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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므소 Dec 06. 2021

관계에서 자유롭지 않을 자유

2021년 12월 6일, 현지에게 소연이가

헬로 현지!

기다리다 받은 답장은 얼마나 반가운지!

카톡 보내면 5분도 안 돼 답장 받는 시대에 아날로그 속도로 편지 주고 받는 게 이런 거구만. 속도 경쟁시키는 업계에 들어와 있으면서 성격 버린 것 같기도 해. 아니면 그냥 한국인이서 그런가? 지금도 손이 키보드를 빨리 치고 싶은 내 뇌의 욕망을 못 따라가서 계속 오타가 나. 중증인가?


무튼 너 역시 야근하랴, 전쟁하랴, 송년회하랴 한국적 일상을 보내고 왔구나! 나도 요즘 벌여놓은 일이 너무 많아서 달력이 지저분해. 이 지저분한 달력을 보며 흡족해 하는 나는 누구인가. 이런 와중에 내가 땅에서 발 떼게 만드는 질문을 했더랬지! 너가 키보드 잡기까지 더 오래 걸리게 만든 요인 중 하나 아닐까 싶군.


편지를 읽으면서 이마를 탁 쳤단다. '누군가의 상황을 보며 그 사람의 자유로움 여부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그의 자유를 빼앗는 일'이란 부분에서! 올해 가장 많이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가르친 것과 맥을 같이 하기 때문야. 누구의 일, 누구의 선택, 누구의 역사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안타까워 하는 게 얼마나 큰 오만인지 생각했거든.


아무리 밀이니 로크니 하는 철학자들이 '자유'를 정의해 놓은들 그건 정치사회학 이론 논할 때나 의미를 가지지 평범한 매일에서 자유란 제각각이지. 무한한 선택지 앞에 자유 느끼는 사람, 정해진 규율 안에서 자유 느끼는 사람, 물리적 자유가 중요한 사람, 감정을 마음껏 느끼는 데서 오는 자유가 중요한 사람 전부 다를 거야.


자유의 갈래가 너무 다양하지. 언제는, 그니까 짝꿍을 만나기 전엔 왜 더 자유롭고 더 해체적으로 살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이 있었어. 내키는 세계 도시 어디서든 이방인으로 살아보거나, 내가 살면서 갖게 된 가치판단의 기준을 뛰어넘는 사람들의 삶을 훔쳐보고 동경하는 경험. 우리가 스물대여섯 때 이야기하던 자유는 이런 종류였지.


그때보다 좀 더 많은 경험을 한 지금 난 짝꿍과의 관계에서 자유롭고 싶지 않단 생각을 해. 정확히 말하자면 '돌아올 곳'이 있음으로써 더 확장되는 자유를 알게 됐어. 그래서 너가 말한 결속감을 통한 자유에 공감했지.


사람은 방임 속에서 외로워지잖아. 부모의 방임, 친구 사이에서의 소외, 연인의 무관심은 한 사람으로 자유롭게 행동하는 걸 오히려 제약해. 난 관계적 측면에서 자유란 끈끈한 유대가 만들어주는 자신감과 등치된다고 생각해. 더 끈덕지고 팽팽한 고무줄이 내가 얼마나 멀리가던 꼭 붙들어 주리란 자신감. 더 멀리 갈 수 있는 사람은 어떤 끈끈한 고무줄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


짝꿍과의 관계가 내게 고무줄이 주는 것 같아. 그렇다고 이 말이 물리적으론 부자유롭다는 뜻은 아니잖아? 어딜 가든 짝꿍이랑 같이 가고 싶다는 마음의 중량이 무거워지긴 했지만. 칠레 남극 푼타아레나스도 갈 거고, 아이슬란드 북단도 갈 거고 나미비아 사막 코끼리 서식지도 갈 테다.


무튼 같이 살면서 뭔가 포기한 게 있냐고 물었지! 좌절과 달리 포기는 내가 선택하는 거니까 그 역시 자유의지겠다.누군가.. '말장난 아니세요?' 라고 한다면.. 내 맘입니다.


지난 주말 아차산에 가고 싶었어. 7월에 한라산 등반 이후로 산에 못 갔거든. 전날밤 싸놓은 김밥을 계란물 입혀 부쳐 갈 계획, 입고 갈 옷, 출발 시간 등을 정해놓고 잤어. 아침에 일어나니까 짝꿍이 돌연 이번 주말 아무 것도 안하고 싶다는 거야.


아차산, 혼자 갈 수도 있었지. 오로지 산에 가는 게 내 욕구이자 자유 충족 조건이었다면 짝꿍 쉬라고 하고 난 갔겠지. 근데 그의 전면적 무활동을 지원하고 싶은 마음! 같이 등산하고 싶단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일었지 뭐야. 액티비티와 에너지 발산을 원하는 내 몸을 심리가 이겼어.


아 방해 받는 자유 하나 있다. 생리 현상.(ㅋ) 언제 해방될지는 모르겠어. 짝꿍은 이미 자유를 획득했어. 역시 해방은 선방이자, 스스로 이뤄내는 것인가. 코로나가 준 유일한 자유, 통근으로부터의 자유로 난 1년 반 째 재택근무 중이야. 생리 현상에게 주어지는 하루 약 12시간의 제한적 자유를 누린다.


편지가 왜 이렇게 끝나는 거지? 우리가 지금껏 생각 공유를 꽤나 많이, 또 깊게 해와서 인지 핵심이 결국 같은 것 같아. 내가 잘 이해하고 또 잘 이해 받는 느낌이라 즐겁군.


내가 생각하는 너는 나와 조금 비슷하게 친구든, 연인이든 상대방에게 나를 한꺼풀 더 벗겨내서 보여주는 데 시간이 걸리는 사람인 것 같은데. 언제 날 거의 완전히 보여도 되겠다, 무한신뢰를 갖게 됐어? 또 상대가 언제 날 아주 신뢰하고 있다고 느꼈어?


벌써 12월이고, 벌써 6일이라니. 4주 후면 2022년이라니. 검은 호랑이의 해라니. 우리가 서른하나라니. 우리가 만난 지 8년이 된다니. 감탄하며.. 20000 줄여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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