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 시 알코올 스프레이는 필수

알코올 스프레이는 나의 무기

by 로미코샤Romicosha

공공 화장실보다 풀숲이 더 안전하다고 느껴본 적 있나요?


저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 현장에는 뜻밖의 목격자, 다람쥐까지 있었습니다.




에피소드


저는 알코올 스프레이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알코올 스프레이가 없으면 아무 데도 못 갑니다.


예전부터 가게 문고리나 화장실 수도꼭지처럼 많은 사람이 잡는 부분은,

제 머릿속에서 늘 세균 번식 다큐멘터리의 클로즈업 장면으로 재생됩니다.

그래서 잡기 전에 알코올 스프레이를 뿌리거나, 휴지로 감싸 쥡니다.


카페에서도 테이블 위를 알코올 티슈로 닦아야만 마음이 놓이고,

그제야 가방에서 물건을 꺼냅니다.


공공 화장실에서는 알코올 스프레이로 변기를 닦은 뒤

휴지를 깔아야 앉을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을 끝내고 나면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칩니다.

“내 엉덩이는 뭐 얼마나 깨끗하다고...”


자기모순은 뻔히 보이지만, 그래도 그 절차 없이는 앉지 못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앉을 수 있으면 다행인데,

어떤 화장실은 제 모든 무기와 의지를 무력화시킵니다.


남편과 캠핑을 갔을 때, 그곳의 화장실은 푸세식이었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변기 중앙에 커다란 구멍,

그 아래로는 여러 사람의 흔적이 그대로 보였습니다.

변기 표면에는 ‘누군가 다녀갔다’는 증거가 여실히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열지 않았습니다.

저기는... 아무리 알코올 스프레이를 난사해도 안 됩니다.


결국 큰 바위 뒤 풀숲으로 들어갔습니다.

볼일을 보던 중, 시야 한쪽에서 무언가 움직였습니다.

다람쥐였습니다. 그리고 볼일을 보는 내내

제가 외롭지 않게 곁을 지켜줬습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안심이 되었습니다.

대자연의 품이 캠핑장 화장실보다 훨씬 포근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가끔 생각합니다.

다람쥐에게는 세균을 두려워하는 제 모습이

참 우습게 보였을지도 모른다고요.




심리 분석


이건 오염 강박에서 안전 행동(safety behavior)과 회피(avoidance)가 결합된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알코올 스프레이, 티슈 닦기 → 불안을 줄이려는 ‘안전 행동’.

아예 푸세식 화장실을 포기하고 풀숲으로 간 것 → ‘회피’.


이 두 가지는 단기적으로는 안심을 주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불안을 강화합니다.

“나는 스프레이 없이는 안전하지 않다”는 믿음을 굳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회피 행동은 불안을 일시적으로 줄여주지만,

자신감을 떨어뜨리고 행동 범위를 점점 좁혀갑니다.

“내가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학습이 강화되면서,

비슷한 상황에서도 회피하게 되는 악순환이 만들어집니다.




완화 팁


안전 행동 줄이기

스프레이 사용을 점진적으로 줄여보세요.

예: 평소 두 번 뿌리던 걸 한 번만 뿌리기 → 언젠가는 안 뿌리기.


낮은 단계 노출 훈련하기

바로 푸세식 화장실에 도전하는 건 무리입니다.

먼저 비교적 깨끗한 공공 화장실에서 닦는 절차를 하나 줄여보기.

불안을 견디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는 게 핵심입니다.


‘충분히 안전한 상태’ 목표 세우기

‘완벽하게 무균 상태’는 불가능합니다.

대신 ‘충분히 안전하다’는 기준을 세우고, 거기서 멈추는 연습을 해보세요.


대안 찾기보다 견디기

풀숲으로 가는 것처럼 대안을 찾는 대신,

불완전한 상황을 견디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 정도면 참을 만하다”는 기준을 조금씩 낮춰가는 훈련을 해보세요.


관찰하기

다람쥐가 본 저는 아마 자연의 일부였을 겁니다.

때로는 “내 불안이 과장된 다큐멘터리일 뿐”이라는 사실을

한 발짝 떨어져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완화됩니다.



*제 방법이 모든 사람에게 맞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안 좋을 수도 있어요. 심하면 꼭 전문가와 상담하세요.*



(일시적) 성공담 공유


어느 날 저는 카페에 갔습니다.

그 카페의 화장실은 깨끗했기 때문에 변기를 알코올로 닦지 않고,

대신 휴지만 깔고 앉아봤습니다.


찝찝한 기분이 계속 들었지만, 제 엉덩이는 무사했습니다.

며칠 뒤에는 레스토랑 화장실에서 휴지도 깔지 않고 그냥 앉아봤습니다.

그 순간 팔에 소름이 돋았지만,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성공 후에도 결국 알코올 스프레이를 뿌리고 있습니다.)




마무리


알코올 스프레이는 제 마음의 부적 같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다람쥐와 함께한 풀숲에서처럼,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더 자유로울 때도 있습니다.


강박은 안전을 약속하지만,

진짜 평화는 불완전함을 받아들일 때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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