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담댄스 Jun 12. 2024

겸손은 힘든 이유

겸손하다고 말하는 오만함에 대해

리쌍의 노래로, 요즘은 한 시사프로그램의 제목으로 알려진 <겸손은 힘들어>의 원곡자는 사실 조영남이다. 노랫말을 요약하자면 워낙 잘났기에 겸손이 힘들다는 내용인데, 일견 수긍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그의 예술가로서의 재능만 보자면 납득되지만, 미디어를 통해 알려진 그의 생애 전반과 실언(失言)들을 보면 그 힘든 겸손까지 해냈다면 어땠을까 싶은 안타까움이 있다.



나는 겸손주의자다. 내 인생의 은사,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늘 '벼는 익을수록'을 선창하시면 나는 '고개를 숙인다'고 말을 이었다. 선생님이 내게 가르쳐주려 했던 것은 정말 겸손하게 삶을,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었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대한민국에서 어른으로 살아가기에 꼭 필요한 처세술이 아니었나 싶다.


살면서 꼭 필요한 ㄱㅅ, 3가지를 가슴에 새기고 살아왔다. 하나는 감사, 하나는 고생, 나머지가 겸손이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는 마음으로 살게 되면 절로 감사하게 되고, 직접 고생해보지 않고는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없으며, 결과가 좋은 일 어느 하나도 혼자만의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는 겸손의 마음가짐을 세 개의 ㄱㅅ에 담았다.


최근 가장 인상적인 겸손의 아이콘을 꼽자면 단연 손웅정, 손흥민 부자다. 이들을 보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제가 아는 EPL 득점왕은 티에리 앙리,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디디에 드로그바, 엘링 홀란드 뭐 이런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도 월클 아닌가요?


내가 나를 겸손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가?


겸손이라는 단어는 평가의 언어다. 스스로에게 적용할 때 어폐가 생긴다. '겸손하게 살겠습니다'라고 해서 겸손해질 수 없다. '저 사람은 참 겸손하네'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비로소 겸손해질 수 있는 것이다.


겸손에는 자격이 필요하다. 누구도 손흥민처럼 될 수 없고, 손흥민 같은 아들을 길러내기 쉽지 않으니 두 분의 업적이 대단한 성과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보여준 것이 많은 사람이 아직 모자라다 말할 때 비로소 타인에 의해 '겸손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겸손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실력을 기르는 것이 먼저다. 오롯이 내 실력으로 얻지 않은 것, 남의 도움과 운이 작용해 얻게 된 것에 겸손할 수 없다. 그것으로 겸손하다는 마음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오만한 일이다.


잘하는 사람이 잘한다고 얘기한다 → 자신감

잘하는 사람이 못한다고 얘기한다 → 겸손

못하는 사람이 잘한다고 얘기한다 → 허세

못하는 사람이 못한다고 얘기한다 → 솔직



저 중에 나는 아직 '솔직'한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실제 잘하게 됐을 때 잘한다고 해도 좋고, 못한다고 하면 더 좋을 것이다. 어쩌면 겸손은 좋은 핑계라는 생각도 든다. 잘하는 것을 잘한다고 말하는 것이 진짜 멋있고 어려운 일이다. 잘한다고 말하는 순간, 후방 미드필드에서 볼을 받아 돌아서려는 황인범에게 두세 명이 들러붙듯 압박이 바로 들어온다.


네가 진짜 그렇게 잘해?


강력한 견제 속에서도 꾸준히 잘하려면 더욱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단 잘하는 것이 먼저다. 겸손이든 자신감이든 방향을 정하는 것은 잘하고 난 다음 일이다.


아직 겸손할 자격이 못 되는 지금의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혹여 겸손하다는 칭찬을 받는다면 '아직 겸손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릇이 못된다'고 할 것이며, 그 밖의 모든 칭찬에는 심플하게 ‘고맙다, 더 노력하겠다' 말할 것이다. 겸손하려는 자세는 언제고 갖고 있어야 한다. 습관처럼 몸에 밴 겸손은 비로소 실력을 갖췄을 때 빛을 발할 수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겸손 하나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아무튼 겸손은 힘들다.

작가의 이전글 우문현답은 있어도, 현문우답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