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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댄스 Jul 17. 2024

대한민국 축구에 고함

간절히 실패하길 바랍니다

축구만큼 내셔널리즘이 강한 스포츠가 또 있을까. FIFA(국제축구연맹)의 회원국은 211개로 IOC(국제올림픽위원회) 회원국 206곳보다 많다. 이를테면 영국은 올림픽에서는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으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가 하나의 국가로 출전하지만, 월드컵이나 유로 대회에서는 각자 나라를 대표해 출전한다. 민족성과 역사적 맥락이 더욱 짙게 표출되는 스포츠가 축구인 것이다.


누군가 올림픽과 월드컵 중에 어떤 이벤트를 더 좋아하는지 묻는다면, 내 대답은 망설임 없이 월드컵이다. 하나의 종목이 주는 몰입감과 동시에, 승부욕 차원에서도 솔직히 올림픽은 월드컵에 게임이 안된다. 개인적으로 올바른 흐름이라고 생각하는데, 언젠가부터 올림픽에서 꼭 금메달을 따지 않아도 아니, 메달을 따지 않아도 환영하고 박수 쳐 주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월드컵은 그딴 게 없다. 조별리그를 제외하고는 승 아니면 패다. 정규시간 90분 안에 승부를 내지 못하면 정말 잔인한 승부차기까지 해서라도 승부를 가린다. 지면 탈락이다. 조별리그 탈락의 경우, 정말 상상치도 못한 욕을 먹는다.


우리나라 월드컵 본선 역사에서 조별리그 탈락과 함께 두고두고 욕을 먹은 감독 2인을 떠올려보자면 차범근과 홍명보다. 아이러니한 점은 선수 커리어만 놓고 보면 이들은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레전드라는 사실.


아주 어렸을 적 기억이지만,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차범근 감독에 대한 비난 여론은 오로지 경기력 차원에 한정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1승 제물(이런 말 좀 안 썼으면 좋겠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조별리그에서 모든 상대국가들의 1승 제물이다)로 지목한 멕시코에게 충격의 1:3 역전패를 당한 뒤, 2차전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네덜란드에게 0:5 참패를 당하며, 차범근은 아직까지도 유일한, 조별리그 중 경질된 감독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홍명보 감독은 비단 경기력뿐만 아니라 온갖 구설에 휘말려 차범근 감독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비난 공세에 시달렸던 기억이 난다. 의리축구, 홍땅보 등 저조한 경기력의 원인으로 다양한 이슈가 터져 나오며 언론은 물론 팬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 나는 당시에도 그 비난이 좀 과하다고 생각했다. 어이없는 패배는 자다 깰 정도로 분했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냥 축구를 좀 못한 것뿐이다. 그리고 홍명보 감독은 당시 월드컵 최종예선도 치러보지 못하고 본선 1년을 앞두고 급하게 팀을 맡았다. 1년이라는 짧은 준비 기간 동안 의지할 구석이라곤, 1년 전 성공의 경험을 안겨준 런던올림픽 동메달 세대를 발탁해 조직력을 급하게 다지는 것뿐이었을 거다.


게다가 우리도 쉬는 날이나 퇴근 후, 휴가를 내고 집을 보러 다니기도 한다. 늘 구분하자고 말하던 공과 사는 어디까지나 내로남불에 그쳤다. 그렇게 우리는 전도유망한 지도자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2024년, 월드컵 최종 예선을 앞두고 대한축구협회는 다시 홍명보 감독을 선택했다. 10년이 지나도 지금의 여론은 가히 2014년을 방불케 한다. 심지어 그 당시에는 없거나 존재감이 희미했던 유튜버들까지 가세해 화력을 키우고 있다. 작금의 사태에 축구 레전드들은 용기를 낸 반면, 입을 다물고 있는 레전드에게는 유튜브 채널에 찾아가 관련이 1도 없는 콘텐츠에 댓글로 '한 마디 하라'며 으름장을 놓는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다. 이번 사태에 대해서 축구 팬들, 레전드들은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더는 편을 갈라 사상검증을 시도하는 일은 부디 없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대한민국 축구가 괜찮냐? 결코, 절대 아니올시다. 많은 이들이 한탄한다.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황희찬, 이재성....... 이런 황금세대로 나갈 수 있는 마지막 메이저 대회를 이렇게 날려서야 쓰겠냐고. 나는 이런 관점이 잘못됐다고 본다.


스타플레이어들이 즐비한 스쿼드여도 월드컵 8강 이상의 성적을 거두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한때 FIFA 랭킹 1위까지 올랐던 벨기에는 에당 아자르(은퇴), 로멜로 루카쿠, 케빈 데 브라이너, 뱅상 콤파니(은퇴), 티보 쿠르투아 등 공격, 미드필더, 수비, 골키퍼까지 월드클래스가 즐비한 스쿼드를 자랑했지만 메이저 대회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2002년 월드컵 대표팀을 황금세대로 부르지만, 이는 결과론적 착시 현상이다. 월드컵 개막 전만 해도 박지성은 국내 프로리그의 지명을 받지 못해 한 수 아래라 여겨지던 일본 J리그에서 뛰었고, 홍명보를 제외한 수비진, 미드필드진은 거의 듣보잡 수준이었다. 월드컵 4강 신화 이후에서야 비로소 이들이 황금세대로 주목을 받은 것이다.


결국 황금세대를 만드는 것은 스타플레이어가 아닌, 시스템이다. 나는 홍명보 감독이 무난하게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고, 2014년 월드컵보다는 나은 성적을 본선에서 거둘 것이라고 어느 정도 확신한다. 10년의 시간 동안 그는 행정가로서, 클럽팀의 감독으로서 훌륭한 성과를 내며 더욱 레벨업했다. 선임 방식의 문제지, 사람에는 문제가 없다. 그저 그의 대언론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몹시 아쉬울 뿐. (원래 인터뷰를 정말 잘하는 감독이었는데...... ”저는 저를 버렸습니다“는 너무 자의식 과잉ㅠㅠ 왜 그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나는 이번 월드컵 대표팀이 본선 진출에 실패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바람이 지켜질지 모르겠지만, 처절히 실패하기를 바란다. 월드컵의 실패로 대한축구협회가 물갈이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는 그 어떤 명분보다 큰 명분이 될 것이다. 대한축구협회는 A대표팀의 성패에 따라 스폰서십 등 전체 살림살이가 좌우되는 조직이다. 해리 케인만큼이나 간절히, 트로피나 원정 월드컵 8강 이상의 성과를 바라는 손흥민 선수에겐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예선 통과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실패하기를 바란다.


2018년의 실패가 2022년 부분적 성공의 밑바탕이 되었듯, 이번에 실패하고 제대로 된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손흥민이 없어도, 김민재가 없어도 훨씬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외국 감독이면 어떻고 국내 감독이면 어떠한가. ‘빌드업’, ‘라볼피아나’ 이런 모호하고 있어 보이는 말들로 현혹하지 않아도, 충분히 쉬운 언어로 대중을 납득시켰던 레퍼런스도 있다.



결국 나도 내셔널리즘을 못 버린 거다.


1. 전투를 져도 전쟁은 이길 수 있다.
2. 결국은 돈이다.


똥인지 된장인지 결국 찍어먹어 보게 되는 작금의 현실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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