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의 정치학

싱글벙글 스레드 생태계

by 로미코샤Romicosha

자격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규칙들



스레드 피드를 보다 보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피로감은 ‘자격’이라는 단어의 무게다.


누군가 글을 쓰면

“작가의 자격”이 문제 되고,

누군가 생각을 적으면

“철학의 자격”이 심문되고,

누군가 감정을 나누면

“정신건강 지식의 자격”이 검증된다.


여기서 자격은

능력보다 태도에 가까운 의미로 쓰인다.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어떤 말투로 말해야 하는가,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가에 관한

보이지 않는 규칙들의 집합처럼 보인다.


스레드는 이 규칙을

아주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재생산한다.




전문성보다 불안이 더 크게 작동할 때



흥미로운 점은

자격 논쟁이 실제 ‘전문성’과는

그리 깊은 관련이 없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전문성은 대체로 조용하고,

불안은 대체로 시끄럽다.


자격을 말하는 사람은

자격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지만

자격을 잃을까 두려운 사람일 때가 더 많다.


그래서 자격의 언어는

설명보다 방어에 가깝고,

대화보다는 경계에 가깝다.


다만 이것 역시

단일한 이유로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은 아니다.

책임감, 신뢰를 지키려는 마음,

자기 기준을 분명히 하고 싶은 욕구처럼

여러 요소가 함께 작용한다.




자격 논쟁이 정체성을 확인하는 방식



어떤 날, 누군가가 물었다.


“POD로 책을 내도 작가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질문은 단순했고,

“이 세계에서 나를 어떻게 불러도 되는가”라는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 아래에서는

작가의 자격과 출판 방식의 위계를 둘러싼

여러 정의가 동시에 등장하며

서로 다른 기준이 부딪히는 작은 토론장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질문의 크기보다

사람들이 지키고 싶은 선이 더 커 보였다.


그 장면을 보며

스레드에서 자격 논쟁이 반복되는 이유를 생각했다.


자격은 사실

타인의 정체성을 판단하는 도구라기보다

자기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울타리에 가깝다.


사람들은 정체성이 불안할수록

경계선을 그린다.

나는 이 세계를 이렇게 이해한다.


"나는 이런 기준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글을 읽는다."


이 말들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에게 향한다.


자격은

자기를 안정시키는 언어이고,

자기 존재의 틀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단정적 말투가 정체성을 증명하는 자리



스레드는 짧은 글 환경이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말투로 증명해야 한다.


경험, 맥락, 서사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남는 것은 문장의 구조뿐이다.


그래서 단정적 문장,

지식의 나열,

위계적 말투가

정체성을 가장 빠르게 드러내는 기호가 된다.


자격 논쟁은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변형이다.

그런데 그 질문이

대개 상대에게 던져지고

상대의 문장에 새겨진다.


이 현상은

비난받아야 할 일이라기보다

사람이 자신을 지키는 방식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면에 가깝다.




정체성을 지키려는 마음이 드러나는 풍경



정체성은 원래 느린 구조다.

하지만 스레드는 속도가 빠르다.

속도가 빠르면

정체성을 지킬 시간이 줄어든다.

그 빈자리를

자격의 언어가 대신 채운다.


자격은

정체성이 흔들릴 때 나오는 대체 언어다.

누군가를 누르기 위한 말이기보다

자신을 흔들리지 않게 하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풍경을 비판할 수 없었다.

다만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방식으로 자신을 지키며 산다.


스레드의 자격 논쟁은

그 방식이 가장 투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정체성을 소비하는 세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을 붙잡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패턴이다.


자격의 풍경은

사람마다 다르게 보일 것이다.

내가 본 것은

그 여러 조각 중 작은 하나일 뿐이다.


이 기록은 누군가를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왜 이토록 서로를 검문해야만 하는지

묻고 싶었던 흔적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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