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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댄스 Nov 28. 2024

네가 하면 펀치라인, 내가 하면 AZ(아재)개그*

노래를 잘했다면 락이나 발라드를 자주 들었겠지만, 워낙 노래방 가는 걸 좋아한 나는 변성기를 지날 때쯤, 웬만한 발라드의 후렴구조차 쉽게 부를 수 없다는 한계를 자각하게 된다. 흥은 차오르고, 끼는 주체할 수 없을 때 만난 장르가 힙합이다. 쇼미3부터 애청자가 된 나는 이후 모든 시즌을 전편을 본방 내지는 방영 일주일 내 해치웠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 래퍼들, 말 그대로 리스펙할 수밖에 없다. 여느 작가들만큼이나 글(가사)을 쓰는 일 자체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인데, 적당히 해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랩의 본질은 예전에 고등래퍼2에 나왔던 배연서(a.k.a. 이로한)의 가사를 빌려 설명해 본다.


This is Rhythm & Poetry, 둘 다 없는 노래를 랩이라 칭하지 않지


Poetry, 시라 썼지만 운율을 지칭한다. 그리고 마디 끝의 모음과 받침 구조를 맞추는 Rhyme, 라임이 없으면 랩이 아니다. 그저 음가 없는 구호에 그칠 뿐.


기본적인 랩 가사의 원칙에 촌철살인의 의미까지 담아낸 한 줄 혹은 그 이상의 마디를 '펀치라인'이라고 부른다. 21세기의 아포리즘은 단연 펀치라인이다. 글 쓰는 입장에서는 이런 펀치라인들이 많은 영감을 준다. 대체로 아재개그와 작법이 몹시 유사하지만, 결정적인 분기점은 고민의 깊이, 그리고 메시지의 무게, 트렌드 이런 것들에 있다. 그런 것들이 빠진 아재개그는 흔히 말장난이라 일컬으며 의미와 표현(발음) 상의 유사성을 가지고 노는 재미가 있다.


- 물리학자가 웃을 때 내는 소리는 피식(Physic)
- 바나나 먹으면 나한테 반하나
- 햄버거의 색깔은 버건디
- 헌혈하면 나라가 위험해지는 가수는 지디 (GD P(피) 내려감)


부디 내 수준을 의심하지 않길 바란다. 어디서 퍼온 것이지 절대 내 머리에서 나온 것들이 아니다!


이제 인상적인 펀치라인 몇 가지를 소개한다.





1. BERMUDA TRIANGLE - ZICO (Feat. Crush, DEAN)




세대를 뒤바꿔 대세가 되어


저 한 줄에 담긴 위트와 자신감을 보라. 지코는 내 취향의 펀치라인을 가장 많이 들려준 래퍼다. 블락비 시절부터('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19금('넌 겨울해! 밤도 안 됐는데 자꾸만 지려해')도 많지만 위트와 깊이를 놓치지 않는 펀치라인을 많이 보여주었다. 그만큼 가사에 대한 고민이 많고, 레퍼런스가 방대하다는 증거다. 




2. 거북선 Remix - ZICO



무차별적인 삿대질 덕에 난 쉽게 주목을 받았고
무심코 너희가 던진 돌에 날 두른 편견이 깨져 나갔어


자신을 향한 선입견과 악플로 더욱 유명세를 탔고, 스타가 됐다고 선언하는 멋. 괴로움과 시련을 넘어서 오히려 경지에 이른 모습을 보여주는 저 한 줄은 '괜히 랩스타가 아니구나' 싶은 감탄을 자아냈다.




3. Born Hater - 에픽하이 (Feat. 빈지노, 버벌진트, B.I, MINO, BOBBY)



무한대를 그려주려 쓰러진 팔자


타진요 후폭풍을 겪고 본격적인 재기를 선언한 앨범에서 가장 유명해진 곡. 피처링 진용도 화려하지만, 타블로의 저 한 줄에 뒷목을 잡고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다. 본인의 팔(8)자가 쓰러졌는데 그게 무한대()를 그리기 위함이라는, 역시 경지에 다다른 대가의 한 줄이다.




4. 또 싸워 - 에픽하이 (Feat. 윤하)



이해를 두 번 해도, 일만 나면 오해


그러고 보니 지코만큼 타블로의 펀치라인도 좋아한다. 특히 타블로는 사랑노래에서도 여느 발라드 가수들이 보여줄 수 없는 깊이를 보여주는데, 이 노래는 에픽하이와 윤하의 만남이라 그냥 믿고 들으면 된다. 특히 저 한 줄은 오래된 연인 사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마디다. 오래 사귀면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작은 일 하나에 오해가 번지기 마련. '(2x2)+1=5'를 애정사에 대입할 수 있는 생각을 타블로가 아니면 할 수 있을까.




5. BE ! - 소코도모 (Feat. 팔로알토, 릴보이)



성공하면 Homerun 실패하면 Run home,
둘 중 하나일 뿐 아직 젊잖아 뭐 어쩔


팔로알토 역시 펀치라인하면 빠질 수 없지. 이미 OG 반열에 오른 래퍼로, 자신의 나이와 영향력을 잘 알고 현명한 라인을 보여주고 있다. 좁게는 이 곡의 주인인 소코도모에게, 넓게는 자신의 후배들이자 청춘에게 던지는 무심한 듯 다정한 메시지는 팔로알토의 수준을 짐작케 하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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