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꼭 뭘 남겨야 하나
이번 여름휴가는 꽤 길게 여행을 다녀왔다.
결혼 1주년 기념으로 올해가 시작되기 전부터 계획을 짜고 있었던 여행이었다.
짐을 싸며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아이패드.
여행 가서 순간마다 그때그때 드로잉 하고 기록 이라니 너무 멋지잖아!!라고 로망이 가득했지만...
막상 가져갔을 땐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몇 개라도 했음 고민도 안 하는데 작년 여행 때 정말 1도 안 했다.
공항검색대마다 꺼내는 번거로움만 기억이 남을 뿐이었다.
그래도 여행중간에 그림 그리고 싶은 순간이 있을지 모르잖아... 밀리의 서재라도 읽음 되잖아... 하며 합리화를 하며 설득했지만 결국 자기 객관화하며 안 챙겼다.
결론적으로 나는 나 자신을 꽤나 잘 알고 있었고.. 가지고 갔음 또 번거로움만 있었을 거 같아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한 여름의 유럽은 그 색감이 독보적이다 느낄 만큼 아름 다웠지만 그만큼 체력 소모도 엄청났다.
그리고 우리는 분명 슬로를 외쳤지만 눈앞에 풍경들을 지나치기가 어려워서 계속 걸었다.
그러다 보니 저녁에 숙소에 오면 씻고 뻗기 바빴고 그나마 듀오링고 연속학습 유지하기도 빠듯했다.
여행 도중 아이폰의 용량이 간당 간당 하여 오래된 사진들을 정리하는데 그중 예전 여행 사진들도 있었다.
이상하게 일상 사진은 잘도 정리하는데 여행사진은 차마 정리하지 못하고 미룬 탓에 중복되는 사진도 꽤나 있었고 이건 뭘 찍은 걸까 싶은 사진도 있었다.
게다가 구도는 왜 이렇게 엉망이며 자료로 쓸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사진들도 있었는데 지금은 거기에 비하면 양반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 사진 실력이 조금은 늘었구나 싶어 괜히 우쭐한 기분도 들었다.
예전에는 좀 강박적으로 있는 건 다 찍고 보자 식이이었다면 지금은 이 순간의 느낌을 더 담아 보자.
내가 남기고 싶은 것들을 생각해 보자로 바뀌었다. 그리고 좀 더 취향을 집어넣었다.(나름...)
이러나저러나 여행 내내 생각이 좀 많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여행에 꼭 뭔가를 남길필요가 있나. 그게 꼭 손에 잡히는 것이어야만 할까?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이번여행에도 갔다 와서 드로잉을 하고 여행노트를 만들 거라는 계획이 있지만 확신을 하지 못하겠다.(경험에서 오는 자기 객관화.. 하지만 응원해 주세요)
그런다고 해서 우리는 남긴 게 없을까?
돌아와서 생각해 보면 남편이야 말로 진짜 여행을 즐긴 거 같다.
남편은 여행 내내 눈앞의 아름다움에 집중했으며 이곳에 맛집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더 즐거울까만 생각했었다. 나처럼 이도 저도 아닌 거보다 그 순간을 즐기는 거야 말로 진짜 여행이 아닐까 싶다.
여행을 통해 남편은 길을 생각보다 잘 찾고, 나보다 훨씬 침착하며 위기에 강하고 주어진 시간을 잘 즐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함께 여행 가면 부부든 커플이든 친구든 한 번은 싸운다는데, 남편은 그럴 때마다 침착하게 나를 달래며 싸움으로 번지지 않게 해 주었다.(이렇게 쓰다 보니 조금 남편 자랑 같네요..)
남긴 게 없다 해도 이런 경험 들은 소중하고, 좋은 추억이란 생각에 강박을 조금 줄이기로 했다.
창작하는 여행을 꿈꿔지만 그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고 이도 저도 아닐 땐 그냥 맘껏 느끼고 즐기는 게
더 낫다.
여담으로 이번여행에서 한 단어만 고르라면 단연 '맥주'였습니다.
맥주가 물과 얼마 차이 안나는 이곳에서 맥주를 안 마시는 건 말도 안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