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 4세 남매와 20일간 뉴질랜드 카라반 캠핑 여행을 시작하며
나에게도 남편에게도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1년중 가장 기대되는 시간이 있다면 그건 단연코 뉴질랜드의 여름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6주간의 긴 여름방학을 기다리는 것일게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초를 끼고 온 나라 전체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이는 이때는 날씨도 '끝'장나게 좋다. 왜 정말 좋은건 그다지도 빨리 사라져버리는 것일까? 마냥 붙잡고 싶은 사람들의 맘은 모른척, 야속하게 제 갈길따라 잘만 흐르는 계절은 그 모든 찰나의 뜨거움을 실컷 누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야 남은 세 계절, 긴 스산함도 견딜 수 있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우리는 여름의 속삭임을 따라 들썩 거리는 엉덩이를 들고 집을 나섰다. 이 날을 위해 몇달 전 마련한 올드 카라반을 차 뒤에 매달고 그저 발길 닿는대로, 머물고 싶은 만큼 딱 그만큼만 떠돌아보기로 했다. 오랜만의 장기여행이 될 터였다. 그것도 오롯이 카라반(캐러밴) 캠핑으로만. 여전히 꼬맹이라 불려도 어색하지 않을 두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 부부, 다시 길위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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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7살 배기 첫째 아이 라군이 놀이터에서 새 친구를 사귀었다. 서로 죽이 잘 맞아 까불거리며 그 큰 놀이터 구석구석을 한참 누비고 다녔다. 아이 엄마는 멀리 구석에 드러누워 책을 읽고 있다가 집에 갈 시간이 다 되어서야 다가왔다. 세련된 인상의 마오리 아줌마는 웃는 모습이 선했다. 아이들이 어울리는 동안 뻘쭘하게 곁을 지키고 선 어른들 사이에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쯤 된다. 서로 통성명을 시작하거나 괜히 아이에게 잔소리를 궁시렁 대거나. (흐) 인상이 좋거나 잘 웃는다면 주로 통성명이 시작되는데 이름과 사는 곳 따위를 주로 묻는다. 그러다 친숙한 동네 이름이 나오면 누구나 갑자기 목소리 톤이 올라간다.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지 않은가? 세계 어디나 지연의 정서는 있나보다.)
이 날도 그랬다. 그곳은 뉴질랜드 북섬 중부에 위치한 소도시 파머스턴 노스의 빅토리아 공원이었는데 우리는 현재 여행중이고 원래는 타라나키(뉴질랜드 북섬 서쪽 끝 지방)에 살고 있다고 말하니 아줌마 얼굴이 순식간에 환해졌다. 본인 가족도 모두 타라나키에서 태어나 쭉 살다 직장 때문에 얼마전 이곳으로 이사왔다고. 타라나키 지역 자체가 워낙 시골이고 작아서 그런지 타지에서 타라나키 출신들을 만나면 우릴 유독 반가워 해준다는 느낌이 든다. 타라나키 생활 겨우 1년차, 것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외국인인 우리가 졸지에 향우회 멤버가 된 기분이랄까. 좀 묘하다. 덕분에 친밀도가 훅 올라간 남편도 신나서 농을 건넸다. 아이들이 오늘 어울리게 된 것도 뭔가 서로 통하는 구석이 있었던 게 아니겠냐고 일종의 '타라나키즘' 이란다. 이 어이없는 농에도 불구, 아줌마 센스있게 받는다.
"아~ 그 뭔가 타라나키 산의 정기 같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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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나는, 그집 아이의 이름을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
휘티 오라.
흔한 영어 이름이 아니라 마오리 이름이라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휘티는 '빛나는', 오라는 '인생' 이라고. 두 단어를 합치면 '빛나는 인생'이 된단다. 듣자마자 우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발음할 때마다 입술을 쳐대며 감기는 어감마저 낭만적이었다. 그날 밤 나는 이 이름을 내 마오리 이름으로 삼겠노라고 일기에 적었다.
휘티 오라.
빛나는...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