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와 함께한 발리 두달살기
세 번째로 입국한 발리는 예전의 모습과 많이 달라져있었다.
우선, 공항의 모습이 3년 전과는 많이 바뀌었다.
우리나라의 전자여권 출입국시스템 같은 출입문이 현대식으로 새로 생겼고, 고령자와 6세 이하의 아이들을 위한 출입국심사 코너도 따로 만들어졌다.
비록 인천공항에서 출발해서 발리공항에 새벽에 떨어지는 공항 시간대는 크게 변함이 없었지만, 몇 년 사이에 세련되게 바뀐 발리 공항의 모습은 익숙함 반, 새로움 반이었다.
공항에서 짐을 찾고 미리 예약해둔 택시 기사의 차를 타고 오늘밤 눈만 붙이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발리에서의 첫 날을 마무리하는가 싶었는데, 이게 왠일인가.
얼마 전의 홍수로 인해 우리가 묵을 숙소가 영업중단이란다.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대로 도착한 호텔이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 우리의 그랩기사는 인도네시아어로 호텔 건물 앞에 진을 치고 있던 사람들에게 뭐라뭐라 말을 하더니 "이 숙소 영업 안 한대"라고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새벽 1시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어서 호텔에 도착해서 씻고 아이들 재울 생각뿐이었는데 호텔이 예고없이 폐쇄되다니.
배우자가 얼른 차에서 내려 호텔 직원인 듯한 사람을 따라갔다. 정말로 호텔은 손님 한 명 없이 운영중단 중이었고, 홍수 피해로 우리가 오기 이틀 전부터 아무 손님도 받고 있지 않다고 했다.
망할 아고다. 이런 사실을 미리 고지해주지도 않다니. (아고다에 항의한 후에 답변 받은 내용에 따르면, 우리에게 '이메일'로 고지를 했단다. 어째됐든 후에 환불은 100% 받았다)
얼른 구글맵을 켜서 근처 호텔을 알아보았지만 미리 알아본 숙소도 없고 정말 난감한 상황이었다.
급한대로 바로 근처에 있는 호텔로 가기로 했는데, 인도네시아는 무조건 길이 원웨이라서 바로 옆 건물이라고 할지라도 다시 길을 한참 돌아서 목적지로 와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차가 길 어딘가로 잠시 빠져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님)
우리가 갑작스런 숙소 폐쇄 때문에 호텔을 살펴보느라 잠시 지체한 시간과 바로 옆 호텔로 목적지를 변경하면서 차를 빙빙 돌린 시간 때문에 그랩기사는 다음 예약자로부터 엄청나게 호출을 당하는 듯했다.
전화내용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랩기사가 쫓기고 있는 건 분명했고, 우리 부부는 그에게 엄청나게 미안해졌다.
바로 옆 호텔인데 왜 이렇게 차 돌리는 구간은 안 나오는 건지. 인도네시아의 원웨이 도로가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그렇다고 바로 옆 호텔이라기엔 걸어가기엔 거리가 꽤나 멀었고, 깜깜한 도로 위를 트렁크 2개와 유모차 2개, 돌 지난 아기와 유치원생 아이를 들처엎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우리는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그랩기사에게 '쏘리 쏘리'를 외치며 트렁크에서 짐을 마구 꺼내 던져놓았다.
보통 같으면 그랩기사와 웃으면서 인사하고 헤어졌을텐데, 다음 예약손님 때문에 정신없이 출발해버린 그랩기사.
우리 가족, 정말 발리에 잘 온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