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에서 오는 위로
연말이 되면 모두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시간 참 빠르다.” 평범한 표현이지만 올해는 유독 이 말이 와 닿는다. 작년 12월 해외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바이러스가 우리나라를 비롯해 올 한 해 세계를 집어삼켰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명목으로 식당과 카페, 술집에 가는 빈도가 줄었고 모임 등의 약속은 ‘다음에’라는 말로 모두 미뤄졌다. 사람과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자 자연스럽게 혼자인 시간이 늘었다. 이런 흐름으로 대학 졸업 후 이렇다 할 돈벌이가 없는 나는 정말 백수가 되었고 집에서 비슷한 날을 흘려보냈다. 하루하루 똑같고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는 인생을 보내게 된 것이다. 이런 삶 속에서 작게나마 행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책이 있었다. 마스다 미리 작가 신작인 『오늘의 인생 2』가 그 주인공이다.
마스다 미리 작가를 알게 된 것은 2018년도 여름이었다. 처음으로 접했던 책은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라는 책이었다. 원래 만화책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누군가의 추천을 받았었는지, 서점을 구경하다 제목에 이끌려서였는지 구매해서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 작가에 반해버려 몇 권의 책을 더 사서 읽었다. 내가 마스다 미리 작가에게 반한 점은 작가가 쓴 책의 내용은 평범함에서 오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작가의 시선이 닿은 일상은 내게 부담스럽지 않은 위로로 다가왔다. 그리고 신간 『오늘의 인생 2』에서도 작가의 따뜻함이 여전히 책 속에 머무르고 있었다.
『오늘의 인생 2』는 제목 그대로 오늘 하루 치의 인생을 담고 있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 노을을 보고 느낀 감상, 길을 걷다 한 짧은 생각 등 고개 돌리면 곧 잊어버리고 마는 사소한 장면들. 작가는 이토록 평범한 하루의 장면을 시간에 흘려보내지 않고 그 흐름에서 건져내 이것이 자신의 ‘오늘의 인생’이라고 말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이런 태도가 지금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더욱 한 치 앞을 모르게 된 삶. 하지만 그 속에는 찍어내듯 비슷한 삶을 살아간다고 느끼는 우리가 있다. 나를 비롯해 하루하루를 비슷하게 느끼며 인생의 가치를 느끼지 않게 되는 우리에게 『오늘의 인생 2』는 삶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잠깐 늦춰 오늘의 인생을 찾게 하는 힘을 준다. ‘오늘 내가 했던 생각은 뭐였지?’, ‘오늘 먹고 기뻤던 음식은?’ 하며 자신만의 시선에서 오늘의 인생을 찾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장면을 찾아 나가는 과정에서 평소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했던 하루에는 매일 다른 내가 했던 생각, 내가 봤던 풍경과 사람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에 우리의 하루가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다고 위로받는다.
또, 『오늘의 인생 2』는 평범함으로 우리를 다독인다. 코로나로 한 해를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드는 우리에게 마스다 미리 작가의 시선이 닿은 그 평범한 장면은 평범하기에 오히려 따뜻하다. 작가는 우리의 삶이 크게 뒤흔들렸지만, 그 속에도 여전히 우리는 우리만의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세상이 변하든 우리는 계속 우리만의 평범한 삶을 살 것이라고 우리는 그 삶에서 오늘을 온전히 느끼며 살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작가의 위로는 지금 우리가 정말 원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오늘의 인생 2』 띠지에는 본문의 만화가 실려있다. 전철에서 맘 놓고 아빠의 어깨에 머리를 얹고 자는 아이. 그리고 그 아이의 맘에 무언가가 남아있으리라 생각한 작가. 『오늘의 인생 2』도 남겨지는 그 무엇을 준다고 생각한다. 마음 놓고 편하게 읽은 이 책을 언젠가 기억 속에서 잊을 수 있겠지만 『오늘의 인생 2』를 읽고 느꼈던 따뜻함과 위로는 오늘의 인생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함께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