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17일, 소연에게 현지가
소연아 안녕,
간만의 편지는 기다린 만큼 더 재미나게 잘 읽었어!
너의 말대로 동거생활이나 결혼생활이나 서로를 굳이 열 올려가며 곁눈질할 필요가 있나 싶어. 그저 재미난 선택을 했구나 하고 우리처럼 질문도 해보고 이야기도 들어보면 그만인 것을. 마치 각자가 걷고 있는 트랙이 정답인양 굴기엔, 우린 각자 상황도 성향도 꿈꾸는 이상도 모두가 너무나 다른 걸.
최근에 나는 아는 언니들 집을 돌아가며 방문하면서 꽤 많은 시간을 보냈어. 그중 한 언니가 최근에 꽤 친했던 친구를 더 이상 보지 않게 됐다고 말하더구나. 언니가 자신은 어떤 스타일의 사람이 좋다고 말한 것을 두고 친구가 '그 나이에 그거까지 바라는 건 좀 아니지 않나', '포기할 건 포기하고 빨리 결혼하고 애 낳아야지'라고 이야기를 했다지 뭐야. 언닌 굳이 자존감을 해치는 관계를 계속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과감히 관계를 정리했다더라. 내가 괜히 대신 열불이 나서 내 멋대로 말했지.
"그분은 본인이 결혼하고 애 낳으면서 아주 포기를 많이 하셨나 봐요. 그러니까 그 삶을 합리화하려고 언니한테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뿐이에요."
그렇게 말하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배려 없는 말에 상처받았을 언니를 위해 뱉은 말이었는데 왠지 그 촌스러운 합리화를 하고 있는 상대가 또 한편으로는 짠하기도 한 거야. 동시에 나는 비슷한 실수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하게 되더라고. 주변 친구들과 더 많은 걸 공감하고픈 맘에 내 대화 주제가 점점 결혼생활 혹은 결혼 권장 비슷한 것들이 되진 않았었는지. 그리고 혹시나 나중에 육아 전선에라도 뛰어들어 내 인생의 9할 혹은 그 이상이 내 아이 내 남편이 되고 나면, 그 언니의 친구처럼 나도 모르게 무례함을 행하게 되지는 않을는지. 문득 그런 걱정이 들데. 이런 걱정을 미리 하고 있으니까 아마 난 좀 낫지 않을까, 그런 자기 위로도 좀 해 보고 그런다.
동거가 결혼보다 깨지기 쉬워 보이는지 궁금해하는 너의 말에 대한 나의 답은 일단은 중립인 것 같아. 예전 편지에서도 말했듯이 결혼은 동거라는 틀에 온갖 안전장치를 여럿 채워놓는 제도라고 생각하거든. 법으로 엮이고, 서로의 가족들과도 엮이고, 결혼식을 통해서 동네방네 우리 둘이 함께할 거라고 선언까지 하고 말야. 근데 웃긴 건 결혼생활이 금 가기 시작하면 안전하라고 달아놓은 그 장치들이 다 족쇄가 되고, 혹은 안전장치인 줄 알았던 그것들이 리스크가 되어 관계를 망치기도 해. 역시 모든 건 진리의 케이스 바이 케이스, 사람 바이 사람, 관계 바이 관계이지 않겠어? 어떤 사람에겐 아파트가 편하고, 어떤 사람에겐 단독주택이 편한 것처럼 각자의 라이프스타일과 비전에 맞게 선택하면 되겠지.
다시 오지 않을 짝과 둘만의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겠다고 한 게 바로 직전 편지인데, 내 짝과 난 얼마 전 역대급 전면전과 국지전 그리고 후속전까지 일주일새 세 번을 다투고 말았다. 구구절절 사연을 말하기는 좀 우습고, 또다시 나 자신과 우리를 돌아보게 된 며칠간이었네. 앞으로는 아예 날짜를 세어가며 평화를 유지해보고자 한다. 우리가 또 나름 정외과 졸업생들 아니겠니. 서로의 공격력을 확인하고 전쟁을 겪은 두 국가가 평화를 유지하는 중이라고 하면 되려나. 도덕적으로 완전하거나 마냥 선하지 않은 두 사람이 억제와 균형으로 평화를 유지하는 거지. 뭘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서도 소연이 네가 말했듯 얼음판은 여기서도 존재하니 말이야. 앞으로는 물도 좀 뿌려주고 닦아주기도 하고 냉기도 쏘이며 예쁘고 두텁게 녹지도 깨지지도 않는 얼음판(?)을 잘 가꿔(?) 보겠어.
