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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Yu Sep 18. 2024

장 크리스토프

그리고 베토벤의 향기

    한참 만에 노인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음악가라는 직업이 얼마나 훌륭한지 알았느냐? 저런 훌륭한 극을 만드는 것 이상으로 명예로운 일이 또 있을 것 같으냐? 그건 이 세상의 하느님이 되는 일이지.


    아이는 깜짝 놀랐다. 사람이 그것을 만들었다니! 그는 꿈에도 그런 생각은 못했다. 그것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며 자연의 손에 의해 이룩된 것 이려니 하고, 그는 거의 믿고 있었다... 그것을 한 인간이, 언젠가 자신이 그렇게 될 음악가가 지었다니! 오오! 하루라도 좋으니, 단 하루만이라도 좋으니 그렇게 되고 싶다! 그렇게만 된다면,


*소설의 내용은 동서문화사의 동서세계문학, 장 크리스토프/손석린 옮김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로맹 롤랑. 1866년 1월 29일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 니에브르 주의 소도시 클람시에서 태어났다. 1880년 교육을 위해 파리로 옮기고 수사학과 철학을 공부. 1904~1912년 총 10권의 대하소설 <장 크리스토프>를 집필하여 19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대하소설의 선구가 된 이 작품은 베토벤과 롤랑 자신의 정신을 이상화한 독일 태생의 천재 음악가 장 크리스토프의 고난과 파란 많은 생애를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세기말적 사회의 문명, 도덕을 비판한 것으로, "문장에 의해서 묘사된 훌륭한 음악소설"이라는 평을 들었다. - 네이버 지식 백과 -


    롤랑 자신은 이 작품을 하나의 음악 시라고 불렀다. 장 크리스토프에게서 베토벤의 한 초상화를 보려고 해서는 안 된다. 크리스토프는 베토벤이 아니다. 그는 새로운 다른 베토벤이고, 베토벤 유형의 영웅이긴 하나 베토벤이 살아온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 즉 우리 세계에 던져진 하나의 자립적인 존재이다. 초반에 등장하는 몇 가지 가정이 갖는 특징이 베토벤과 유사할 뿐이며 내가 이러한 유사점을 계획한 것은 주인공에게 베토벤적인 혈통을 확립하고, 그의 뿌리를 라인 지방 유럽의 과거 속에 박기 위해서였다. - 로맹 롤랑, <장 크리스토프>에 부치는 글,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모두 음악가인 집안의 아들로 어릴 적부터 음악 교육을 받을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넉넉하지는 않지만 배고프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난 크리스토프, 방탕한 생활로 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숨을 거두고 14살에 가장이 된 크리스토프, 가장이라는 역할이 소년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그를 굴복시킬 것은 없어 보이는 의지를 보여준다. 1908년 안개 자욱하고 무언가에 짓눌린 프랑스 거리에서 그의 무대가 펼쳐진다. 음악가로서 사람을 만나고 친구를 사귀고, 사랑을 하고, 도움을 구걸하고, 배신을 당하고 다시 만나고 사랑하는 인생의 굴레는 여느 평범한 삶과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느냐로 그 사람의 정체성을 정의한다면 소설을 통해 크리스토프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생각과 철학을 읽을 수 있고, 그 철학을 바탕으로 타협하지 않는 자유 의지대로 행동하는 음악가라고 그를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1900년 전후의 프랑스, 독일 사회에서 고유한, 그리고 숭고한 본연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모습을 개탄하고 특히, 사회의 부조리에 저항하지 않는 개인의 무기력함, 그리고 개인주의로 포장된 혹은 개인의 자유라는 이름에 숨어버리고는 움직이지 않고 심지어 합리화하려는 현실에 분개하며 그것을 타개하고 변화시키기 위한 건 오직 행동이라는 건 크리스토프의 모습이자 로맹 롤랑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일 것이다. (이 서술을 백여년이 지난 지금 이 시대에 견주어 보아도 틀렸다고 할 만한 부분이 없어보인다. 과거에도 개탄했었고 오늘도 개탄할 것이며 미래도 그럴 것이라는 믿음이 든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기보다 우리는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많은 명 문장들이 잠시 읽기를 멈추게 하고 시대와 인간관계의 깊이를 넘나드는 경이로운 통찰력에 감탄하며 읽기를 반복하며 문장을 되새기게 만든다. 물론 2천 페이지에 이르는 소설에 명 문장들로만 가득했다면 아마 질식해 버렸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는 않으니 안심해도 되겠다. 또한 소설의 줄거리를 소개하는 것도 참 무의미해 보인다. 어쩌면 수많은 사람들 속에 묻혀 있는 한 사람의 세월을 따라가는 흔한 이야기로 보이기도 해서 그렇다. 그 세월 속에는 깊은 우정이 있었고 연애와 사랑이 있었다. 새로운 관계가 생겨나고 사라짐의 연속은 그다지 독특할 없다는 이유라면 이유겠다.


   명 문장만큼이나 세상을 묘사하는 롤랑의 숨 막힐 듯 아름다운 솜씨 좋은 표현력에도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음미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는 자기 마음에 물어보기도 하고 영혼 속을 탐색하며 그 밤을 지새웠다.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렇다. 자신의 내부에 싹터 있는 본능과 악덕을 인식한 것이었다. 그는 오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은 아버지 곁에서 밤샘을 한 기억, 그때 한 맹세가 생각났다. 그 뒤의 자기 생활을 돌이켜 보았다. 맹세는 낱낱이 저버렸다. 지난 한 해 동안, 나는 과연 무엇을 했던가? 자신의 신을 위해, 자신의 예술을 위해,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과연 무엇을 했단 말인가?


