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지능 높은 사람들이 자주 빠지는 함정

'진짜 나'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by 로니부

"너 자신을 알라."

유튜브 알고리즘은 끊임없이 '진짜' 나를 찾는 법을 제안하고, 서점에는 자기탐구서들이 베스트셀러 코너를 점령했다. 우리는 모두 나다운 것이 뭔지 찾아내어 진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나 역시 육아휴직을 시작하면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찾겠노라 그 길을 가겠노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나를 찾겠다고 시작한 자기탐구는 곧 강박이 되었다. 마치 '나'라는 미로 속에서 '인생의 해답'이라는 출구를 찾듯이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찾으려 애썼다.


일기를 쓰고, 과거의 상처와 기억을 되돌아보고,,, 물론 그러한 시간들이 의미 없던 것은 아니다. 나에 대해 더 잘 알게된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이 너무 길어질수록, 행복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의 미궁에 빠져들었다. 그것은 마치 MBTI 테스트가 인간을 16개 유형으로 분류하듯, 나는 나 자신을 점점 더 세밀한 카테고리로 가두어갔다.


그러나 나에 대해 파면 팔수록 나는 서로 모순되는 성격과 욕구들을 동시에 가진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안정된 직장생활에 만족하며 평범한 삶에 감사하자라고 생각하다가, 권태에 젖어 "이렇게 매일 똑같이 살면 뭐 하나?"며 새로운 도전을 꿈꾼다.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서 가족시간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한편으론 "나도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며 개인적인 성취를 갈망한다. 루틴한 일상이 편안하면서도 답답하고, 남들 눈에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으면서도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면서도 진짜 내 모습으로 살고 싶고. 이런 식으로 하루하루가 다르고, 상황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물론 '근본적인' 기질은 변하지 않겠지만, 내 모습은 상황에 따라 너무도 다양해서 하나의 정의로 담아내기가 불가능했다. 정의를 내리려고 할수록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됐고, 결국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서 더욱 혼란스러워질 뿐이었다.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을 읽다 마음에 든 문장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일을 잊어버려야 비로소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러셀은 자기 집착의 본질을 간파했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은 외부세계와 분리감을 키운다. 골방에서 혼자 "나는 왜 이럴까?"를 되뇌는 동안, 우리는 점점 고립되어간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왜 나만 이럴까 하는 문제는 없다. 내가 겪는 대부분의 고민과 감정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보편적인 것들이다. 내가 특별히 이상한 것도, 유독 문제가 많은 것도 아니다.


진정한 자기 이해는 역설적으로 자기 집착을 내려놓을 때 시작된다. 거울만 바라보던 시선을 창밖으로 돌릴 때, 비로소 나라는 존재가 어떤 맥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보인다.


타인과 어울리고, 새로운 관심사에 몰두하고, 나와 관계된 소중한 사람들에게 기여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행복을 느끼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높은 성찰 지능이란 자신을 끝없이 분석하는 능력이 아니라, 적절한 순간에 그 분석을 멈출 줄 아는 지혜가 아닐까? 언제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선을 거두고, 세상으로 발걸음을 내딛을지 아는 것.


자기 성찰도 좋지만 어느정도 파악 되었다면 내면 탐구보다 외부 세계를 따뜻하고 호기심 어린눈으로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답은 내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세상과 만나는 그 접점에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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