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이 '100% 완치 불가' 판정을 내리고 간 후, 싱크대는 저를 포기하지 말란듯 그럭저럭 기능했다. 그런데 친구들이 온 그날, 갑자기 콱 막혀버렸다. 배수맥경화 4기. 물 한방울도 통과할 수 없는 지경이 돼버리고 만 것이다.
그 꼴로 이틀을 갔다. 설거지 전면 스톱. 발포제 넣고 수맥을 뚫어주려 했으나 허연거품을 콸콸 뱉더니 그대로 또 멈췄다. 정말 사망선고 내리고 배관 모조리 뜯어서 새로 달고 싶은 심정.
※늦은 경고 ※ 극혐 주의
흐린 눈하고 흐린 코 하고 참기를 이틀. "베테랑을 부르자" 짝꿍은 일요일 저녁에 클린배수구 사장님에게 연락했다. 근데 이 요망한 싱크대가 통화를 듣더니 갑자기 물을 넘겼다. 멀쩡해진 것이다. 의심스러웠지만 베테랑 부르기를 미루고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근데 기회 주는 건 주는 거고. 짝꿍은 이미 다른 전략을 꾀하고 있었다- 식기세척기 구매. 안 그래도 친구 부부가 온 날 이들이 식기세척기 예찬을 하고 간 터였다. 설거지 안 하니까 천국이다, 설거지 할 시간에 커피를 한잔 더 때릴 수 있다, 문명의 이기를 누리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기름때 걱정마라, 뜨겁게 싸악 말려주기까지 한다.. 등등.
스타일러 구매욕을 한 차례 억누른 바 있는 짝꿍은 식기세척기만큼은 극도로 합리적인 구매라고 강하게 주장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애벌로 설거지해서 넣어야 되는 거 아냐?" "ㄴㄴ 그냥 물로 한번 헹구기만 하면 된대" "우리 주방에 놓을 곳이 딱히 없잖아. 요리 공간 부족한데" "봐봐 저 정수기 아슬아슬하게 딱 옮기면 딱 식기세척기 놓을 자리 딱 돼. 딱이야 딱"
줄자 들고 공간 재고 디오스냐 비스포크냐 하는 짝꿍을 결국 응원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한 가지 근본적인 의문. "근데 식기세척기에서 나오는 물이 어차피 싱크대로 내려갈텐데, 물 막혀서 산다는 건 모순되지 않아?"
이 합리적인 질문은 기사님이 식기세척기 설치를 마무리하는 동시에 나왔고 결론적으론 무의미해졌다.
지금까지 세 번 돌렸는데 물 막힌 적 아직 없다. 설거지할 때보다 물 덜 쓴다는 것 같기도 하고. 식기세척기가 내뱉는 물 8L는 왜 잘만 마시는지? 이놈의 싱크대야? 아무튼 돌아버릴 듯한 배수구의 단식투쟁을 더는 안 봐도 된다. 이 집에 달아놓은 인공호흡기 대체 몇 개냐고요? 수맥경화엔 금융 치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