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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댄스 Jun 13. 2024

압박과 탈압박*

축구에서 배운 것

이 글은 이강인의 파리생제르망 이적 당시(2023년 7월) 작성한 글입니다. 다른 글과 달리, 이 글에 특별한 설명을 붙이는 것은 이 글을 작성한 이후, 한국 축구와 이강인 본인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축구 국가대표팀은 갈등을 잘 봉합하고, 최근 월드컵 2차 예선 마지막 두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며 순항하고 있습니다. 다시 공개하기에 지금이 적절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진심 어린 제언을 해봅니다.

정말 한국 축구를 위한다면, 단순히 월드컵 16강 만을 바라보며 백일
몽만 꿀 것이 아니라,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장기적으로 새로운 조직을 꾸리고, 패러다임을 견고히
규정해야 합니다. 높은 자리 한 자리씩 해 먹으며 대접받겠다는 그 마음을 버리고요.
나아가 한국 축구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헌신하려는 사람들을 요직에 기용하길 바랍니다. 
가슴이 터져라 뛰는 선수들과 스태프들을 제대로 지원하는 대한축구협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쓸모없는 것들 중에 그깟 공놀이가 있다.


공으로 하는 웬만한 스포츠는 감상 위주로 무척 좋아한다. 다만, 너무 열심히 보면 뭔가 깊게 파게 되는 게 문제다. 당연히 전문가 수준은 못되지만, 나름 조금 토크하면서 스포츠를 볼 만한 수준은 되었다. 오늘은 어떤 축구기사를 보다 문득 든 생각을 적어본다.




현대축구의 기본, 압박


2002년 4강 신화가 벌써 20년이 지났다. 2002년생인 이영지는 제발 월드컵 얘기 좀 그만해 달라고 했지만 어디 그럴 수 있을까. 무려 월드컵에서 4강을 갔는데. 2002를 들으면 자동반사처럼 월드컵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놀면 뭐하니> 캡처 화면, 2021, MBC All right reserved.


당시 4강의 가장 큰 원동력을 꼽자면, 강인한 체력과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한 압박 전술을 꼽고 싶다. 상대방이 공을 잡으면, 주변에 있는 최소 2명 이상의 우리 팀 선수들이 공을 가진 상대선수 한 명을 향해 볼을 뺏으러 달려드는 것이다.


압박의 핵심 키워드는 '수적 우위'다. 특히 최전방 스트라이커부터 상대 수비수를 향해 2~3명이 한꺼번에 달려들면 수비수는 당황하게 된다. 이렇게 탈취한 공을 바로 공격작업으로 전개시킨다. 이미 높은 위치에서 시작되는 공격작업에, 수비수 한 명은 공을 뺏기고 무력화된 이후이기 때문에 골을 넣을 확률이 높아진다.


*아래 칼럼을 확인하시면 더욱 정확하고 자세히 압박 전술에 대해 알게 되실 겁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몸값이 높은 축구감독들은 이 압박 전술의 대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1위인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 2위인 펩 과르디올라 감독, 3위인 위르겐 클롭 감독 모두 강력한 체력을 바탕에 둔 압박 전술로 리그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유럽에 근거를 둔 축구클럽들의 월드컵) 결승에 오른 바 있다.


특히, 독일 출신의 위르겐 클롭 감독은 이른바 '게겐프레싱(Gegenpressing)'이라 불리는 압박 전술의 창시자로 나름의 족적을 남겼다. 그는 탁월한 동기부여 스킬로도 유명하다. 클롭 감독 아래서 선수들은


저 사람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


는 각오로 축구장 전체를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훌륭하게 미션을 수행했다. (하지만 이 글을 쓴 이후, 모하메드 살라는 클롭에게 불만이 많은 듯했다 ㅠㅠ)


이로 인해 중위권에 머물던 분데스리가(독일 프로리그)의 도르트문트라는 팀은 클롭이 맡은 지 2년 만에 리그 우승이라는 성과를 올린다. 그로부터 2년 후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까지 진출한다. 클롭 감독은 프리미어리그(영국 프로리그) 리버풀로 적을 옮기고 나서 역시,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일궈낸다.


게겐프레싱 전술 (출처_게겐프레싱 나무위키)



수적 우위의 함정, 탈압박


하지만 전 세계를 발전시킨 변증법의 원칙은 축구계에도 적용이 된다. 압박을 이겨내는 탈(脫)압박 전술 역시 발전하는 것이다. 디테일한 전술 설명은 쓰기에도 읽기에도 어려우니, 쉽게 얘기하면 '수적 우위의 함정을 역이용하는 것'이다.