    열매는 썩을지언정 나무는 썩지않아.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처럼 한 번 위대한 경험이 있는 자는 위대하지 못하게 되는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겠지요.


    독일 사상은 홍수 밑바닥에 잠들어 있었다. 멘델스존식, 브람스식, 슈만식의 사상이라, 또 그들에 이어 과장된 감상조의 가곡을 만들고 있는 군소 작가들의 사상이란 정말 어떠한 것이었을까? 그것은 모두 모래로 이루어져 있었다. 바위 하나 없었다. 그것은 축축한, 일정한 형식이 없는 진흙이었다.... 그것은 모두 너무도 어리석고 유치한 것이었으므로 크리스토프는 청중이 깜짝 놀라고 있을 것이 틀림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자 아주 태평스러운 얼굴뿐이었다. 지금 듣고 있는 것은 아름다운 음악뿐이고, 즐거울 거라 믿고 있는 듯했다. 이러한 그들이 어떻게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었겠는가?


    처음 걸어 다녀 본 바로는 파리는 오래된 데다가 난잡스러운 도시라는 인상만 받았다. 요컨대 크리스토프는 중세기 도시의 여러 가지 케케묵은 유물을 여기서 발견했다. 이 도시는 보통 선거라는 혜택을 인정하고 있으면서도 고답적인 옛날의 부랑자적 유풍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 불쾌한 놀라움을 느꼈다.


    (프랑스) 여성은 이 사회에서는 어처구니없을 만큼 커다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남성의 반려라는 것만으로는 이제 만족하지 않았다. 남성과 동등하게 되는 것으로도 만족하지 않았다. 여성의 쾌락이 남성에게 가장 첫째가는 법칙이 되어야만 했다.


    숨겨져 있는 프랑스의 참다운 모습을 보고서, 프랑스 사람의 성격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그의 생각은 모두 뒤집혔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쾌활하고 사교적이며 털털하고 화려한 민중이 아니라, 자기중심적인 고립된 정신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예술가를 비평하는 것과, 뢰브쾨르처럼 비평에 있어서 위인을 비방함으로써 대중의 어리석음에 아부하여 많은 사람을 웃기는 효과밖에 구하지 않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었다. 그리고 크리스토프는 실제로 자유로운 비평을 하고 있었지만, 슬며시 따로 전혀 손을 대지 않는 음악이 있었다. 그것은 음악 이상의 음악, 음악보다 더 훌륭한 음악이었다. 거기에의 위로 힘, 희망을 길어 낼 수 있는 자비롭고 위대한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이었다. 베토벤의 음악이 바로 그런 음악이었다.


    모든 남녀가 자기들 사이에 한 명의 천재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 지금은, 언제나 그런 것처럼, 그 천재를 질식시키려고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그들의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 꽃을 보면 그것을 꽃병에 꽂고 싶고, 새를 보면 그것을 새장에 가두고 싶고, 자유로운 사람을 보면 그를 자신의 노예로 만들고 싶어지는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의 단순한 생활을 써야 하네. 잇따르는 나날이 모두 다 똑같은 것 같으면서도 실은 하루하루가 독특한 나날, 세계가 시작된 맨 첫날부터 같은 한 어머니의 자식들처럼 계속되어 온 날의 조용한 서사시를 쓰도록 하게. 그것을 단순하게 쓰라는 말일세. 오늘날 예술가들의 힘을 부질없이 소모시키고 있는 치밀한 기교 같은 것은 전혀 염두에 두지 말고, 자네는 모든 사람을 향해서 얘기를 하는 거야. 그러기 위해 세상 사람들이 쓰는 말을 사용해야 하네. 말에는 귀천의 구별이 없으며, 해야 할 말을 정확하게 하느냐, 정확하게 하지 못하느냐 하는 구별이 있을 뿐이지.


    "그야말로 프랑스의 소시민다운 생각이군!" 크리스토프는 반박했다. "비평가가 자기 작품을 어떻게 생각할지 그런 일을 염려한단 말인가!.... 비평가라는 건 승리나 패배를 기록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승리자가 되면 그것으로 되는 거야!...."


    크리스토프는 어떻게 혼의 고독에 익숙해질 수 있었던 것일까. 어떻게 예술 정치 종교의 당파로부터, 인간의 모든 단체로부터 유대를 끊을 수 있었던 것일까. 조르주는 의아해했다.


    "아뇨. 자신이 낳아 놓은 시대의 희생이 된 힘찬 시대, 우리 시대는 마치 그것입니다만, 그러한 시대가 가진 비극적인 위대성은 그것을 느끼는 사람을 도취케 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사람들은 인내의 숭고한 기쁨을 이제는 맛볼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대 상냥한 예술이여, 얼마나 우울한 시간 속에서...




롤랑의 영웅, 베토벤. 비록 베토벤의 모티브는 유년시절로 한정적이라고 밝혔지만 간간히 드러내는 베토벤에 대한 경외감에서 독자는 베토벤의 음악이 소설 전체에 한 편의 장대한 교향곡처럼 녹아들어 가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임윤찬, Beethoven Piano Concerto No. 5 "Emperor(황제)" III. Rondo. Allegro,

유니버설뮤직 클래식

https://youtu.be/x-OwtWX1AbA?si=37cIrFzE--BYG5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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