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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므소 Mar 17. 2022

동거는 살얼음판 걷기?

2022년 3월 17일 소연이가 현지에게


편지 하나 쓰는데 왜 이리 오래 걸리는지 내 멱살을 다 잡고 싶네

쓰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요 없어요! 대체 뭘까 나 자신?


현지야~ 오늘은 짝꿍과 뭐하면서 저녁을 보낼 시간이뇨

방금까지 회사에서 30분을 잃어버리고 퇴근했다고 너에게 카톡이 왔구나. 짜증이 오지게 나서 이직 욕구가 치민다는 너는 집으로 가는 길일 것이고


둘이 보내는 시간이란 것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는 너의 편지를 잘 보았다.

우리 같은 친구 커플들과도 놀고, 너와 짝꿍 부모님들과도 함께 시간 보내고 하면서 둘만의 시간에 대해

또 한번 되짚어보고 그 소중함을 알렸다!

그리고 같이 놀다가 집에 가거나 헤어져서 다시 너희 둘을 '둘'로 만들어주는 만남 말고

디폴트가 셋 이상의 존재인 때가 올 수도 있다고 미래를 상상하는 너희에겐 둘만의 시간이 더 남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겠어.


나와 짝꿍의 둘만의 시간은 어쩜 이 동거 라이프를 만들어준 일등 공신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앞자리를 3으로 바꾸기 직전이던 2020년 말. 내가 독립을 해버렸잖니?

빨간버스를 타고 서울과 경기를 오가는 출퇴근길과 데이트을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박수 치는 엄마아빠에게 손 흔들며 홀연히 자취집으로 거처를 옮겼지.

말이 1인 가구지 내 집엔 네가 있고 네 집엔 내가 있고. 두 집 살이를 하면서 나와 짝꿍은 같이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더 깊어졌고 둘이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좋아진 것이다.

약 7개월의 두집 살이 끝에 짝꿍과 나는 오피셜리 집을 합치게 되었지. 종종 그렇게 말해. 우리가 그렇게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관계가 되게 빠르게 깊게 무르익은 것 같다고. 내가 엄마아빠 집에서 계속 살았다면 현재 이런 깊이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데까지 조금 더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까 싶고나.


어제 나의 단짝이자 조금 미친 듯한(웃겨 죽음) 친구의 집에 놀러갔었다. 짝꿍이랑 같이 방문한 건 처음이었어. 친구는 4년 전에 결혼했고 지금은 18개월 귀여워 죽겠는 아들을 키우고 있어. 이 친구는 내 친구 중에 가장 빨리 취업했고, 결혼했고, 출산한 친구야. 대학 다닐 때 분명 나랑 같이 음주가무하고 세상 말괄량이처럼 놀았던 친구거든.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인생 코스를 차용하자면, 이 친구는 나보다 한 3단계를 앞서 걷고 있다. 아직도 보면서 신기해. 와 이 녀석이??


쉴 새 없이 사람을 웃기는 친군데 실은 내가 현자라고 불러(너는 현지). 돌고래 소리 내면서 소리 지르다가 내가 뭔 고민 얘기하면 갑자기 사주팔자 봐주는 도인으로 바뀜. 야야- 그런 쓸데 없는 고민하지마, 거기서 생각 스탑- 이런 스타일인 거지. 그래서 이 친구한테 큼직큼직한 고민을 가끔 던져.


짝꿍과의 동거를 앞두고 있을 때도 이 친구한테 대화를 신청했어. 좀 은근히 보수(?)적이고 할머니 같아. 동거라는 말에 펄쩍 뛰는 거야. 우리 엄마아빠를 어떻게 설득할 거냐는 말부터 시작해서, 좋으면 결혼을 하면 되지 왜 결혼 맛보기를 하려는 거냐고 꼬치꼬치 묻는 거야. 각자 살다가 결혼할 때 돼서 살래. 신비감(?)을 유지하라는 거야.


사실 이 친구가 이렇게 말할 줄 알고 전화한 거였어^^. 그리고 또 사실 이 친구가 이렇게 말해도 난 동거할 거였고^^. 이미 마음 속으로 결정 다 해놓고 어디 한번 비토해줘봐봐, 하는 애티튜드였지. 어제도 만나서 이 얘기들을 다시 하면서 친구가 "얘는 다 결정내려놓고 고민 상담해. 어차피 말 절대 안 듣고 자기 마음대로 할 거면서" 라고 했지 모야.ㅋ


친구는 어제 짝꿍까지 만난 김에 잔소리를 이어갔어.

