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최애, 뉴진스가 일본에 본격 진출했다. 이 사실만으론 큰 이슈가 되진 못했는데, 다른 이슈가 터졌다. 지난 한 주 내내 우리들의 유튜브 알고리즘을 점령한 바로 이 영상 말이다.
일본의 전설적인 아이돌,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를 커버한 하니의 일명 <푸른 팜호초> 무대다. 1980년대 버블경제로 불리는 일본의 리즈 시절, 그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킨 이 무대는 일본 본토에서는 물론, 우리나라에까지 큰 화제를 몰고 왔다. 사실 마츠다 세이코는 잘 몰랐는데, 그녀의 무대를 보자마자 한 눈에 알아차려버렸다. 슬램덩크와 더불어 내 인생 만화 「H2」의 하루카가 그녀를 모델로 삼았다는 것을.
뉴진스는 실로 대단하다. 하니가 이번에 팜호초 무대를 선보인 팬 캠프는 일본 최고의 공연장이라고 할 수 있는, 5만 석 규모의 무려 도쿄돔에서 개최됐는데, 일본 무대에 갓 데뷔한 신인이 도쿄돔에서 공연한 것은 최초라고 한다. 이틀간 전석 매진도 모자라, 이런 레전드 무대까지 만들어 냈으니 새삼 그 기획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에스파는 뉴진스와 대척점에 서 있는 그룹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내 취향은 아니라는 말을 돌려 말한 것이다) 아이돌 음악의 판을 이지 리스닝으로 바꾸고, 클래식한 사운드에 트렌드를 얹어 단순히 '복고'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한 '뉴진스다움'을 창조해 낸 것이 뉴진스라면, SM 세계관의 완성으로 대표되는 에스파는 흔히 말하는 '쇠맛'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음악과 무대를 쭉 선보여 왔다. 이것도 '에스파다움'이겠지.
근데 요즘 에스파가 부쩍 멋있게 느껴진다. 하찮은 내 취향이 뭐 그리 대수인가. 마치 외길인생 장인처럼,
우리는 이런 그룹이야, 이런 음악을 하고, 이런 무대를 선보여
를 데뷔 때부터 한결같이 외쳐왔고, 그 외침이 마침내 탁월한 성과로 닿았기 때문일까.
심장을 격동시키는 드럼 킥 사운드와 베이스로 점철된 도입부, 강강강강으로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전개. <Supernova>는 참말로 에너제틱(Energetic)하다. 취향이 아닌 사람도 인정하게 만들 수(수수 수퍼노바)밖에 없는 힘이야 말로 어마무시하게 다가와아오에.
난 이게 너무 멋있다 진짜. 뉴진스도, MZ들의 문화대통령 이영지도 도저히 <Supernova>를 넘어설 순 없었다. 나는 단언한다. 단순히 팬덤의 화력만으로는 차트 1위를 이렇게 오랜 기간 이어나갈 수 없다는 것을. 세대를 불문하고 하나의 현상이 되어야만 비로소 이 정도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에스파는 흡사 처음부터 쇠질을 반복해 마침내 단단한 근육을 가지게 된 헬스 트레이너, 뉴진스는 유연함을 무기로 어떤 움직임도 자유자재로, 높은 완성도의 동작으로 보여줄 수 있는 필라테스 강사 같다는 생각이 든다. 헬스 트레이너나 필라테스 강사 모두, 톱 레벨이 되려면 모진 훈련과 연습을 견뎌내 탄탄한 코어근육을 가져야만 한다.
나는 이렇게 대척점에 서 있는 것만 같던 두 그룹을 모두 좋아하게 됐다.
얼마 전, 세상 반가운 영상을 보았다.
뉴진스와 에스파가 서로의 프로모션을 위해 멤버를 쪼개 합동 무대를 챌린지 쇼츠로 꾸민 것이다. 에스파와 뉴진스는 서로를 밟고 일어서기보다, 서로를 받치고 일어서는 편을 택했다. 그녀들의 현명하고 영리한 선택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