내가 우리 진영(축구장에서 중앙선을 경계로 우리 팀의 골키퍼가 위치한 반쪽에 해당, 우리 진영에 공이 많이 머문다는 얘기는 수세에 몰렸다는 얘기다)에서 공을 갖고 있다 치자. 상대방이 내 공을 뺏기 위해 앞에서 1명, 왼쪽에서 1명, 오른쪽에서 1명, 이렇게 3명이 한꺼번에 달려든다면? 아마 뺏기지 않을까 ㅋㅋㅋㅋ


하지만 이강인이라면?



이렇게 탁월한 개인기로 벗어날 수 있다. 특유의 장기인 팬텀 드리블(양발로 지그재그 공을 간수하면서 상대방의 태클을 피하는 드리블)을 저 정도 수준으로 익히려면 밥먹고 자는 시간 말고는 저 드리블을 수년간 연습했을 것이다.


탈압박의 원리는 간단한 산수 게임이다.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는 우리 팀도 11명, 상대팀도 11명이다. 특정한 공간에서 우리 선수보다 상대팀 선수가 많다는 의미는 다른 공간에서는 상대 선수보다 우리 선수가 많다는 의미다. 즉, 압박이라는 역경을 떨쳐내기만 한다면, 저 너머의 공간에서는 나와 같은 옷을 입은 선수들이 수적 우위를 점한 채, 상대 진영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대가패(대지를 가르는 패스)나 스루패스 한 방이면 완벽한 역습 기회가 제공된다.


개인기 말고, 또 하나의 탈압박 방식이 있다. 상대만 팀으로 나를 에워싸라는 법은 없다. 우리도 팀으로 압박을 벗어날 수 있다. 공을 갖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악착같이 버티면 된다. 나를 도우러 온 동료에게 작은 틈새로 패스 한 번만 찔러주면 벗어날 수 있다.


축구는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팀 동료 역시 나만큼, 나보다 능력 있다. 어떻게든 온전히 버티고 있다면 분명히 내 동료는 나를 위해, 팀을 위해 구원하러 달려와 줄 것이다.


마스크로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고, 3경기 째 풀타임을 소화한 손흥민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달리고 버티는 것뿐이었다. 그는 붉은빛 한 줄기가 보이자 지체 없이 공을 건넸다



압박을 벗어나면 더 큰 기회가 열린다


일에서도, 삶에서도 우리를 둘러싼 압박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강하게 조여 오는 양상이다. 예상외의 압박을 마주하면 처음엔 당황하다가 주도권을 뺏기고, 실패라는 결과를 맞닥뜨릴지도 모른다.


유려하게 압박을 벗겨내기 위해서는 우선, 나의 실력을 쌓아야 한다. 어떤 일이든 그 일에 걸맞은 기초체력을 다지고, 기본기를 닦아야 한다. 이강인의 팬텀 드리블처럼, 기본기가 무의식의 상태에서 자연스레 몸에 밴 채로 발현되면 그것이 '개인기'가 되는 것이다. 이 개인기는 굉장한 압박의 순간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탈출할 수 있는 솔루션이 될 것이다.


힘에 부치더라도 어떻게든 버텨내야 한다. 체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전반 20분처럼 후반 40분에 압박상황이 온다면 전반 20분만큼 유려하게 개인기로 빠져나가긴 쉽지 않을 것이다. 심지의 우리의 상대팀은 '삶'이다. 이 팀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면 강해졌지, 결코 똑같은 수준으로 나를 상대하지 않는다. 모진 체력훈련을 이겨내는 이유는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다. 탄탄한 코어근육으로 삶의 역경들을 등지고 버텨서야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동료를 믿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짐을 혼자 짊어질 필요는 없다. 버티는 힘이 다하는 순간, 아직 체력이 남아 있는 동료를 믿고 주저 없이 공을 건넬 수 있어야 한다. 당연히 믿을 수 있는 동료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동료에게도 내가 믿을 수 있는 존재여야 할 것이다. 이강인 정도의 플레이어라면 충분히 그렇지 않을까.


그렇게 압박을 벗겨 내면 드넓은 기회의 공간이 창출되리라.




내가 아는 선수 중에 탈압박을 가장 잘하는 선수, 이강인 선수의 PSG(Paris Saint-Germain) 입단 기사를 보고, 불현듯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이강인 선수는 잘할 거다. 그리고 17살 많은 형이 할 말은 아니지만,


나도 아마 잘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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