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먼지에 민감하니까.. 공기 안 좋은 날 고기 굽기 힘들잖아... 그니까후드를바꾸자!!!(호다닥)"
호흡기 약한 탓에 먼지에 민감해서 고기는 오븐으로 해먹길 선호했다. 근데 고기가 얇으면 오븐으로 구웠을 때 맛이 없었다. 퍄바바바박 기름 튀겨가며 자욱한 연기 속에서 캬라멜라이즈드 해먹는 게 역시 제맛.. 근데 이사와서 레인지 후드를 켜본 적이 없다.
켜볼 수가 없다. 드르륵 앞으로 꺼내는 슬라이드식인데 도대체 의심스럽게 생겨 먹었다. 색은 누렇고, 바람 빨아들이는 필터는 꺼멓고, 오히려 후드통에서 기름이 녹아 떨어질 것 같다. 그래서 늘 온갖 창문이며 베란다문이며 열어놓고 고기 구웠다.
근데 여름 오면 우리 아파트는 방충망을 수월하게 통과하는 미친듯이 작은 날파리들의 성지가 된다. 오래된 방충망 탓인가 싶어 안 그래도 이사오자마자 새로 갈았다. 아무짝에 소용 없었다. 거대한 칠지도같이 생긴 나무들이 단지를 빽빽이 메운 탓에 이것들을 다 베어내지 않고선 해결법이 없다. 이 아파트엔 근본적 해결이라는 게 없다.(ㅋㅋ)
레인지후드 교체론이 일게 된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짝은 앞서 스타일러 구매 주장 시부터 내 민감한 호흡기를 근거로 제시했다. 이번도 역시였는데 후드는 나도 쉽게 동감했다. 로켓배송 구독자답게 쿠팡서 합리적인 제품을 선택한 짝꿍은 재빠르게 구매했다.
이틀 뒤 설치기사님이 왔다. 딴딴한 모습의 베테랑에 나는 "우와"와 박수를 연발했다. 노랗고 무거운 전동드릴로 말도 안 되게 생긴 후드를 약 20초만에 뗐다.
"simple이라고 쓰인 이게 이 후드 만든 회산데 지금은 없어요" ????? "아마 이 아파트 지을 때 달아놓은 거 같은데" ?????? 그렇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브랜드의 제품으로서... 사십년 연식으로 추정.
전에 살던 사람들은 후드를 안 썼을까?.. 우리처럼 문 다 열어놓고 음식했을까?.. 베테랑은 후드 위를 열어보더니 배관통도 사이즈 미스로 인해 굴뚝으로 가는 음식냄새가 다 샜을 거라 했다. 어째 우리가 해먹지 않은 음식 냄새가 가끔씩 났는데. 아니 땐 굴뚝에 연기 안 난다고 역시.
※더러움 주의※
베테랑이 마침내 떼어내 바닥에 내려둔 낡은 후드. 만약 켰다면 삼겹살 기름과 함께 고기를 노랗게 익혔을 역사의 기름으로 뒤덮힌 모습.. 더 놀라울 일이 또 있을까 했는데 언제나 우리의 아파저씨는 실망시키는 법 없다.
설치기사 문선생님은 유물을 떼고 새 후드를 설치하는 데 총 20분도 안 걸렸다. 걸리적 거리는 상부장 시트지도 깔끔하게 잘라줬다. 먼지 제거법과 기름떼 제거법도 알려줬다. 유물에서 먼지가 엄청 떨어질법도 했는데 깔-끔하게 끝내버렸다.
군더더기 없는 베테랑 면모를 뽐내고 철수하던 문선생님. 현관문 열다가 갑자기 "아 이거 걸리적 대네. 잠깐만요. 아 이거 잘 걸렸다(?) 제가 집집마다 이런 것도 해드리거든요" ???????? 연장을 들더니 문턱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깽!깽!깽! 아파트 단지가 떠나가라 문을 두드려 때리길 수십 번.
드드덕 하고 힘 줘야 닫히던 현관문이 스스슥 하고 닫히게 됐다! 보다 뿌듯한 얼굴의 문선생님은 그렇게 홀연히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