결혼을 해라! 아직 모르겠어~
결혼식을 해서 만인에게 축하를 받자! 우리는 식에 대한 로망이 없어~
그러면 애프터파티 같은 이벤트라도 하자! 그건 나중에 가서 생각해볼게~
나는 우리 소연이 크라운이랑 드레스를 사줘서 입혀야 겠으니까 파티를 해라! 고만하세요 제발 할머니~~


친구는 우리한테 결혼하라고 200번 말했고 짝꿍은 영혼을 증발시키고 앉아있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어ㅋ

우리가 집에 가는 길, 친구는 짝꿍한테 "부담스러웠을 수 있는데 고맙고 소연이 잘 부탁한다~"고 DM 보냈다.

우리들 부모님이 같은 말을 하셨다면 아마 잔소리로 듣고 스트레스 받았을지 몰라.

근데 친구가 저러니까 왠지 모르게 웃기고 귀엽더라고. 혹시 어른들 사주 받았나 싶기도ㅋㅋ. 세상 천방지축으로 자유롭게 놀던 친구가 어떤 마음으로 우리에게 결혼을 압박(?ㅎ)하는 걸까, 친구에게 친구가 경험하고 있는 결혼은 뭘까 하는 생각도 들고.


현지 너도 우리 책모임 멤버들에게서 '결혼예찬론자' 란 말도 들었잖아. 안 할 이유가 없다, 든든하고 단단하고 좋다. 내 친구 민지도 그랬어. 남편과 연애 7년간 귀엽게 흉도 보고, 결혼하고 나서 가끔 밉다고 툴툴대도 지금 남편이 스물한살 때 좋아했던 것만큼 좋다고. 전쟁 같은 육아를 마치고 남편이랑 맥주 한잔 하면서 서로 고맙다고 동지애를 나누는 게 너무 좋다고.


지지고 볶아도 행복한 잘 맞는 부부. 현지 너와 짝꿍, 민지와 민지남편의 행복한 결혼 생활. 그렇담 나와 짝꿍은?! 민지가 보기에 나와 짝꿍은 불안해 보였던 걸까? 동지애가 덜 해보였을까? 우악 하고 싸우면 휙하고 뒤돌 것처럼 보였을까? 궁금해지더라고. (※민지가 그런 뜻에서 말한 것 아님을 너무도 알고 있음 주의※)


동거-이별/ 결혼-이혼 중에 전자의 단어 사이가 더 가까울까? 후자는 제도적 승인과 증인이 붙으니까 단어 사이가 더 멀까? 아마 어른들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결혼이라는 것에 '책임감'이 더 부여된다고 생각하니까. 어떤 인간들은 좋아서 같이 무작정 살다가 싫어지면 책임감 없이 쉽게 헤어지려고 동거하냐는 말도 하지.


근데 오히려 저 말들에 공감해버린다면, 나와 짝꿍은 이별이 더 가까이 있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더 살얼음판을 걷듯 서로를 조심히 대하고, 툭 하면 깨질새라 더 소중히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반대로 어차피 결혼까지 한 마당에 이혼하기 쉽지 않으니 경계심을 늦출 수 있다는 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쓰면서 생각해보니 위의 말이나 아래 말이나 근거가 넘 빈약한 일반화 같지ㅎ. 바로 그것이 나의 의도, 이것의 나의 결론. 결혼이든 동거든 각자의 선택이고 각각 추천/비추천 하는 이유가 있을 거야. 어차피 내가 직접 가본 길이 아니면 그 이유들이 실체적으로 와닿지 않을 거고ㅎㅋ. 허허 참 재미있는 선택이구나 ^^ 하면서 잘 살라고 하면 되지 않겠는가? ? ?


나는 결혼비관론자도, 동거예찬론자도 아닌 한 2인 가구의 세대원으로서... 즐겁게 나름 두터운 얼음 위에서 쾅쾅대고 뛰고 드러누워 굴러다니면서 잘 살고 있다고.. 이 편지를 빌어 이야기 한다네.. 한참을 썼네 또.


거의 편지 오가는 속도 아날로그;; 내 거울뉴런 거울치료사 면지야,, 너의 2인 가구 생활은 요즘 어떠니. 오늘 너가 평화를 유지한 지 D+3. 함께 세도록 하지. 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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