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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i Apr 19. 2024

결혼에 대한 고찰

난 어느정도 내가 똑똑하다고 생각했었다. 공부도 제법 했었고, 경험도 풍부했으므로 결혼 전에는 내가 삶에 대한 식견이 있는 줄 착각했었다. 결혼 후, 나는 다시 생각했다. 이렇게 똥멍충이가 있을 줄이야. 세상은 내가 바라보는 시선으로만 돌아가는 줄 아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그런 바보였던 것이다.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심지어 가정시간에도 ‘바느질 하는 법’, ‘사과 깎는 법’은 가르쳐 줬어도 결혼에 대한, 혼인에 대한 심도있는 가르침은 없었다. 왜 그랬을까? 깊이 알면 다치니까? 깨달으면 결혼 따윈 않할까봐? 그래서 옛날 옛적에는 뭣도 모르는 10대에 성혼을 시킨걸까? 세상을 알고, 나를 알고, 좀 더 나아가 혼인이 법적으로 어떻게 결속을 시키고, 이혼하게 될 시, 어떠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알면 치를 떨고 부리나케 도망가버릴까봐? 결혼에 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브한 상태를 유지하길 바라는 건 국가 존속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전제조건이 아닐까? 라는 생각까지 들게 할 정도로 그 실체는 너무나 꽁꽁 싸매져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예전에 ‘신여성’으로 불리우는 그런 여성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고,  고학력자들도 넘쳐나는 시대여서 그런가? 결혼률, 출산률이 보기 안좋게 나락으로 가고 있는 추세이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로봇청소기가 다양하게 출시되고, 건조기가 이제 각 집에 한 대씩 있는게 이상하지 않을만큼 현대화 되어가지만 결혼의 어떠한 단면은 고인물처럼 썪어 있고 모두가 쉬쉬하고 있다. 집안마다 가풍이 다르기도 하고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볕에 내놓기 보단 음지에 가려져 있다보니 뭐가 스탠다드인지 그 기준은 책이나 뉴스나 몇몇의 지인들과의 대화로 나름의 기준을 세우며 '이게 맞나', '내가 잘하고 있나?', '다 이렇게 사는 거니까, 내가 토를 달며 사는 것 보다 맞춰야겠지?' 라며 모난 돌이 정 맞을까봐 목소리를 내기보단 조용히 살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아직까지 모성신화는 굳건한 대나무처럼 존재하여 “아이는 엄마가” 의 타이틀이 곳곳에 붙어 따라다닌다. 결혼만 해도 삶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아이가 생기면 여자는 엄마가 된다. 처음으로 엄마라는 타이틀을 부여 받지만, 여자는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 양육에는 아이 바이 아이처럼 정답이 없지만, 엄마에는 마치 정답이 있는 것 마냥  하소연을 하면 안되는 것처럼 묵묵히 엄마의 역할을 마치 처음이지 않은 것처럼 준비된 엄마인 것 마냥 야물딱지게 소화시켜야 한다. 주변의 엄마들에게 조언과 육아 팁을 공유하며 한마음 한 뜻, 우리는 같은 편처럼 삼삼오오 힘을 합치다가도 삔트 하나 안맞으면 기다렸다듯이 여자의 적은 여자인 것이 맞는 것 마냥 어느순간 적이되어 버리는 얕은 관계들의 향연은 육아 중에 누구든 한번쯤은 떫은맛을 맛보았을 것이다. 또한 맞벌이가 아니면 여자는 잉여인간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다. 워킹맘들로부터, 불특정 다수의 남성들로부터, 시가 사람들로부터, 모르는 어르신들로부터 세상 팔짜 핀, 결혼하고 개과천선한 여자취급을 받을 수 있다. 결혼 전, 그 누구보다 잘나갔고, 예쁜 삶을 살고 있었는데 그건 중요치 않다. 그냥 어느 순간 신수 좋아진 사람으로 변해 남아있을 뿐이다.


남자 집안네 대소사에는 늘 남자보다 앞장서서 팔 벗고 참석해야 한다. 여자 직업의 유무, 아이의 유무, 집안의 경제력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그 결은 크게 엇나가지 않고 비슷한 선상에 머문다. 결혼과 동시에 아내로써, 며느리로써, 엄마로써, 자식으로써 여러가지의 역할이 생겨난다. 인턴생활도 없다. 실무에 바로 투입되지만 이 역할을 삐그덕 거리면서 수행하는 동안 투덜거려서는 안된다. ’너만 그러는거 아니야‘ ’다른 사람들도 다 똑같애‘ '옛날에는 말이야....' '지금은 세상 편해진거지, 쯧쯧 복에 겨운지 알아라' 라는 말로 ‘유별나다’라는 시선으로 힐긋거리며 쳐다볼 수도 있으니 투덜이 스머프가 되기보단 묵언하는 스님처럼 누구나 가슴에 상처하나쯤은 새겨진 것처럼 참으면서 묵묵히 모든 역할을 소화해야한다. 이쯤되면 결혼은 수행자의 길로 들어서는거랑 맘먹는 것일수도 있으리라.


결혼생활을 하면서 난 생각했다. 난 결혼과 안맞는 사람인 것 같다고. 굉장히 독립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사람으로써 우리나라의 결혼문화와 관습에는 좀 동떨어진 사람인 것 같다고 스스로 자책하는 날들이 많아졌었다. 그러다가 범주를 더 좁게 잡아 어쩌면 '이 사람과 나는 결혼해서는 안됐었다'라며 나와 그 사람과의 관계로 돌아가 너와 나의 문제로 제기하여 생각의 생각을, 꼬리의 꼬리를 물고 머릿 속을 팽창시킨다.  


어쨋튼 난 다시 굳게 다짐을 한다. 내 인생에서 결혼은 이거 한번뿐이라고, 이혼을 할 시, 다시는 결혼이라는 걸 하지 않겠노라며 다짐의 다짐을 한다. 법적으로 얼기설기 엮어 있으니 날개가 부러진 듯 자유스럽지 못함이 나를 더 숨막히게 조여오는 것 같다. 책임과 의무가 얽힌 법률혼보단 난 자유스러운 사랑이, 삶이 그립다. 혼인이라는 것이, 결혼이라는 것이, 법적으로 얽혀있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뜻을 내포하고 있는지 잘 몰랐다. 그 답답함이 좋아서, 법적인 효력을 원해서, 서로간의 구속이 좋아서,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고 싶어서, 결혼이라는 걸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난 자유롭고 싶다. 법적인 책임없이 막무가내로 살고 싶다는 게 아니다. 사랑이 식어, 사랑이라는 건 찾아볼 수도 없으면서 책임과 의무감으로 평생을 상대와 얽혀서 살아간다면 나에게 있어서는 그보다 더 큰 고통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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