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담댄스 Jun 05. 2024

퍼펙트 게임*

야구에서 배운 것

어떤 스포츠를 더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전 종목을 통틀어 가장 애착이 가는 구단을 꼽으라면 'KIA 타이거즈'다. 이 팀이 잘하면 뭔 문제겠는가. 정말 애매하게 못한다. 압도적 1등일 리는 없고, 압도적 꼴찌도 아니다. 몇 년째 5~8위권을 넘나드는데, 보통 10개 구단 중 5등(딱 절반)하면 성공한 시즌이라고 인정받는다.


올 시즌엔 아직까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많은 팬들이 혈막으로 지적했던 전임감독이 비위로 물러나게 되면서, 소위 형님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는 초보 감독의 역량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평이 중론이다. 때때로 믿음의 야구를 넘어 방치 수준으로 인식될 만큼 과신(過信)의 야구로 경기를 그르칠 때도 많지만 그래도 1위라는 성적 덕에 큰 비난은 피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압도적인 1위는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4연승 해서 '오, 이제 좀 올라가려나 보다' 싶으면 여지없이 6연패해서 '에혀, 그럼 그렇지'가 되는 식이다. 이왕 잘 하는 거, 1위로 정규시즌을 마감했으면 좋겠다. 어떤 팀의 팬이라는 이유만으로 들어야 하는 조롱과 멸시는 딱히 하소연할 곳이 없다. 프로선수들이 가져야 할 가장 큰 덕목은 어쩌면 팬들에게 열패감을 주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서론이 길어졌는데, 야구는 참 특이한 스포츠다. 일단 규칙이 압도적으로 많다. 쉽게 설명하면 투수와 타자의 싸움이지만, 3할을 기준으로 투수와 타자의 밸런스를 맞추려고, 쉽게 말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 '이런 것까지 규칙으로 정한다고?' 싶은 것까지 명문화한다. 그래서 입문자들은 쉽게 포기하는 스포츠지만, 애착을 갖고 보다 보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이에 매료되고 만다.


그리고 기록의 스포츠다. 통계학이 가장 정교하게 활용되는 스포츠가 바로 야구다. '이런 것까지 지표로 만든다고?' 싶은 것들을 모두 수치화해 선수의 가치를 평가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야구에서 단연 최고로 치는 기록을 꼽자면 아마 퍼펙트 게임이 아닐까.




작년 메이저리그에서 11년 만에 퍼펙트 게임이 나왔다. 상대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주인공은 도밍고 헤르만이라는 뉴욕 양키즈 소속 투수였다.


퍼펙트 게임이 무엇인지 잠시 소개해 본다. 야구는 총 아홉 번의 공격과 수비 기회가 주어지고, 한 번의 공격 내지 수비 시 3개의 아웃카운트를 올리면 공격과 수비를 교대한다. 즉, 한 팀이 공격을 하면 자연스럽게 상대 팀은 수비를 들어가는 구조인데, 수비하는 팀에서 상대 타자들을 한 번의 출루(1루 진출)도 허용하지 않고 선발투수가 27개의 아웃카운트를 모두 올려 경기를 승리할 경우, 이 게임을 퍼펙트 게임이라고 한다. (역시 야구는 설명이 참 길어져;;;)


얼마나 대단한 기록인지 기술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어렵고, 기록적으로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 42주년을 맞는 우리 프로야구(1군)에서 단 한 번도 없었던 기록이다.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24번 밖에 없는 기록이며, 그마저도 11년 만에 처음 나온 것이다.



