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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므소 Apr 05. 2022

유대감이란 근육에 관하여

2022년 4월 5일 소연이가 현지에게

현지야 답장이 너무 늦었다..

그동안 코로나에 걸려버렸어. 피하고 피하고 난 피하는 줄 알았는데 결국 걸렸지 뭐야. 지금까지 안 걸리면 인간관계에 문제 있다는 농 때문에 '흠 들켰나ㅋ' 하고 있었는데. ㅎ


이제 나았는데 후유증이 좀 세네. 아침에 눈을 못 뜨는 것이다. 그 핑계로 잠을 퍼자고 운동도 하루이틀 걸러버렸지 뭐야. 편지도 이제서야 쓰고 말여. 이상 면목 없음.


코로나 나앗을 때 쯤 짝꿍의 부모님이 서울로 놀러오셨어. 이박삼일 일정으로. 오랜만에 뵙는 거고 또 집 방문하시는 건 우리가 갓 이사했을 때 이후로 처음이라 완전 바뀐 집을 보여드릴 수 있었다. 부랴부랴 청소하고 정돈되고 이전보다 잘 꾸며놓은 집을 소개해드렸지.


짝꿍 본가가 멀어서 부모님을 명절이나 특별 이벤트 외엔 자주 못 봬. 그래서 만났을 때 더 알차게 보내게 하고 싶어서 이런저런 코스를 짜놨었어. 경기도 광주에 좋은 숲도 가고 맛있는 식당도 예약했어.


문제는 하필 내가 코로나 후유증을 앓고 있단 것이다. 꾀병 아니고 너무 어지러워서 멀미도 났고 자도자도 졸린 거야. 감기약에 타이레놀까지 먹었는데도 오후 되면 바닥에 느러누울 지경.

짝꿍이 너무 무리하지말라고 너무 힘들면 쉬라고 했어. 근데 어찌 그래?


1. 내 스스로 일어나서 걸어다닐 수는 있는 수준이니 혼자 누워 쉬기에 마음이 쓰여. 2. 짝꿍이 '우리는 하난데 너가 없으면 의미가 줄어들 것 같다'고 꾐이자 압박을 하는데 어째. 가야지. 3. 짝꿍 부모님을 잘 환대해드리고 싶고, 짝이 부모님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길 바랐어. 4. 짝꿍 부모님께 나의 비실한 모습을 비치기 싫은 거야! 어쩔 수 없는 K인 것이다.


근데 첫째날 내 몸상태를 기준으로 강행군을 하고 집에 오니 갑자기 서러운 거야. 괜히 부모님 앞에서 "괜찮냐"고 연신 물어서 나의 바닥난 체력을 드러내고! 그러면서도 실질적인 조치는 없고!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기가 조심스러운 거야.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어서. 혹시 내가 부모님과 함께 한 시간이 불편해서 그런 거라고 오해하면 어쩌나, 그래서 오히려 서운해하면 어쩌나. 그런데 피곤에 서러움이 겹쳐 표정이 어두웠고, 짝은 분명 캐치할 거였어. 그래서 베개에 머리를 대고 짝꿍에게 말을 꺼냈다.


뜻밖에도(?) 짝꿍이 내가 말을 꺼내자마자 수긍했어. 그러곤 나를 좀 더 챙겨주지 못한 데 대해서 미안하다는 거야. 다음부턴 티 덜 나게, 그러나 좀 더 실질적으로 날 챙길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해보겠다는 거다. 그 말이 너무 고마웠고, 이야기하길 잘했다 생각했어.


현지 너가 지난 편지에서 얘기한 '유대감'을 보고 이 날이 떠올랐어. 유대감을 쌓고 지켜나가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과 그 안에서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게 뭐라고 생각하냐고 했지?!


'솔직함'이라고 생각해. 억지스러운 쿨함이 아니라 상대와 나를 위한 투명함. 내가 그날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꽁한 채로 그날을 넘겼다면? 짝꿍에게 어떤 종류의 섭섭함을 느끼는 것에 더불어 앞으로에 대한 지레짐작을 했을지 모르지. 짝꿍은 영문도 모르고 과거현재미래형 죄인이 돼있었을 수 있고. 나는 짝꿍이 내 마음을 잘 살펴주지 않는구나 하는 편견에 사로잡혀 내 상태를 숨기게 됐을지도 모르지. (FP적 상상회로ㅋ)


그니까 솔직함이 유대의 근육을 만들어준다는 거야. 내가 좀 더 나일 수 있고, 짝꿍도 수월하게 나를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것.

'내가 여기까지 나아가도 이 사람이 이걸 받아들여줄까?' 하는 일종의 위기감이 수용의 안도감으로 전환될 때. 더듬더듬 그 범위를 넓히고 수위를 높여가는 게 유대감을 쌓는 거 아닐까?!


이건 관계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임과 동시에 나 스스를 위해서도 포기 말아야 하는 거기도 해. 내 캐릭터를 잃으면 안 되니까. 짝꿍 앞에서 내가 아닌 뭔가를 연기할 순 없으니까. 조금씩 내 조각을 떼어서 줘봐야 짝꿍이 그걸 소화해줄 수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있으니까.


피로를 물리치고 밤에 편지를 썼다. 솔직히 말해서 엉망진창이야. 애초에 조율하기 쉽지 않아서 잘 맞는지 확인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어. 그럼 편지가 더 엉망진창이 될 것 같아. 다음 편지에서 잇고 싶어.


현지 너 생각부터 들어보고 싶고나. 들은 바에 따르면 조율이 쉽지 않았으나 결국 좁혀진 케이스가 있었던 듯 한데~. (흘끔) (쫑긋) 타올라라 불꽃!!! 같은 사랑을 하고 있는 너의 이야기가 궁금해.


타이레놀 먹고 작두콩차 마시고 누울 예정입니다. 내일 아침 8시 근무시간에 맞춰 책상에 앉으려면...... 망할 코로나. 확.. 드르렁... 안녕. 답장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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