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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재가 손흥민보다 훌륭한 선수다

by 담담댄스

호감도로만 따지자면 나는 김민재보다 손흥민을 좀 더 좋아한다. 슈퍼스타이면서도 겸손하고, 어딜 가나 둥글둥글 잘 어울리며 드러난 면으로만 판단하자면 자신에 대한 누군가의 실수나 비판에 대해서도 관대하다. 김민재가 안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그런 면에서 손흥민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직업인으로서의, 커리어 관점에서의 우수함을 비교해 보자면 김민재의 손을 들 수밖에 없다. 두 선수의 능력 차이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 왜? 바로 '역할'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두 선수 모두 전성기 기준으로 월드클래스라는 데 반박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두 선수 퍼포먼스의 최대치가 동일한 역량이라고 해도, 무조건 김민재를 고를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바로 수비수이기 때문이다.


공격수의 본능이자 역할은 능동성에 있다. 의지를 갖고, 본인의 생각대로 움직일 수 있다. 이를테면 일대일 상황에서


내 주발(Strong foot)은 왼발이니 상대가 내 왼쪽을 틀어막겠지?
그러면 나는 왼쪽으로 갈듯 오른쪽으로 페인트를 쓰고
다시 한번 페인트를 써서 왼쪽으로 가야지


이렇게 결정하고 행동한다면 공격수 입장에서는 세 번의 반응(Action)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수비수가 공격수를 막아서기 위해서는 세 번의 대응(Re-action)이 필요하다. 이 경우에는 물론 운 좋게 한 번의 대응으로 막아낼 수도 있겠지만, 월드클래스 공격수라면 0.1초 안에도 수비수의 대응을 보고 다시 본인의 반응을 바꿀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에 무조건 수비수가 불리하다.


월드클래스 수비수는 대응(Re-action)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 한계를 딛고, 어떤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 공격수와 같은 실력이라면 훨씬 어려운 일 아니겠는가. 하물며 김민재가 더욱 대단한 것은 대응의 한계를 넘어, 반응하는 수비를 한다는 것이다. 수비수들의 라인을 조정해 오프사이드 트랩을 만드는 것은 기본, 공간을 찾아 파고드는 날카로운 패스 줄기들을 미리 차단한다. 그렇게 차단한 볼을 90% 이상의 정확도로 동료 미드필더나 전방의 공격수에게 배달한다. 이렇게 김민재는 공격적으로 수비하는 것이다.


손흥민의 전성기는 머지않았다. 손흥민과 김민재라는, 공격과 수비에 월드클래스 플레이어를 동시에 보유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단 뜻이다. 절체절명의 국가대항전 경기에 지면 보통 손흥민은 울고, 김민재는 고개를 숙이더라. 다음 월드컵에서의 목표가 우승인지, 8강인지 그것은 알 수 없지만, 그 목표를 이루고 피치 위에서 고개 들고 환하게 웃는 두 스타의 모습을 꼭 한 번만은 보고 싶다. (이미 2018 아시안게임 때 봐버린 건가...)





이러한 깨달음을 얻은 것은 본격적으로 육아에 나서면서부터다. 물론 육아에서도 나는 언제나 후보선수지만, 가끔 오랜만에 선발출장을 할 때나 아내와 교체로 투입될 때면 수비수로서의 한계와 맞닥뜨린다. 아이의 반응은 손흥민보다 훨씬 능동적이고 다이내믹하다. 나의 대응은 늘 서툴다. 체력은 또 어떤가. 이미 킥오프 5분 만에 녹아웃(Knock-out)이 돼 버리고 만다.


박지성 육아.jpg 피를로를 막아선, 세 개의 폐인지, 심장인지를 가진 해버지조차......



이 시대, 이 세계 모든 육아인들은 이미 훌륭한 수비수다. 이따금 축구선수들은 부상이 심하거나 컨디션이 안 좋으면 경기를 쉴 수 있지만, 육아인들은 그렇지 못하다. 전 경기 출장이 필수다. 나는 조기축구회에서도 그저 그런 수비수 수준의 아빠일 테지만, 이 세상 모든 김민재들을 격하게 응원한다.


아, 물론 우리 아이가 실제로 손흥민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ㅋㅋㅋ 나 손웅정 역할 잘할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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