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를 워낙 좋아한다. 특히 국가대항전은 종목을 막론하고 좋아한다. 월드컵, 올림픽, 세계선수권 이런 대회들은 결혼 전에는 웬만하면 실시간으로 챙겨볼 만큼 좋아했다. 내셔널리즘이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인 건 알지만, 우리나라 선수가 우승하거나 승리하면 그렇게 기분좋을 수 없다.
2010년은 남아공 월드컵과 함께 밴쿠버 올림픽이, 아니 김연아 올림픽이 열리는 한 해였다. 수많은 일본 선수들과 유럽, 미국 선수들의 틈바구니에서 늘 시즌 베스트, 최고점을 경신하며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서왔던 김연아의 말 그대로 '대관식'이 열리는 해였다.
특히, 밴쿠버 올림픽 여자 피겨스케이트 부문을 단적으로 설명하면 A급 난이도를 자연스럽게 배치해 안정적으로 연기를 운용하는 김연아와 한 번의 S급 테크닉(a.k.a. 트리플 악셀)에 사활을 건 아사다 마오의 한판 승부였다.
당연한 것은 없지만, 김연아는 쇼트 프로그램에서 아사다 마오 전담 코치 타라소바의 멘탈털기 공작에도 굴하지 않고 클린 프로그램으로 1위를 차지했다. 결국 프리 프로그램에서 반대로 멘탈이 털리고 만 아사다 마오와 큰 격차를 벌리며 피겨여왕 김연아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흥분에 취한 나를 더욱 자극하는 인터뷰가 있었다. 은메달을 딴 아사다 마오의 인터뷰였는데, 무려 분하다는 내용이었다.
뭐가 분한 거지? 쇼트트랙도 아니고 김연아가 태클이라도 걸었나?
할 수 있는 걸 다 했다면, 심판판정이 불공정했다는 건가?
나의 정서로는 너무나 이해가지 않는 인터뷰였지만, 어쨌든 김연아가 이겼으니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이후로 많은 스포츠 경기에서 경기에 진 일본 선수들이 '분하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는 것을 알았다. 이쯤되니 내가 생각했던 그런 뜻, 억울하고 화가난다는 의미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많은 자료를 찾아보다가 한 유튜브 콘텐츠를 발견했다.
그럼 그렇지, 역시 오해였다.
悔(くや)しい를 분하다로 번역하는데, 여기서 쓰인 한자는 화날 때 쓰는 분(憤)이 아닌, 후회의 의미를 나타내는 회(悔)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경기에서 지면,
최선을 다했지만 아직 모자랐다.
많은 성원을 보내주신 국민 여러분들에게 죄송하다.
더욱 열심히 해서 다음 기회에 더 나은 성적으로 보답하겠다.
고 대체로 표현하는데 이런 우리나라의 정서를 외향적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경기에서 진 것이 '남들에게 미안한' 것이다. 이러한 표현 역시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관행적이고 수사적인 표현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쉬운 팬들과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언어인 것이다.
다만 선수 본인 스스로에 대해서는 대체로 후회 없이 싸웠다고 말하는 공감대가 있다. 우리도 기꺼이 선수의 최선에 박수를 보내는 문화가 최근 자리잡았다. 1위를 해서 기쁜 것은 기쁜 것이고, 행여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하더라도 과정에서의 노력과 최선을 다하는 모습 자체를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위 유튜브를 보면 일본사람들의 정서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우선 선수는 모든 귀책 사유를 자기에게 돌린다. 분하다는 내가 더 열심히 연습했다면 이길 수 있었을텐데 라는 아쉬움과 후회의 표현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표현이 우리나라보다 더욱 순위에 집착하는 일본인들의 화를 달래기 위한 수사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좀 더 연습했다면 이길 수 있었잖아?!
라는 비판을 차단하기 위해 스스로를 더욱 강하게 꾸짖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분하다, 화가난다는 정서의 결은 悔(くや)しい라는 표현과 일맥상통하지만, 그것을 타인에게 귀책시키는 발산형의 화라기보다 스스로에게 더 잘했어야지 채근하는 내향적인 '탓'에 가깝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고시엔(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에서도 우리가 혹사라고 부르는 에이스 위주의 경기 운영을 투혼이라는 낭만적인 단어로 설명하기도 하는데 이는 열정적인 팬들의 스토리텔링, 영웅 서사에 대한 목마름이 한몫한다.
일본은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무려 27개나 획득하며 종합성적(금메달 수 기준) 3위에 올라 스포츠 강국의 저력을 보여줬다. 런던 올림픽까지 우리나라를 종합순위에서 이겨본적이 없는 일본이 우리를 의식했는지는 몰라도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아낌없이 투자했고, 결실을 제대로 얻은 것이다. 그 기저에는 성적에 대한 부담감으로 짓눌렸을 일본 선수들이 있었을 것이다. 더할 수 없을 만큼 연습을 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을테니, '내가 좀 더 준비하지 못해 분하다'라는 말이 더욱 슬프게만 들린다.
불과 어제 나온 기사다. 2024년에도 여전히 悔(くや)しい는 분하다로 번역되고 있다. 우리나라와 얽힌 일은 아니라 크게 감정소모할 일은 없지만, 우리 언론을 통해서는 언제까지 일본이 경기에 지면 분하다고만 할지 모르겠다. 조회수를 유도하려는 얄팍한 수일지도 모른다.
KBS 스포츠 기자인 한성윤 기자가 전한 국가대표를 비유하는 한국과 일본의 관용적 표현이야말로 국제경기를 앞둔 양국의 정서를 잘 대변하고 있다.
한국은 태극기를 가슴에 '단다'고 하고, 일본은 일장기를 '짊어진다'고 한다.
국가대표라는 자부심으로 경기에 임하는 우리나라 선수들과 지면 안된다는 책임감으로 경기에 임하는 일본 선수들, 한일전이 열린다면 당연히 국뽕 가득히 우리 선수들을 응원하겠지만 이제는 일본 선수들에 대한 애잔함도 마음 한 켠에 늘 담아두고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