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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므소 Apr 12. 2022

함께 "미쳤다" 외칠 수 있는 사람

2022년 4월 12일 현지에게 소연이가

현지야,

대체 어느 틈에 봄이 와버렸는지 모를 일이야.


왜, 나이 먹으면서 삶이 조금씩 심플해진다고 하잖아. 이십대 때 많은 욕심과 목표, 챙겨야 할 것, 챙길 것들을 끌고 다니다가 찾아오는 계기들로 인해 가지치기 해나간다는 거지. 자기 성향, 기질,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추려나가면서 되고자 하는 인간상, 지키고자 하는 인간관계가 정해진단 거잖아.


서른한 살(이제 만 나이로 한다니까 스물아홉;ㅋ) 되면서 윤곽은 그린 것 같아. 여전히 여러가지 욕심과 에너지,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들을 정확하게 갈라내진 못했어. 그래서 요즘 너와 매일 이야기하고 약간의 동기도 불어넣고 하고 있지.   


짝꿍과 비슷한 이야기를 요즘 많이 한다. 삶에서 우선순위와 결국 중요한 게 뭔지에 대해서. 일치하는 의견들을 공유하고 있어.


서로와 가족, 친구라는 관계망에서 오는 안정감과 모험의 격동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는 삶에 대해. 물질 보다 경험을 우선시 하는 관점에 대해. 현재에 안주하기 보다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는 걸 재밌어하는 태도에 대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의 토대가 되는 게 가치관이라면 나와 짝꿍도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한다고 할 수 있겠다.


우연한 인연이 반려인이 되기 위해 조율이 아닌 확인이 필요한 게 희노애락을 느끼는 키워드가 같은 것이라고! 맞는 말이야. 그 말이 뻔하거나 어렵다는 데도 공감하는데, 무지 중요한 건 다 알지만 실제 그걸 파악하는 데는 시간과 인내와 주의집중이 필요하잖아.


간혹 자신의 연애나 결혼 생활이 괜찮은지 불특정 다수의 의견이 궁금해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그 희노애락의 키워드가 다른 경우가 많더라. 밖에서 누구랑 싸우고 왔는데 '너는 그게 화낼 일이야? 너가 더 잘못했네' 같은 반응이 돌아왔다는 거지. 이건 내 반려인이 '내 편'이 아니라서 그런 게 아니라 '노怒'를 느끼는 포인트가 다른 거 아닐까.


너의 편지를 보고 나도 나와 짝꿍의 희노애락을 되짚어봤어. 거의 겹치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 예쁜 하늘이나 푸른 숲, 맛있는 커피 먹으면서 동시에 "미쳤다" 외칠 수 있고, 아침 7시부터 발 망치 때려대는 윗층 어느 집에 동시에 "미쳤나"를 외치니까. 쫙 빼입은 모습도 좋지만 잠옷에 맨얼굴로 누워있는 서로를 더 즐거워 하고, 거울만 보면 너나 할 것 없이 원숭이 춤을 추며 신나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희노애락을 비슷하게 느끼는 것 같아.


이건 아주 기본적이란 생각이 들어. 선택권 없이 같이 살게 되는 혈연관계 말고, 함께 할 사람을 직접 택하게 되는 경우엔 무조건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란 거지.  


개인적인 기준을 짚는다면 '나와 비슷해서 안정감을 주면서도 상한선 내의 새로움을 주는 사람'이야. 스스로 주변 환경이 주는 인풋에 매우 민감하고, 환경을 잘 흡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나를 어두침침하게 만들고 내가 자기검열하게끔 하거나(할많하않) 어떤 방식으로든 나를 잃게 만드는 사람은 지인으로 두지 않으려고 해. 오히려 내게 스트레스를 줄지언정 그게 내 포장지를 더 벗기고 밝게 하는 방향의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이라면 고맙고, 애정을 느껴.


내 이름은 소연... 밝을 소昭에 끌 연延.. 이름처럼 나의 밝음을 맘껏 뿌리며 살 수 있게 만들어주는 사람들ㅎ

짝꿍은 그런 사람인 것 같아. 내가 해보고자 하는 것에 딴죽 걸거나, 안 될 이유를 붙이지 않고 '너라면 잘할 것 같다'고 느낌표를 찍어줘. 주변 피드백, 인풋에 민감한 내겐 일종의... 인큐베이터 같달까ㅎ.


동거를 하면 이 사람과 365일 중에 360일은 같이 있잖아. 사랑의 반대말이 무관심이고, 애정의 반대말이 냉소라면 짝꿍과 함께라면 그 반대말들이 내게서 멀리 있겠단 생각을 해. 동거를 통해 이 사람과 앞으로도 함께 할 수 있겠다,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환을 경험 중이다!


같이 살기에 가슴 따땃해지고..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 이것에 대해 생각하다가 오늘 뜬 어떤 기사가 떠오른다... 웬 국회의원이 과거.. 칼럼에서 이런 말을 했다네.


“결혼만으로도 당장 예비 애국자가 될 수가 있고, 출산까지 연결된다면 비로소 애국자의 반열에 오른다”

"배우자가 있는 폐암 환자가 독신인 환자보다 오래 산다는 미국 대학의 연구 결과가 있다. 암 치료의 특효약은 결혼”

“이제 온 국민이 중매쟁이로 나서야 할 때다. 그것이 바로 애국이다”


말의 적절성이나 화자의 정신머리에 대한 가치판단을 떼놓고 봐보자. 예비 애국이니 애국자니 하는 얘기도 빼놓고 말야. (ㅋㅋㅋ) 결혼을 애국과 등치시킨 걸 보면 저 의원은 국가주의적 입장에서 결혼=출산, 출산=인구 증가=애국 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난 배우자 있는 폐암 환자가 독신 환자보다 오래 산다는 미국 대학의 연구 결과가 재밌는 거야. 진짜일까? 왜일까? 같이 산다는 것이 뭐기에? 그렇담 결혼이 아닌 동거라면? 결혼=암 특효약, 결혼=함께 사는 것, 함께 사는 것=동거. 이런 등호는 성립 안 되는 걸까?


우리 부모님 세대는 '자녀의 결혼'을 양육의 최종 단계로 여기잖아. 자녀 결혼하면 '숙제를 마쳤다, 과업을 끝냈다, 속이 시원하다'고 하는 거야. 우리의 어른들은 '결혼=같이 사는 것=암 특효약'이라는 비과학적인 심증을 갖고 있는 걸까?


현지 너는 '같이 사는 것' 하면 뭐가 떠올라?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서 정신 없는 질문을 던져본다. (무책임)


만 나이 스물아홉, 지켜야 할 것을 추렸더니 그 중 하나가 운동이더라. 저녁을 먹기 위해 운동을 간다. 계기는 맥아리 없는 체력이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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