이번에 퍼펙트게임을 기록한 도밍고 헤르만이라는 선수는 초특급 투수로 평가받는 선수는 아니다.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은 MLB 모자의 마크로라도 본 적 있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구단, 뉴욕 양키즈에서 5선발을 맡고 있다. 이 경기 전까지 그의 기록은 4승 5패, 이 경기를 마친 그의 평균자책점은 4.54다. (평균자책점은 9회를 던지는 기준으로 4.54점의 실점을 내주는 투수임을 의미) 평범한 수준의 선발투수라고 평가할 수 있다. 심지어 이 경기 직전 열린 두 차례 선발경기에서는 무려 17점을 내주는 피칭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 한 경기로 존재감을 알렸다. 질 떨어지는 개인사를 추호도 방어해 줄 마음은 없지만, 그는 가정폭력으로 인해 징계를 받고 한때 은퇴를 고려하기도 했던 선수다. 해당 시즌만 해도 *이물질 사용으로 적발돼 10경기 출장정지를 받기도 했다. 그가 야구를 그만두었다면, 10경기의 출장정지 경기 중 이 날의 오클랜드를 만나는 것이 포함됐다면 만들어질 수 없는 기록이다. 때로는 잘하지 못하더라도 꾸준함이, 그저 버티는 것이 답일 때도 있나 보다.


*투수가 공을 잘 던지기 위해서는 손가락과 야구공의 실밥을 밀착시켜 줄 무언가를 사용하면 효과가 좋은데, 유일하게 허용된 것이 송진가루로 만든 로진 백이다, 이외의 물질을 사용했다 적발되면 바로 징계를 받는다.


퍼펙트 게임이 발생하면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투수에게 돌아간다. 개인적으로 불합리하다 생각한다. '이 기록의 주인공을 '팀'으로 하는 것이 더욱 합리적이지 않나?' 싶은 것이다. 총 27개의 아웃카운트 중 온전히 투수의 능력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탈삼진인데, 이 날 도밍고 헤르만은 9개의 삼진으로 아웃카운트를 잡았다. 달리 말하면, 18명의 타자는 수비수들이 아웃시킨 것이다. 물론 탈삼진 역시 투수 개인의 능력 + 포수 내지는 배터리 코치의 리드 역량을 무시할 수 없다.


퍼펙트 게임으로 경기가 진행되다 보면, 당연히 투수가 가장 긴장하겠지만 못지않게 야수(수비수)들 역시 긴장하고, 부담스러울 것이다. 생각해 보라. 역사에 남을 퍼펙트 게임이 내 실수로 무산된다면 그 미안함을 이루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경기에서도 5회말 2아웃 잡을 때, 8회말 3아웃 잡을 때 1루수 앤서니 리조의 호수비가 아니었다면 퍼펙트 게임은 무산됐을 것이다. 내가 당시 뉴욕 양키즈의 야수 중 한 명이었다면 이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공아, 제발 나한테만 오지마


퍼펙트 게임을 직역하면 완벽한 경기다. 완벽은 혼자만으로 불가능하다. 혼자 한 것 같아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진 누군가의 노력, 도움 없이는 결코 해낼 수 없다. 우리는 이걸 자주 까먹는다. 참 슬프고도 어리석은 일이다.




<퍼펙트 게임>이라는 동명의 영화가 있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투수로 불리는 두 명, 최동원과 선동열의 세 번째 선발 맞대결을 다룬 영화다. 실제 경기는 퍼펙트 게임과는 무관하다. 두 투수 모두 안타도 맞고, 점수도 내줬다. 결국 경기는 2:2 무승부로 끝난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의 제목을 왜 '퍼펙트 게임'으로 다뤘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승리의 완벽함은 오로지 이긴 자의 입장에서만 그렇다. 퍼펙트 게임을 내준 팀은 역사의 불명예로 남기 싫어 필사적으로 1루를 밟으려 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안타 하나를 못치냐'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이 경기는 패자가 없다. 팀의 승리를 위해 200개가 넘는 공을 던지고도 마운드에 오르는 선발투수, 1점을 뽑기도 어려운 상대 팀의 에이스에게 무려 2점씩을 뽑아낸, 그리고 더는 점수를 내주지 않으려 몸을 날린 야수들. 어쩌면 완벽한 경기는 흠이 없는 경기가 아니라, 때로는 실수도, 실패도 하지만 결국 팀으로서 누구도 지지 않았던 경기가 아닐까. 두 팀 모두 이기지는 못했지만 이겨낸, 그런 경기야 말로 실로 완벽하다 말할 수 있지 않은가.



*표지 이미지 출처_문화일보

작가의 이전글 효율+효율+효율+......=비효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