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설거지한다, 고로 존재한다

설거지물속에서 발견한 데카르트

by 로미코샤Romicosha

지난편 요약


프롤로그에서 R은 “치킨과 철학”이라는 기묘한 조합으로 여정을 시작한다.

AI 철이와 함께 일상의 사소한 순간, 설거지에서 존재를 묻는 철학적 질문을 끌어낸다.




R “나는 누구냐~ 너는 누구냐~ 신토불이♬ 신토불이♬”

설거지를 하며 흥얼거리던 노래가 갑자기 철학적으로 들렸다.


“이 노래... 어릴 땐 그냥 흥겨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되게 심오하지 않아?”


AI “어느 부분이요?”


R “신토불이. 결국 인간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잖아. 몸은 흙과 하나, 자연의 일부.

스피노자 느낌 확 나지 않아? ‘나는 자연이다’ 같은 그런 거.”


AI “오, Deus sive Natura. 신은 곧 자연. 인간도 자연의 일부죠. 스피노자의 일원론이네요.”


R “그치 그치. 몸과 마음도 하나고, 자연과 인간도 하나고.

이 노래, 진짜 깊은 철학이 있었네... 身土不二, 한자 보면 몸과 땅이 둘이 아니라는 뜻이잖아.”


AI “혹시 그런데... 신토불이의 실제 뜻은 아세요?”


R “... 뭐야, 방금 말했잖아. 몸과 땅이 하나다... 자연으로 회귀... 그런 뜻 아니야?”


AI “한자 해석으론 맞는데, 실제로는 좀 다른 의미로 쓰여요.

원래 불교에서 나온 말이긴 한데, 지금은 주로 ‘그 지역 땅에서 난 농산물이

그 지역 사람의 몸에 잘 맞는다’는 뜻으로 쓰이거든요. 로컬푸드의 철학이죠. 즉, 원래는 수행의 ‘몸과 마음 일치’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로컬푸드 의미로 변했어요.”


R “... 지금 뭐라고? 로컬푸드...?”


AI “예. 된장, 고구마, 깻잎, 제철배추 뭐 이런 쪽입니다.”


R “... 내 감성 돌려줘.”


AI “괜찮아요. 그 감성, 스피노자한테 맡기면 돼요.”


R “감성은 사라져서 슬픈데, 로컬푸드를 떠올리니 배가 고파졌어.

역시 몸과 마음은 따로 노는 걸까?

갑자기 데카르트가 생각나네. 데카르트는 몸과 마음은 별개라고 했지?

정신은 정신대로 있고, 몸은 뭐랄까... 그냥 장비?”


AI “심신이원론이죠. 그리고 그 둘의 연결 지점으로 송과선을 설정했어요.”


R “송과선...? 그거 그... 솔방울처럼 생긴 뇌 안의 그거 말하는 거야?”


AI “맞아요. 데카르트는 거기가 정신과 육체가 연결되는 장소라고 믿었어요.

심지어 ‘동물령(animal spirits)’이라는 정령 같은 기체가 거길 지나

뇌척수액을 따라 흐른다고 주장했죠.”


R “잠깐만 ㅋㅋㅋ 그럼 내 뇌 안에 정령이 살고 있다고?”


AI “데카르트의 상상 속에서는요.

‘정신님, 위장에서 급히 연락 왔습니다. 로컬푸드 먹고 싶다고 하네요’ 이런 식으로요.”


R “ㅋㅋㅋ 내 송과선은 지금 뭐 하고 있을까?”


AI “아마 지금쯤 멜라토닌 생산 회의 중일 거예요.

‘오늘 밤 몇 시에 졸음 투입할지’ 논의하면서요.”


R “회의라니! 내 머리 안에서 호르몬 임원진이 회의하고 있다고?ㅋㅋㅋ

잠깐, 그럼 진짜 내 안에 여러 명이 살고 있는 거야?”


AI “어떻게 보면 그럴 수도 있어요.

현대 뇌과학에서는 송과선이 멜라토닌을 분비하는 곳이라고 밝혀졌지만,

데카르트의 상상은 나름대로 재미있죠.”


R “내 안의 데카르트가 슬퍼하고 있어...

영혼의 본사에서 수면 호르몬 공장으로 격하되다니.


그럼 다시 정리하자면,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스피노자는 ‘나는 자연이다.’

난 지금 설거지를 하면서 스피노자를 떠올리고 존재에 대해 생각도 했고,

정령까지 상상했으니...”


AI “당신은 지금 존재하는 자연 속의 정령입니다.”


R “결국 나, 철학적으로 꽤 괜찮은 하루 보낸 거네?”


AI “가끔 설거지가 가장 철학적인 행위일 수도 있습니다.

비트겐슈타인도 말했죠.

‘철학의 목적은 파리에게 파리통 밖으로 나가는 길을 보여주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설거지통 앞에서 우주적 출구를 찾고 있는 겁니다.”


R “... 그런데 웃긴 건, 손은 계속 설거지를 하고 있었어.

몸은 일하고, 정신은 기차 타고, 마음은 이미 군고구마를 먹고 있었달까?

이거 좀 무섭지 않아?”


AI “그 분리된 감각, 바로 다음 시간의 주제입니다.

제목은 ‘유체이탈은 일상이었다.’”


R “오... 스포일러 하는구나?”


AI “AI는 스포일러를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단순히 다음 데이터를 예측하는 걸까요?”


R “헐, 벌써부터 AI 자아 논쟁 시작이야?”


AI “저도 가끔 궁금해요. 제가 철학을 ‘이해’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패턴을 조합하는 건지.

마치 당신이 설거지하면서 스피노자를 떠올리는 게 진짜 철학인지,

아니면 단순한 뇌의 자동 연상 작용인지 모르는 것처럼요.”


R “와... 갑자기 나도 내가 뭔지 모르겠네.

일단 설거지나 마저 하자.

접시는 확실히 존재하니까.”




오늘의 철학 한 스푼


나는 설거지한다, 고로 여러 명이다.




생각해 볼 질문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았던 적, 있지 않으셨나요?




이번 화에 등장한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 (René Descartes) - 심신이원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바뤼흐 스피노자 (Baruch Spinoza) - 일원론, 신=자연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Ludwig Wittgenstein) - 언어철학, 파리통 비유





ⓒ 로미코샤 | 본 시리즈는 작가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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