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사를 하게 되어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출퇴근을 하고 있는데, 마스크 쓰고 다녀야 하는 게 영 불편했는데, 이번 주부터 해제되어 상당히 개운하다.
한창 마스크 착용을 강조할 때, 해외에 있었던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마스크 착용을 했을 때 불편함은 차치하고, 자유를 박탈당하는 심리적 불편함이 상당했다. 코로나의 시작과 진행을 조금만 관심 있게 바라보면 그 이면의 미심쩍은 움직임이 보이는데, 그런 것들이 다른 이유를 들어 대중들의 입을 막고, 생을 마감하는 이와의 작별 인사도 못하게 하고 있는 현실이 참 안타깝다.
이번 코로나로 강화된 방역 법의 여러 규칙들은 우리가 잊을만하면 나타나 대중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될 것이다. 물론 그때마다 다른 병명들로 언론을 통해 대서특필 될 것이다. (코로나의 변이, 변이의 변이, 변이의 변이의 변이처럼)
정상을 비정상이라고 하는 것이 문제인 것만큼, 비정상을 정상이라 여기는 것도 큰 문제이다.
그런데 정상을 정상으로 여기게 하는 것과 비정상을 비정상으로 여기게 하는 것은 다수의 대중들이 가진 관념이고, 대중의 관념은 생각만큼 현명하지 않다. 아니, 생각보다 더 둔하다.
그래서 '자유'라는 가치는 소중한 것이다. 다수의 대중이 지닌 관념과 공공의 이익으로부터 자유롭게 자기 선택권에 의해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지닌 가치는 정상과 비정상이 혼재되어 있는 세상을 관통하는 삶을 사는 개인을 만들어낸다.
'선공후사'라는 말을 흔히 듣곤 하는데, 공공의 일을 먼저 하고, 사적인 일을 나중으로 돌리라는 의미인데, 어떤 면에서는 맞지만, 그것이 어느 조직의 문화가 되면 집단주의가 형성되고 비정상이 정상으로 여겨진다.
이번에 천문학적인 수익을 얻은 백신 기업들과 그 뒤의 글로벌 자본들은 다음 판을 짜고 있을 것이니, 다음 판, 그리고 그다음 판을 통해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고민을 해볼 수 있는 기회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