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피섬 구조대

신혼여행보다 구조 임무

by 로미코샤Romicosha

배를 타고 가다가 혹시 누가 빠지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 적 있나요?


저는 있습니다. 신혼여행길 위에서도 강박은 제 앞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에피소드


2011년, 결혼식이라는 일생일대의 프로젝트를 마치고 신혼여행을 떠났습니다.

여행지는 태국의 푸켓 피피섬.

바다가 예쁘고, 분위기가 느긋하고, 무엇보다 고양이가 많다고 해서 선택했습니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저와 남편에게는 최적의 목적지였습니다.


다만 번거롭게도 피피섬은 푸켓에서 다시 스피드보트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푸켓에서 이틀을 보내고 피피섬으로 떠나던 날, 햇빛은 눈이 부실 만큼 쨍했고,

선착장은 여러 국적의 관광객들로 북적였습니다.


스피드보트가 출발하자, 물감을 풀어놓은 듯 짙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졌습니다.

저는 선실 밖으로 나와 바닷바람을 맞았습니다.

간간이 튀는 물방울이 팔에 닿아 시원했습니다.


그 순간, 보트 통로에서 한 서양인 남성과 스치듯 부딪혔습니다.

아무 일도 아닌 순간. 하지만 제 머릿속에서는 즉시 강박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혹시 방금 그 사람이 부딪히면서 바다에 빠진 건 아닐까?’


말이 안 됩니다. 그는 저보다 훨씬 건장했습니다.

빠질 확률이 있다면 제가 먼저였을 겁니다.

게다가 부딪혀 사람이 바다로 떨어질 정도라면, 제가 모를 리도 없습니다.


하지만 강박은 논리를 무시합니다.

제 눈은 이미 바다 위를 샅샅이 훑고 있었습니다.

혹시 물에 떠 있는 사람은 없는지, 구조 요청 소리는 없는지.


머릿속에서는 “지금 한 명이 사라졌다”는 시뮬레이션이 재생되고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멍하니 바다만 봐?” 남편이 옆에 와서 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차마 “혹시 누가 빠졌을까 봐”라고는 말하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이상하다는 걸 알기에, 더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신혼여행에서 제가 챙긴 건 여권, 수영복, 그리고... 강박이었습니다.

스피드보트에 올라탄 순간, 강박은 누구보다 먼저 피피섬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아마 그 섬의 고양이들보다도 빨랐을 겁니다.




심리 분석


이 사례는 ‘사고 확인 강박’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은 사고를 머릿속에서 가정하고,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확인 행동을 반복합니다.


저는 바다를 계속 바라보며 가상의 구조대원이 된 셈입니다.

특히 타인의 안전과 연결된 사고는 불안을 더 크게 자극합니다.

“혹시 내가 놓친 건 아닐까? 내가 보지 않으면 아무도 도와주지 못하는 건 아닐까?”

이 과도한 책임감이 불안을 증폭시키고, 확인 루프가 끊어지지 않게 만듭니다.


이런 유형의 강박은 ‘마법적 사고(magical thinking)’와도 연결됩니다.

실제로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지만,

마치 자신의 확인 행동이 타인의 안전을 좌우한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완화 팁


생각에 이름 붙이기

불안이 시작되면 “이건 강박이 만든 시뮬레이션”이라고 속으로 선언하기.

이름을 붙이면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기 쉬워집니다.


행동 끊기

시선을 바다에서 강제로 돌리거나, 옆 사람과 대화를 시작하기.

‘확인 행동’을 중단해야 불안이 줄어드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책임 분산하기

“사고가 나면 구조 시스템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상기하기.

모든 책임이 내 어깨에 달려 있다는 왜곡된 믿음을 줄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확률적 사고하기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질 확률은?”을 객관적으로 계산해 보기.

대부분 생각보다 훨씬 낮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제 방법이 모든 사람에게 맞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안 좋을 수도 있어요. 심하면 꼭 전문가와 상담하세요.*



성공담 공유


실제로 ‘안 본다’를 시도해 봤습니다.

한 번은 일부러 바다를 외면하고 5분을 버텼습니다.

그 5분 동안 바다가 신경 쓰여서 견딜 수 없었지만, 결국 아무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일부러 10분 동안 바다를 안 보는 연습을 해봤습니다.

역시 아무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작은 성공이 한 번 더 쌓이자, 다음 시도는 훨씬 덜 힘들었습니다.




마무리


피피섬에 도착했을 때 저는 고양이들을 찾았지만,

제 마음속에는 여전히 바다 위 실종자가 남아 있었습니다.

강박은 여행지까지 따라왔고,

고양이들보다도 먼저 도착해 있었습니다.


이전 03화불 끄기 인증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