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는 이유
중고등학생 땐, 영화 <트루먼 쇼>를 보면서 누군가 나의 일상을 담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주인공 트루먼의 일거수일투족이 그도 모르는 사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내용인데, 그의 사소한 모든 순간이 기록되는 것이 마냥 부러웠다.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찰나들을 보고 싶을 때마다, 듣고 싶을 때마다 끄집어낼 수 있는 게 좋아 보였다. 그리고 가끔은 너-무 웃긴 지금의 순간을, 너-무 특별한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공감받고 싶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내 친구들은 괴짜 감독이자, 기록자다. 함께 길을 걷다 내가 넘어지면, 나를 일으키는 대신 키득거리는 얼굴을 스마트폰 뒤로 숨긴 채 카메라를 들이민다. “야, 너 지금 진짜 웃겨!” 영화나 드라마 속 슬픈 장면을 보며 눈물을 흘리면 금세 정적이 찾아온다. 옆에 있던 친구들이 우는 나의 모습을 찍느라 숨을 죽인 채 카메라를 부여잡고 있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고 취해가는 모습, 밥을 먹다가 음식을 흘리는 것까지 그들의 카메라 앨범 속엔 짤막한 나의 일거수일투족으로 가득하다. 그 영상들은 삽시간에 단체 채팅방을 통해 공유된다. 수만 개의 ‘ㅋ’으로 가득 찬 채팅방 속에 쌓여가는 나와 친구들의 영상.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일상을 기록한다.
의미 없이 찍은 그 영상들은 시간이 흘러 바빠진 우리에게, 그래서 소원해진 우리에게 잠시 과거 여행을 떠나게 한다.
‘1년 전 오늘’
시도 때도 없이 스마트폰 알림으로 뜨는 식상하고도 평범한 말이지만,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간다. 그 단어는 이상하게 모든 일을 멈추게 한다. 촉촉하면서도 몽글몽글한 배경음악과 함께 1년 전 나와 친구들의 모습을 슬라이드 쇼로 보여준다. 1분도 안 되는 그 영상은 수만 가지의 생각으로 나를 간지럽힌다. 영상 속 날씨와 온도, 당시에 먹었던 음식, 그때 만났던 사람들,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 잊고 있던 그 순간의 모든 것들이 내 주변을 맴돈다. 동실동실 떠다니는 기억을 더듬으며 영상 속 그 시간으로 서서히 빠져든다. 하루를 자잘하게 쪼개 조급한 마음을 쥐고 사는 나에게 느릿느릿, 천천히 흐르는, 드문 시간이다. 영상 속 순간들을 떠올리는 것은 촬영 당시를 추억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영상에 담긴 나의 모습을 보며 내 취향을 찾기도 하고, 영상에 비친 나의 눈빛을 보며 함께했던 그 친구가 좋았던 이유를 깨닫기도 한다.
글쓰기도 그렇다. 글을 쓰는 동안엔 스스로의 촬영감독이자, 기록자가 된다. 빠르게 눌리는 카메라 셔터 대신, 메모장 앱이나 카카오톡 나에게 쓰기를 열어 짤막한 단어와 두서없는 문장들로 토독토독 그 순간을 담는다. 통일되지 않은 어미와 엉망진창 맞춤법으로 찰나를 빠르게 기록하려는 나의 의지를 드러내기도 하면서.
글은, 스마트폰 카메라로 기록하는 속도와 달리, 느리고 너그럽다. 기록하는 당시의 내 손은 무지하게 바빠도 말이다. 기계로는 인식할 수 없는 엄청난 프레임 수로 쪼개어, 더욱 촘촘히 섬세히 기록된다.
점점 희미해지는 찰나를 꼬옥 붙잡으며 하나하나 천천히.
오합지졸 모인 단어와 문장을 조각조각 다듬고,
갖가지 감정과 감성적 표현으로 오밀조밀 양념하면서.
가뿐히 버리기도 하고, 예쁘게 포장도 하며
스마트폰 앨범 대신 나의 블로그에, 새로운 메모장 파일에, 다이어리 한 페이지에 좀 더 글다워진 글로 새로이 편집된다.
