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냉정, 열정 아님 주의 ※
제목을 저렇게 써넣고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는 기억도 안 난다. 심지어 소설도 읽었는데 말이다. 2004년인가 나왔던 영화지 아마? 두오모 성당하고 뭔가 되게 일본스타일의 남자 주인공과 청초함으로 기억되는 여자 주인공(알고 보니 중국 배우)만 남은 영화다.
잡설이 길었다. 냉정과 열정은 태도의 문제다. 어느 정도 타고나는 문제지만, 둘 중에 어느 하나를 택할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선 좋은 결과를 위해 그 사이를 왔다갔다 골라서 쓸 수도 있다.
나는 이것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가 긍정과 부정 사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기질의 문제다. 억지로 택할 수는 있겠지만 쉽게 바뀌지 않는 문제다. 타고나길 원래 긍정적인 사람, 낙천적인 사람이 있고 부정적이며 비관적인 사람이 있다.
나에 대해 몇 안 되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낙천적인 성격이다. 기질은 유전인 것 같은데, 낙천적인 성격만큼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유년 시절 늘 한숨과 걱정을 달고 살았던 엄마 아래서 자랐지만, 막상 크게 걱정되는 건 없었다. 엄청난 자신감도 아니었고, 막연하게 '잘 되겠지' 수준이었던 것 같다.
물론 긍정의 신, 노홍철 선생 수준은 아니었다 ㅋㅋ 다만 자대배치를 받은 이등병 생활이 한 달쯤 지났을까,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노래를 흥얼거리다가(지금 생각하면 대담한 행동이면서도, 왜 설거지하면서 노래 부르는 게 잘못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식당 아주머니에게 의외의 칭찬을 들었다.
담담댄스는 참 낙천적이야~
제대할 날이 깜깜한 이등병이 콧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사실 군생활을 버티는 것은 별게 없다. 막연히 '그날이 오겠지' 생각하는 방법뿐이다. 물론 시간은 정말로 더디게 흘렸지만 이내 2년 2개월이 흘렀고, 무사히 제대할 수 있었다.
이렇다 할 좌절이 없었던 20대 시절을 지나 30대에 접어들자, 참 많은 빌런들과 고문관들이 앞길을 막아섰다. 그럴 때마다 나의 마음은 긍정의 수직선에서 어느새 왼쪽으로 미끄러져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긍정적일 수 있었던 것은
언젠가 이 일은 끝나 있을 것이고, 어떻게든 돼 있을 것이다.
아마 근데 웬만하면 내가 했을 것이다
라는 마음가짐이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됐다. '어떻게 이걸 해요?'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어떻게든 돼 있겠지'라고 미래의 나를 그려가며 일했다. 정말 그렇게 되는 게 신기할 뿐이었다.
내 나이 정확히 40이 됐다. 그렇게 돼 있을 미래는 현재의 영광을 지나 과거가 되었고, 지금의 나는 보통의 회사원이 그렇듯 어떤 이야기를 듣거나 업무를 받으면 '어렵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됐다. 제아무리 기질이라고 해도 바뀔 수 있는 건가 보다.
살면서 강력한 스트레이트나 어퍼컷 한 방에 다운되는 일보다는 적당한 거리에서 툭툭 맞아 나가는 잽(잔펀치)으로 누적된 충격이 훨씬 치명적이다. 수많은 부정의 언어들, 좋게 말해 현실주의자들의 냉정한 상황 인식과 예측은 대체로 맞아떨어진다. 나는 어디로 기울어져서, 어디로 미끄러져 내려갈 것인가. 만약 삶의 무게가 초부정의 자리에 알박고 앉아 끊임없이 왼쪽으로 기울어진대도 중력을 거슬러 긍정의 방향으로 기어오를 열정이 남아있을까.
우스갯소리로, 사업은 어느 정도 무식한 사람들이 잘한다고 한다. 어떤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너무 똑똑한 사람들은 시장분석 단계에서 결국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리기 때문이란다. 잘 되는 사업이라면 '레드오션'이라고, 생소한 사업이라면 '아무도 하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식이다. 하나의 긍정적 요인이 있으면, 그에 수반되는 부정적 요인은 최소 서너 가지는 된다. 1:3, 3에게 유리한 싸움이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믿는 사람들이 다시금 무게추를 초긍정의 자리로 힘겹게 돌려놓는다. 어쩌면 열정만으로 긍정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초긍정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냉정과 열정 사이 어디쯤에 자리 잡은 균형감각일지도 모른다. 막연한 기대감과 열정만으로 긍정의 좌절을 맛본 내게, 적절한 칠링(Chilling)이야말로 긍정의 여정에 꼭 필요한 하나다. 오늘부터 내 꿈은 냉정한 긍정가다.
이 글의 영감을 받은 것은 결혼을 앞둔 대학교 선배를 만났을 때다. 비슷한 처지로 살아온 터라 친해진 우리는 긍정주의자였던 나와 부정주의자였던 형의 변증법적 우정으로 20년의 인연을 이었다. 나는 그 형에게 현실감각을 배웠고, 그 형은 나에게 어느 정도의 책임감과 의지를 배웠다고 했다.
그 형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덕분에 사람답게 살게 됐다고
나는 그 형 때문에 삶의 방향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단지 슬럼프에 빠졌을 때 손을 건넸다는 이유만으로 늘 감사의 인사를 받고 있다. 단지 나는 그 형을 좋아했을 뿐인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결국 삶은 작은 긍정이 거대한 부정을 이기는 게임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