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가는 설렘 1도 없음.
새벽 3시 20분. 집을 나서야 하는 시간이다. 4시간 전에 잠을 자지 않기로 마음먹었지만 결국 피로한 눈두덩이를 비비며 일어났다. 곧장 세수, 아니 얼굴에 물을 한 번 끼었고 곧장 털어내고는 준비해 둔 옷을 챙겨 입고 캐리어를 질질 끌고 나서기까지 채 30 분도 걸리지 않았다.
해외출장은 항상 설렐 줄 알았는데 언제부턴가 좀 더 긴, 때로는 아주 긴 번거로운 출근길이 되어 버렸다. "나 어디 가서 허투루 일 하는 사람 아니니 제발 눈 감았다 뜨면 짠~! 도착해 있으면 안되겠니?" 그래도 어제와 같이 똑같은 길을 오고 가는 그 출퇴근 길은 아니잖아, 뭔가 분명 흥미로운 게 있을 거야라는 나도 믿지 않는 주문을 외워본다. 예를 들자면 오랫동안 잊었던 친구를 공항에서 우연히 만나 눈 동그랗게 뜨고 서로 말문이 막히는 상상 같은 거. 그리고 시원한 맥주 한 잔 들이키는거지... 쩝. 됐다. 그러면서도 행여나 가는 길 교통 정체로 늦으면 어떡하지? 그리고 출국자가 반드시 챙겨야 할 세가지 여권, 항공권, 정신. 이걸 두 번 세 번 확인하다보면 새벽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깊은 잠을 들지 못하게 하는 각성을 부른다.
택시를 부르고 기다리는 집 앞 편의점, 그 이른 새벽 서늘한 공기 속에서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맥주 캔을 까고 있는 사람 둘이 있다. 그 시간에. 나도 한 때 늦게까지 별 빛 아래 편의점 맥주를 즐기곤 했지만 세 시까지는 아니었다. 그리고도 다음 날 하루를 버틸 재간이 없으니까. 적막 속에서 나지막한 하지만 걸걸한 취기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택시에 올랐다. 다시 공항 가는 버스에 올랐고, 비행기에 올랐고, 또다시 택시에 올라 호텔에 도착했다. 이동으로만 12시간을 보내면 만사가 귀찮아진다. 그나마 동아시아권이니 12시간이 아니겠는가. 비행기 바퀴가 땅에서 떨어져 있는 시간만 12시간 된다면 한 두 번쯤은 설레는 출장길이 될지도 모르겠다. 소음과 진동에 예민한 나는 비행기에서 잠을 청해본 들 잠에 빠진 적은 없다. 전날 졸음을 참아가면서 피로를 일부러 끌어올려도 보았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자려는 노력이 더 피곤하게 만드니 언젠가부터 이것도 포기하고 열심히 할 일을 찾는다. 그래도 일이잖아. 회사 직원이잖아. 피곤하고 재미없으니까 회사는 월급을 주잖아. ㅋㅋ 이거 병 아냐?
공항패션은 이유가 있다. 스쳐 지나가는 공항이고 어떤 썸싱이 일어날 것 같지도 않지만 우리는 한 껏 자신의 존재감과 정체성을 드러낸다. 얌전함은 회사일 뿐이고 엑스레이 알람소리를 잠재울 옆주머니 달린 헐렁한 힙합바지와 헤드셋을 머리에 둘러쓴다. 스스로에게 서프라이즈 해줘야 한다. 어쩐지 공항은 그래야만 하는 곳이다. 회사 출장자들에게는 그럭저럭 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회사 돈으로 해외를 나가면서 몸과 마음만은 잠시 여행자 모드를 켜고 위로를 가져본다.
관리자 입장에서 반드시 가야 하는 해외 출장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과거 펜더믹은 그걸 단숨에 증명해 냈다. 그럼 왜 가는겨? 단지 그들이 나에게 오지 않기 때문인가? 팀원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는 게 업무가 아니라 의무라면 꼭 가야 할 이유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다만 기다리고 있는 건 피로일 텐데 든든한 숙취해소제 하나쯤 챙겨 오지 않아 마음마저 쓸쓸해진다. 한국에 있든 해외에 있든 일하는 패턴이 달라지는 것도 없도록 노력해야한다. 비행기에서도 와이파이가 되는 시대에 밤낮이 뒤바뀌는 시차가 아니라면 어디에 있든 변함없이 그 업무패턴을 유지하는 게 원칙이다. 이동 중에 회의는 말할 것도 없고, 에너지를 써야 하는 메일이라도 보면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현지에 가서 누굴 만나고 어떤 얘기를 하고 무엇을 지시하고 무엇을 들어주고 와야 할지도 매 순간 달라지니 완전히 준비된 출장이라는 건 없다. 여기까지만 순조롭다면 다행이겠지만 새로운 메일과 정보, 시간을 다투는 요청은 분명 차고 넘칠테니 애써 무시하기보다는 가만히 마음을 다잡고 공항 구석에서 천천히 메일을 열어본다. 공항패션이 뭐 어쩌구 해봐야 지금 난 긴 출근길에 서 있을 뿐이니까...
장점이 하나 있다면... 헤드폰이 귀에 눌러붙을만큼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 랜덤음악으로 플레이 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