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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다 Mar 31. 2024

43(마흔셋)

자리끼의 소중함

 


할머니도 아빠도 머리맡에 꼭 물을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자다 일어나는 일은 화장실 갈 때 뿐이었던 어린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다가 목이 마른다고? 그래, 그렇다고 해도 일어나서 마시면 되잖아. 손 닿는 곳에 두려는 건 할머니랑 아빠가 좀 게으른 것 같은데.

아침에 들여다보면 컵 속의 물은 한모금 정도 줄어있거나 그대로였다. 해가 뜨면 그대로 버려지는 물도,  그 행위에 들이는 공도 아까웠지만 그저 습관이려니 했다. 습관이라는 건 원래 바꾸기 어려운 거니까. 나름 배포 있게 이해력을 발휘한 어린이였다.


마흔셋이 된 봄. 나는 마침내 그들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겨울의 꼬리가 아직은 날름거리는 밤, 약간의 난방을 틀고 여느때와 같은 봄 맞이를 하고 있다 생각했지만, 내 목은 여느때와 다르게 봄을 맞이했다. 콜록콜록. 매캐한 목의 감각을 느끼며 수시로 잠에서 깼다. 건조한가 싶어 젖은 수건을 머리맡에 두고 자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이삼일에 한번은 꼭 기침 때문에 잠을 설쳤다. 입면이 쉽지 않은 자에게는 재난과도 같은 상황이었다. 몇번의 기침을 뱉어내고 얼른 돌아눕더라도 칼칼한 목의 감각이 심히 거슬려 결국 부엌으로 가 물을 한모금 삼켜야 했다. 그러고 나면 잠이 새어나가 한동안 뒤척이다 날이 새고 만다.

  

그러다보니 이제 내 머리맡에는 물 한잔이 놓여있다.  오늘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곧 찾아오고야 말 기침을 얼른 잠재우고 새어나가려는 잠을 붙들기 위해서 말이다.


통상 ‘자리끼’는 배고픈 시절, 허기를 달래기 위해 잠자리에 두는 끼니라 해석되지만 내게 ‘자리끼’는  잠자리를 위태롭게 하는 기침을 달래기 위한 젯밥 같은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이 나이쯤 되면 잠자리에도 끼니가 필요해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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