얼마 전엔 벌써 내가 짝과 함께 생활한 지 1년이 지났다. 시간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끼고 있어. 침대가 예상보다 하루 늦게 도착한 탓에 이불 여러 개를 깔고 딱딱한 바닥에서 끙끙대며 잤던 첫날부터, 베란다에 조립식 타일을 하나씩 눌러 끼웠던 것, 가구를 함께 조립하고 생활용품을 채워 넣었던 일들, 서로를 위해 요리하고 감탄했던 날들과 생각만큼 격하지 않은 리액션에 한 번 씩 풀 죽기도 했던 일, 기울였던 술잔들과 술잔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던 진또배기 대화들과 간간히 눈물 그리고 자주 터졌던 폭소들, 말도 안 되는 춤사위, 국적불문 정체 불문의 흥얼거림, 둘만의 동네 맛집 개척과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배경으로 한 길고 긴 산책. 얼마 전엔 둘 다 씻기 귀찮아 꼬질해진 모습으로 키득대며 서로한테 기대어 노는데, 문득 그 순간이 너무 정답더라고. 짧다면 짧은 시간 안에 우리 둘은 정말 가족이 됐구나 그런 생각도 들고 말이야. 또 별명 장인 남편을 둔 덕에 나는 일 년간 무수한 타이틀을 얻었어. 천천히 톺아보니 괜스레 속이 따땃해지네. 뭐 이러다가도 말 한마디에 팽, 하기도 하는 나지만, 그 팽 해버린 마음도 또 금세 튀어 오르고 그러곤 하지. 그렇게 팽, 통, 팽, 통, 튕기면서 점점 단단하고 건강해지길 바라고 있다.
노아 바움벡 감독의 <결혼 이야기>라는 영화, 아마 너도 보았겠지? 내가 어설프게 영화 관련 일을 할 당시에 수상 경쟁작이었기 때문에 의무감에 봤던 영화였는데 너무 꼭꼭 씹어 볼 장면이 많아 화면을 멈추고 눈물을 펑펑 흘리기까지 했던 그런 영화였어. 결혼하고서 한 번 더 봤는데 말이지, 아마 그날도 한 차례 작은 전투를 치르고 나서였던 것 같다. 두 번째 봤을 때도 같은 장면에서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화면을 멈췄어.
찰리가 니콜과 적나라하게 말싸움을 벌이는 장면이었는데,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못된 말을 쏟아내다 찰리가 흥분한 나머지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 차에 치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라고 소리를 지르고는 이내 와르르 무너져 엉엉 울고 니콜은 말없이 찰리를 안아주지. 이혼 소송으로 멍들어가는 순간에도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사랑하는 이상한 관계, 결국 서로를 가장 날카로운 말로 찌르는 장면, 그리고 오히려 찌른 사람이 더 아파하는 그 마음, 알고 싶지 않지만 왠지 알 것 같은 그 마음에 가슴이 너무 아리더라.
그리고 또 하나,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서로에 대한 독백이 잊히지 않았어. 사랑스러운 부분을 나열하는데 그게 또 단점으로 연결되기도 하고, 상대의 존경하는 부분을 위해 희생한 것이 개인의 한으로 남기도 하는 그 복잡한 감정. 부부의 역사가 참 묘하다고 느껴졌어.
요새 우린 각자의 짝과 최대한 오랜 시간 깊은 유대감을 쌓기 위해, 여러 가지를 포기하고 노력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 같아. 그 과정에서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과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건 뭐가 있을까?
또, 조율하기가 어려워서 애초에 잘 맞는지 꼭 확인해야 하는 것들은 뭐가 있을지 너의 생각과 경험이 궁금해.
날씨가 오락가락하는데 감기 조심하고, 곧 또 보자! 답장 기다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