작성한 글엔 ‘1년 전 오늘’이 없다. 그래서 그날의 기록을 찾으려면, 꽤 정성이 필요하다. 그때 적었던 시간이나 단어를 곰곰이 생각하며 하나하나 살펴야 한다. 찾고자 할 때 바로 찾을 때도 있고, 오랜 시간 후에 찾을 때도 있고, 어쩌다 우연히 발견할 때도 있다. 그렇게 찾은 글은 왠지 외로워 보인다. 다채로운 영상이나 사진과는 달리, ‘흑과 백’으로만 구성된 기록물. 그래서인지 작성했던 글을 읽는 시간은, ‘1년 전 오늘’이 적힌 영상 속 그 순간을 더듬는 것보다 조금 더 느리게, 유유히 흐른다. 표현한 단어, 쉼표와 마침표의 개수, 문장의 어미를 살피며 글 쓰는 그 순간에 젖어든다. 글 속엔 영상보다 더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신랄하면서도 추상적이고, 아름다우면서도 처절하다. 문장마다, 단어마다 그때의 취향이나 심리상태, 주변 환경이 보인다. 그래서인지 글에선 온도와 무게도 느낄 수 있다. 한껏 움츠리게 했던 겨울 아침 출근길의 온도와 한기, 한밤중 홀로 산책하며 느꼈던 밤 호수의 묵직함. 글은 영상이나 사진처럼 알록달록하진 않지만, 생동감이 있다.
그래서 찾아보았던 나의 글(블로그에 작성했던 글들을 몇 개 가져와 봤다).
얘는 나만 찍어준다.
내가 찍을라 하면 도망간다.
나 뚱뚱하게 나온 것 같다니까 이쁘다고 해줬던 몽.
배경이 이쁘다 싶으면 다 서보라던 너.
남자친구냐?!
우리 사진 많이 찍자.
우린 못나도 이쁘니까.
몇 년 전 봄밤에 쓴 글.
친구 D가 얼마나 나를 아껴주었는지, 그의 애정과 따뜻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 예쁜 마음이 나는 참 감사했나 보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토이스토리 3 (2010)> 한줄평.
이별의 순간이 왔다고 해서 꼭 누군가의 마음이
변질되었기 때문인 건 아니다
어떤 이별은 그저 그들 사이에
시간이 흘러갔기 때문에 찾아온다
당시 정말 친했던 친구에게 거리감을 느끼면서 크게 와닿았던 글이다.
어떤 것이 문제였는지 살피고 있던 찰나에 내 앞에 짠하고 나타났던 글.
꽤 위로가 되었다.
<열심히 표류 중>
표류한다는 말에 ‘열심히’를 붙이는 것이 어색하긴 하지만,
어찌 보면 지금 나의 상태를 적절히 표현하는 말이다.
‘열심히 표류 중’
나는 표류 중이다.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을 분명히 알던 내가, 가장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나의 모습은 혼란스럽기보단 교만하다.
스쳐오던 것들에 대한 어리석은 확신 때문에
쓸데없는 걱정과 잡생각이 내 주변을 감싼다.
그런 기운은 언제부턴가 나를 삼켰고, 나는 어린 꼰대가 되었다.
다행스러운 건 지금 깨달았다는 것.
한정된 것에서도 무한함을 꿈꿀 수 있기를.
꿈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기를.
좀 더 다채로운 나를 찾기를.
열심히 표류하면서.
아직 스물다섯이니까.
애매한 어른이 되지 말기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모습들이 처음으로 낯설게 느껴졌던 순간으로 기억한다. 스스로 크게 실망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 방황 중에 어른스럽지 못한 어른들과의 만남에 스트레스가 많았던 것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당시 나에게 잘 견뎌왔다고, 잘하고 있다고, 그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오래 고민할 문제이니 너무 급하게 해결하려 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 글을 지금 다시 읽어보니 나는 꽤 잘 크고 있었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인생의 키가 한 뼘 쑤-욱 큰 듯하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바쁘고 정신없는 내 시간을 느리게 혹은 잠시 멈추게 한다.
그 시간 속 나를 너그럽고 따뜻하게 살피며 앞으로 살아갈 나를 응원하고 격려한다.
천천히, 느릿느릿, 그리고 유유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