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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초롱 Dec 11. 2023

여름에서 여름까지


맑은 날, 2019, 박초롱


 수풀과 잡목 사이를 드나드는 새나 곤충을 보면 현지의 기후를 짐작할 수 있다. 르완다의 소우기가 시작되면 건조한 초원이나 열대의 사바나를 모험하던 금란조가 물가로 날아든다. 수분을 비축할 집이 없는 민달팽이도 느린 걸음으로 축축한 땅을 찾아 나선다. 저녁마다 아지랑이가 발끝에 피어오르고 짧은 비가 안갯속에 얼룩을 남겼다가 사라진다. 일기예보 없이 습도와 온도를 피부로 받아들이는 현지인들은 잔잔히 비 내리는 저녁이면 집 앞에 모여 반상회를 한다. 목적이 있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닌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농담을 던지는 자리다. 누군가 미리 공지를 하는 것도 아니고 문을 두드리지도 않지만 비벌레가 등장하면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 둘 골목으로 나와 대문에 기대어 선다. 비와 어둠이 동시에 내리면 전기를 끄고 초를 켜기에, 비 내리는 저녁을 밝혀주는 건 골목에 몇 없는 가로등뿐이다. 평소 가로등 밑은 잔잔한 날벌레들의 연회장이지만 비가 오는 날이면 비벌레들의 축제장이 된다. 새끼손가락만 벌레 수 백 마리가 좁은 가로등 밑에 엉겨 붙은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소리를 내지르며 집으로 달아났다. 골목의 친구들에겐 그런 내 모습이 그날의 농담이었다. 고작 새끼손가락만 한 벌레에 기겁하는 외국인이라니. 내가 다시 고개를 빼꼼 내밀자 그들은 보란 듯이 비벌레를 잡고 날개를 떼서 입에 집어넣었다. 처음엔 놀리는 줄 알고 질색했지만 그렇게 먹는 이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괜찮다는 눈빛을 보내며 깨꽃의 꿀을 빨아먹듯 조심스레 비벌레를 먹는 옆집 아주머니의 모습에 더 이상 싫은 표정을 지을 수 없었다. 내 아버지 세대의 간식이 메뚜기였듯이, 이들의 간식은 비벌레였다. 나중에 찾아보니 정식 명칭이 놀랍게도 파리소시지*였다. 비벌레들은 공기를 가르는 빗줄기에 후각이 마비돼서 빛을 향해 돌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빛에 홀려 다른 감각을 몽땅 잃어버린 채 방황하는 것 같기도 했다. 저녁 내내 불빛을 맴돌던 비벌레들은 이카루스처럼 뜨거운 유리등에 수만 번 부딪히다 떨어져 죽었다. 넓은 어둠을 뒤로하고 소복이 쌓인 비벌레들의 무덤이 빛 속에 외딴섬을 만들었다.


 소우기에만 볼 수 있는 광경이 있는 반면 대우기에 느낄 수 있는 두려움이 있다. 대우기에 비가 오기 시작하면 풍경의 색조가 바뀐다. 먼 산 너머로 시커먼 먹구름이 파란 하늘을 잡아먹으며 다가오면 세상은 금세 감색으로 물들어버린다. 황록색 나뭇잎들은 즙을 짜낸 듯 진녹색이 되고 노란 꽃은 주황색이, 빨간 꽃은 암홍색이 된다. 누런 흙길은 대자색이 되고 연회색이던 돌담은 까매진다. 멀리 있던 먹구름이 지붕에 닿을 듯 가까이 내려오면 곧바로 폭우가 쏟아진다. 나뭇가지들이 서로 부딪히며 아픈 소리를 내고, 풀은 뿌리가 뽑힐 듯 이리저리 꺾이고 흔들린다. 언덕이 비틀거리고 산도 두려움에 떤다. 이 기간 동안 해는 얼굴을 내비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을 가늠하기도 어렵다. 한낮인지 저녁인지 알 수 없이 마을 전체가 커다란 암청색 커튼으로 덮인 채 몇 주가 흘러간다. 우리 동네는 고지대이면서 평탄해서 홍수 피해를 입은 적이 없었지만 집 안은 매번 물바다가 되었다. 빗물이 밑에서 차오르는 것이 아니라 지붕과 벽 사이로 들이닥쳤다. 균열이 많은 벽을 타고 물이 줄줄 흘렀고, 양철 슬레이트로 덮인 천장에서 구멍 뚫린 듯 비가 내렸다. 책상 위에 있던 종이들은 습기에 차 울었고 벽에 붙여놓은 그림들은 빗물에 번지며 새로운 인상을 만들었다. 집 안에 들이닥친 폭풍이 하루 이틀 만에 그치지 않을 거란 걸 알기에 별다른 대책을 세울 수도 없었다. 비와 바람에 몸을 완전히 내맡긴 풀처럼, 뿌리가 뽑히지 않기만을 바라며 우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하늘은 모든 걸 내어주다가도 갑작스레 엄청난 대가를 요구하곤 한다. 잠잠히 아래를 내려다보다 문득 갖고 싶은 게 생기면 주저 없이 가져간다. 내가 있던 해, 근방 학교의 1학년 학생이 등굣길에 번개에 맞아 숨지는 일이 있었다. 높은 것이라고는 없는 땅에서는 여덟 살짜리 아이가 든 우산이 피뢰침이 되었다. 며칠 뒤엔 언덕 꼭대기에 홀로 서있던 집에 낙뢰가 떨어져 일가족이 목숨을 잃었다. 외마디 소리조차 지를 새 없었던 사람들을 대신해 자연이 푸른 비명을 내질렀다. 비명은 퍼붓는 비를 타고 학교로, 시장으로, 식당으로 퍼져 나갔다. 소문과 더불어 하루에 수백 번 이상 하늘을 가르는 섬광은 사람들의 마음에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번개가 번쩍일 때마다 환하게 드러나는 하늘의 얼굴에 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했다. 두 집의 비극을 끝으로 대우기의 하늘은 마을에 다시 안온한 풍경을 돌려주었다. 대우기는 이렇게 갑자기 들이닥쳤다가 한달음에 달아났다. 어느 날 내리치는 빗발 속을 땅만 보며 걷고 있는데 신발에 한줄기 빛이 들었다. 고개를 드니 거짓말처럼 하늘의 반이 갈라져 있었다. 하늘은 검은 커튼의 반을 걷은 채 구름을 다시 금빛으로 물들이고는 무슨 일 있었냐는 듯한 표정으로 시치미를 뗐다. 사람들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갑자기 나타난 그림자를 끌며 어디론가 걸어갔다. 젖은 옷가지와 신발만이 정직하게 대우기가 지나갔다고 얘기해 주었다.


*파리소시지(Sausage Fly): Male driver 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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