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차 임차인이라서

Ep.8 - 아랫집 아이의 발차기, 임대인의 잔소리

by 야므소


세탁 배수관 뚫어놓고 점심 먹으려는 찰나 찾아온 사람. 아랫집 아저씨와 아들래미였다. 아들래미는 초등학생 저학년으로 보였는데, 복도를 좌우로 오가며 허공에 발차기를 해댔다. 얍! 얍! (ㅋㅋ?)


층간소음이니 여타 문제니 해 싸움나서 피까지 보는 흉흉한 세상에 든든한 동행인이 틀림 없어 뵜다. 대략 위협적이진 않은 내 모습에 머쓱해진 아저씨, 되레 아들래미를 모른 척하고 폰을 꺼냈다.


"천장서 물이 새요ㅠ" 아저씨는 물 뚝뚝 떨어지는 영상과 약간 물 먹은 천장벽 사진을 보여줬다. "안 그래도 오전에 배수구 뚫었어요ㅠ" "잘하셨는데.... 위에 천장이 이미 물을 먹었네요ㅠ"

쩝 ^^. 보니 딱 우리집 다용도실 배수관 부분이 약간 노랬다. <아랫집 누수 때문에 도배값 물어준 후기ㅜ> 등의 글들이 떠오르는 모먼트.


저도 임차인이라.. 이사 나갈 때 원상복구 해놓고 나가야 해서요.. 아저씨는 치트키를 썼다. '피차 임차인이니 내 상황 니 상황 쌤쌤 알자녀'.
나의 임대인과 한번 이야기 해보라고 했다. 누수 사진을 문자로 보내달라고 하고, 은근 안심한 눈치의 아저씨를 돌려보냈다. 하~ 아침에 배수구 치료에 십수 만원 썼는데 이번엔 아랫집 도배까지?! 도대체 이 아파저씨 어디까지 나와 짝꿍을 괴롭히려고?


숨고와 당근마켓을 뒤지다 양심적으로 보이는 고수를 찾았다. 최대 28만 원까지 들었는데 이 베테랑은 18만 원을 불렀다. 재택 중이라는 아랫집 아저씨와 컨택, 베테랑을 대동하고 찾아갈 날짜를 잡는다..


퇴근한 짝꿍에게 상황 설명했다. 도대체 이사온 지 반년도 안 돼 무슨 난리인 것이냐? 필시 이것은 임대인에게 알려야 한다... 수리비 부담도 부담인데 우리가 이 집을 소생시키고자 어떻게 분투 중인지 인지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단 생각. 심호흡한 두인용은 임대인과 통화를 시도한다.


장장 10분간의 통화. 옆에서 들리는 바를 종합하면 대충 잔소리. 다 집주인이 해주는 경우는 없다.. 집이 오래되긴 했지만 그래도 임차인이 알아서 살아야지!! 어디까지 다 고쳐줄 수 없다~ 젊은 사람들이니 알아들을 거라 생각하고.. 이번엔 일부를 부담하겠다.. 이제 이걸로 그만.. 으아으악으아으악


잔소리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짝꿍이 반가사유상의 얼굴로 거실을 돌아다녔다. 그 모습을 갸륵하게 쳐다봤다. 임대인은 다소간의 비용을 부담했다. 이제 연락하지 맙시다ㅠ.

아파트 지어진 지 40년. 지금 임대인이 이 집 소유했던 유일한 사람은 아닐 터. 이 집서 거주한 임차인은 더 많았을 터. 이 집 건강의 돌봄 주체는 정확히 누굴까. 집 주인일까, 거주자일까.


이틀 뒤 도배 베테랑과 아랫집을 찾았다. 동에 서에 번쩍하던 아들래미는 없었다ㅎ.

천장에 손바닥 크기만한 오염을 직접 확인. 베테랑은 손이 빨랐고, 임차인들 마음은 비슷했다. 부분 도배라 솔직히 살짝 티가 났다. 그러나 아랫집 아저씨는 다 됐고, 고마웠고, 안녕히가시라-고 했다.


"아저씨도 저정도면 됐다 싶었나보네ㅎ" 이제 세탁기 안심하고 돌려요. 물 안 새요. 부들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