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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므소 Jan 10. 2022

'어때주의자'와 함께 살기

새해다 현지야! 어떻게 지내고 있누


난 새해를 괌에서 맞고 오늘로서 10일째 자가격리 중이야. 5일 간의 도피를 위해 11일을 기꺼이 갇혀 지내기로 했지. 답답할까 싶었는데 나나 짝꿍의 집순이력은 상당하더군ㅋ


육해공을 요리로 모두 조지고(?) 살이 찌고 있다. 그래서 1월1일부터 집요가를 실천 중이야. 하루도 안 빼먹고 하는 중인데 정적인 운동에 대한 의심이 많은 짝꿍을 열심히 설득했지. 지금은 하자고 하면 시무룩한 표정 지으면서 애플워치를 차고 온다; 본인 요가매트도 주문했던데.


무튼 신년 맞이 맥주라도 해야 하는데 못 만난 지 꽤 됐네. 생일 선물마저 소포로 보냈으니 말 다했지.

올해는 어떻게 지낼 생각인고? 나는 다음과 같다! 1) 미니멀라이징 2) 정신적 도피처 찾기


작년에 이런저런 일을 하도 벌여놔서 올해는 선택과 집중을 좀 하고자 지속불가능한 건 좀 쳐내고, 안 입는 옷들도 좀 버리고 하려고. 그리고 이일저일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름하야 케렌시아. 언시 상식 공부할 때 본 이 단어; 오랜만이지ㅋ


사실 궁극적으로는 괌에서 드넓은 바다를 하루종일 보면서 생각한 건데. 발전 발전 발전 중독 사회의 갈퀴에서 도망쳐서 예전의(?) 우리처럼 좀 더 풍류를 붙잡는 사람이 되는 것이 좋겠다. 그것이 일류.

괌에서 나와 짝은 서로를 한번씩 지켜냈는데 이는 충돌로 비화할 뻔 했으나 신뢰를 다지는 과정으로 승화했다..

괌 도로사정에 어두웠던 짝이 좌회전 하려다 중앙차선을 넘어 반대쪽 도로에 섰다가 경찰을 소환해버렸어. 경찰차 3대가 쫘르륵 오더니 미국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불을 빙빙 켜더니 경찰이 내려서 허리춤에 손을 얹고 우리차로 오는 거야.


짝은 그때 'STOP HATE ASIAN'까지 생각했대(ㅎ). 근데 옆을 보니 나는 뭐지뭐지? 하면서 미소를 짓고 있었대^^. 낯선 땅에서 경찰까지 만나게 하다니 운전 좀 잘 하지!!!! 는커녕.. 오 이벤트~! 했던 걸까?


겁을 상실한 나란 인간은 또 객기를 부려 스노클링 하겠다고 카약타고 바다 한가운데까지 간다. 팔 근육이 부족한 내가 카약으로 다시 못 올라 온거야. 짝은 배에 처절하게 매달린 날 살리기 위해 홀로 노를 저어 뭍으로 왔어.. 짜증을 좀 내긴 했지만 그 역시 나의 안위를 걱정한 탓이었다지..


경찰과 조난 사건.. 이를 통해 서로에 대한 믿음을 다지고 돌아왔어. 농담처럼 썼지만 무튼 나와 짝은 특별난 일들이 아니라 매일매일 허접한 일들 속에서 서로의 작은 허점들을 파악하며 그렇게 신뢰를 쌓았어..


그렇게 천국도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오늘로서 10일째. 짝꿍과 함께 감금생활 중이야. 부딪힌 적이나 불편함을 느낀 적은 없어. 대신 각자 좀 더 적합한 가사를 재확인했다.


나는 내가 그리 깔끔하려고 하는 사람인지 몰랐어. 중요한 건 깔끔한 사람이라기 보단 깔끔하려고 하는 사람이란 것;; 엄마아빠 집에서 살 땐 엄마가 늘 "너저분하게 만드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다"고 했는데 여기서 나는 전자였다. 엄마가 깔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나는.


근데 자취를 시작하고 보니까 난 영락없는 김모 여사의 딸이었다. 바닥에 뭐 밟히기만 하면 청소기 돌려야 하고 식탁이며 간이탁자며 싱크대며 하도 닦아대서 하루에 행주를 몇 번을 빨고 손을 몇 번을 씻는지 모르겠는 거야. 누가 안 시키니까 하대?


내가 수건을 챡챡 접는 걸 보면서 당시 짝꿍은 "얼마 못 갈 것"이라고 예언했지. 빗나간 예언이었다. 나는 여전히 수건을 챡챡 접고, 매일 청소기를 돌려. 미세먼지가 좋으면 아침마다 환기빌런이 돼 온갖 곳 창문을 다 열어 젖혀놔. 침실 밖에서의 환복을 요청해놓기도;


사실 같이 살기 전 짝꿍 집에 놀러가면 환기는 언제 할까? 5cm 앞에 머리카락이 하나 더 있는데 왜 코앞에서 청소기 방향을 트는 걸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 생각은 동거를 하면서 재현돼 나의 할 일로 편입됐지!


짝꿍은 바닥에 머리카락 몇 올 있으면 어때 하는 '어때주의자'~. 내가 청소하고 나서도 "좀 깨끗해 진 거 같지 않아?" 물으면 그때라야 "엇? 진짜 꺠끗해졌네 뭐했어?" 하는 그다!

대신 그는 쓰레기 분리수거 할 때 테트리스를 해. 내가 그냥 쌓아놓은 박스들을 촵촵 접어서 잘 끼워넣는 신공을 발휘한다. 자취 시절 늘 시켜먹던 사람이 요리에 재미를 붙여서 맛있는 걸 만들어 내고, 내가 마다하는 설거지도 촵촵 하지.


그리하여. '어따치따론(어지르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은 생각지 않으려 해. 그냥 각자 잘하는 걸 그때그때 가능한 순번에 하자고 생각하고 있어. 솔직히 아이스크림을 먹고 스틱을 테이블에 놓고 방치한 걸 볼 때면 이 사실을 인지할 때까지 한번 냅둬볼까? 하는 웃긴 생각을 하기도 해ㅎ


모든 것은 인지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내가 조금 더 청결에 민감한 사람이란 걸 쌍방 간 알고 있기에... 알아서 시의적절하게.. 움직이는 것이 암묵적인 룰로......

격리 생활하면서 생각했던 걸 편지로 옮기니 이따만치 길어졌다. 슥 읽었길 바라.


현지 너와 반려인은 어때? 서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일은 없어? 집들이 갔을 때 본 너희 집도 엄청 깨끗하던데. 둘의 시너지일까 한 명의 진두지휘일까! 참 그리고 현지 너도 반려인이랑 같이 운동하잖아. 더 오래 했고. 같이 근육 다지고 땀 내는 건 늘 좋은 것 같아. 이야기해줘!!!


_10일간 형광등에 의존해 살고 있는 소연 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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