽤나 단단히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하루는 생각보다 아주 정교하게 세팅이 돼 있었다. 작은 루틴이 깨지면 리듬이 무너지고, 리듬이 무너지면 하루가 흔들리는 경험을 오랜만에 했다. 이렇게 흔들린 하루는 더욱 강한 회복탄력성을 요한다. 짧게는 이틀에서 길게는 일주일 동안, 평소보다 더 큰 공력을 들여야 간신히 정상 루틴으로 돌아오고야 마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대충 세수와 양치, 면도만 하고 출근길에 오른다. 대략 6시쯤이다. 출근은 주로 지하철을 이용하는데 10분 단위로 에너지 소모의 레벨이 달라진다. 늘 타던 시간보다 10분만 늦어져도 혼잡함이 가중돼 길바닥에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버리게 되더라. 일찍 일어나는 힘듦이 출근시간 동안 빨리는 기를 감당하고도 남는다는 사실을 깨닫고서는, 웬만해서 이 루틴은 건드리지 않는다.


역시 문제는 술자리다. 연초라 감사하게도 승진자들이 쏘는 한 턱을 가랑비처럼 맞다 보면 평소보다 술자리가 잦아질 수밖에 없다. 즐겁게 마시고 마음 편히 먹다 보면 몸은 무거워지고. 귀갓길에 이르러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다음 날 아침이면 일어나기 싫어지고 운동을 스킵하게 된다. 아침운동은 최근 1년 새 자리 잡은 강력한 루틴이다. 이제는 '하기 싫음'의 단계를 넘어선 모양새다.(아! 여전히 하기 싫지만 그냥 하게 되더라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는 엄청나게 심오하고 멋져 보이는 부사들을 참 좋아했다. 드디어, 이윽고, 바야흐로 같은 ㅋㅋㅋㅋ 43세 영포티가 현재 가장 좋아하는 부사는 '그냥'이다. 대단한 투지나 의지를 갖고 할 게 없다. 모든 일은 '그냥' 하면 된다. 특히 운동할 때 가장 좋은 생각이다.


섭식부터 운동에 이르는 일상의 메커니즘을 방해하는 아주 작은 요인이 생겨도 그날 하루 기분은 생각보다 많이 우울하다든지, 잡쳐버리게 된다. 누가 보면 별것 아닌 일일 테지만,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깨달은 후부터 나는 평온한 일상을 방해하려는 그 어떤 음해세력의 협잡질에 굴복할 마음이 추호도 없다.


몸의 정교함만큼이나 멘탈리티도 마찬가지다. 나는 언제부턴가 무탈하고자 열심히 사는 삶을 받아들이고 즐기게 됐다. 어렸을 땐 뭔 짓거리를 저질러도 대단한 일이 잘 일어나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고 챙겨야 할 사람과 사안이 많아지다 보니 조금만 신경을 못써도 탈이 났다. 무탈함을 삶의 가장 큰 목표로 삼자, 아이러니하게도 꽤 많은 에너지를 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가 혼신의 노력을 다해 일상 속 루틴을 유지해야만 별일 없이 살 수 있는 것이다.


루틴 사수는 곧 평정심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나는 의식적으로(Ritually) 매일 출근 후 다이어리에 평정심을 한자로 平靜心, 이렇게 쓰고 업무를 시작한다. 같잖은 루틴이지만 실제로 평정심을 찾는데 큰 도움을 받고 있다. 연차가 쌓일수록 업무 역량보다 멘탈리티가 훨씬 중요해진다는 사실을 몸소 깨닫는다. 일이야 하면 되는데, 작은 사안에 평정심을 잃고 마음이 흔들려 버리면 다른 중요한 일들을 그르치게 된다.


흔한 말이지만 기분은 태도가 되기 십상이고, 태도가 쌓이면 평판이 된다. 평정심을 흔드는 누군가를 비난하는 경우가 시나브로 잦아졌음을 인지한다. 그 말은 다시 돌아와 결국 나를 찌르고 상처를 내더라. 평정심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큰 시기다. 업무의 과중함, 사내 기강단속, 이런 문제들은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루틴에 영향을 미치고, 의식을 지배하게 된다.


요즘 글쓰기가 뜸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나는 야망과 행복을 동의어로 간주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눈치도 없는 나이가 자꾸만 내게 다그쳐 묻는다.


언제까지 어린애처럼 그 자리에 그렇게 안주하고 있을래? 지금 거기서 그렇게 쭉 일하는 게 맞아?


야망(을 빙자한 커리어)과 행복한 일상 그 사이 어디쯤에서, 마구 흔들리며 고민하고 있다. 정년이 늘어난다면 나는 지금껏 해온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생계를 위해 버텨야 한다. 기준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왕이면 재밌게 일하고 싶은 것. 어찌 되려나. 이렇게 먹고사는 문제가 눈앞에 닥치면 글이고 뭐고 팽개치고 그저 누워서 자고 싶은 마음 밖에 없다. 실로 그랬던 것이다.






이른바 브런치 중2병이 도졌다 해도 신경쓰지 않는다. 아니 여력이 없다. 돌이켜 보니 브런치에 한창 글을 자주 쓸 때에는 나름 스트레스가 많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글빨도 가다듬는 셈 치고, 마치 대나무숲처럼 이곳에 글을 쓰며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믿었다. 그런데 정말 큰 스트레스가 오니 브런치가 결코 안식처가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요즘 책을 하나 읽고 있다. 글쓰는 일에 대한 본질, 재능, 부조리, 자유, 구속, 영감, 고통, 희열, 의심, 질투, 모멸감, 예술성, 몰입. 이런 이야기를 하는 책이다. 이 책이 말하는 바는 하나다. 글쓰기는 파고들면 들수록, 업으로 삼게 될수록 모든 인간관계와 더불어 기본적인 생활조차 희생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작가는 그 과정에서 자존감도, 인격도, 휴머니즘도 잃게 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


비단 이 저자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란다. 저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랬단다. 글쓰기는 '깊고 어두운 우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일'이라고.


오버하지 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로 그렇다. 그만한 각오 없이 글쓰기를 업으로 삼겠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역설적으로 당장의 현실적인 고민 앞에서 글쓰기는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글이 뜸해진 변명을 좀 길게 늘어놔 봤다 ㅋㅋㅋㅋ



P.S. 댓글창을 닫아둔 것은 글쓰기조차 힘겨운 상황에서 독자 여러분들의 소중한 관심에 진정성을 갖고 답하기 어려웠다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다정함은 시니컬보다 에너지를 몇 배는 소모하는 일임을 아실는지요. 혹시 모를 시니컬이 하이드처럼 나올까봐 저 담담지킬은 <지금 이 순간>을 부르며 끝까지 다정한 가면을 벗지 않으려는 고육지책으로 댓글창을 닫아봅니다.

언젠가 컨디션이 나아진다면 글도, 댓글도 다시금 담담하게 춤출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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