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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쟈 Sep 08. 2023

너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영화[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리뷰

개봉: 2023년

감독: 미야케 쇼

출연: 키시이 유키노(케이코), 미우라 토모카즈(회장)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던 날, 초행길이라 길을 헤매는 바람에 영화 시작한 지 5분이 지나서 입장하게 되었다. 한여름 밝은 곳에서 실내로 들어가자 갑작스러운 어둠에 적응하느라 한동안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예매해 뒀던 내 자리를 찾아가는 것은 포기하고, 손을 더듬어 앞자리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고개를 들어 화면을 보았을 때 처음 만난 것은 한 여성 복서가 링 위에서 미트 치기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마치 악기를 두드리는 것처럼 가볍고 경쾌한 소리가 크게 귓가를 울렸다. 딱 맞아떨어지는 손동작에서 쾌감이 느껴졌다. 




이 영화는 유독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샌드백을 치는 소리, 자동차의 경적 소리, 철길 위를 달리는 열차 소리가 너무나 선명하게 들려서, 어떤 순간에는 마치 열차가 나를 곧 덮칠 것처럼 위협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게 크고 강한 소리를 들으면서 다양한 소리로 가득한 세상에서 아무런 소리 없이 살고 있는 케이코를 생각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지금 듣고 있는 큰 소리가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케이코의 청각 장애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지금부터 절대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말했을 때,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코끼리’를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이 영화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소리가 없는 세상에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관객들이 체험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서로 대화를 나누기 위해, 하고자 하는 말을 글자로 바꾸는 한 단계를 더 거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케이코가 동생과 수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영화 속 몇몇 장면에서는 관객들에게 즉각적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들이 수어로 대화를 나눌 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관객들은 알 수 없다가, 바로 이어지는 자막을 담은 검은 화면을 통해서야 알게 된다. 어째서 이런 연출을 했을지 궁금증이 생겼는데, 뒤에 케이코가 새로운 체육관에 등록을 하러 가 새로운 코치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통해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새로운 코치가 하는 말은 케이코에게는 즉각적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녀의 말이 발화되었을 때 관객인 우리에게는 바로 그 의미가 전달되지만, 케이코는 음성을 글자로 변환하는 기계를 통해서 활자화된 언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 조금의 지연, 별 차이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그 지연을 케이코는 매일 겪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의 매력은 바로 이런 지점에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려는 노력




복싱을 그만두려는 결심을 하고 찾은 체육관에서 차마 편지를 우체통에 넣지 못하고 망설이던 케이코가 거울 앞에서 회장님과 함께 쉐도우 복싱을 하면서 웃으면서 또 울고 있는 모습은 그녀의 복잡한 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눈물이 고여 있으나 꾹 참아 내려는 그 눈빛에서, 복싱을 그만두려는 결심을 접고 다시 연습에 매진하는 그 눈빛에서 우리는 케이코 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마치 서로의 다음 동작을 예상한 듯 딱딱 맞아떨어지는 코치와의 연습 장면과 달리, 케이코의 마음은 다른 사람에게 쉽게 전해지지 않는다. 케이코는 사람들의 입모양을 읽어서 대화를 할 수 있으나, 역병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입을 가리고 있으며, 자신이 입을 가리고 있다는 사실마저 잊을 정도로 이런 상황에 익숙해진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을 나누며 살기란 얼마나 힘든 일일까.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케이코의 눈을 오래 들여다보게 된다. 그의 눈을 들여다보면, 혹시 그 마음을 알 수 있을까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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