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ctuary: Medium 1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지키는 사람들

by Rooney Kim

노인의 눈에 비친 석양은 무척이나 슬퍼보였다.


마치, 저 태양이 지면 자신의 마지막 숨이 넘어가기라도 할 듯 그는 석양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사진을 찍고 큰 소리로 수다를 떨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그는 마치 오랜 시간 그 자리에 머물렀던 조각상인 마냥 그 자리에 그대로 대지가 저 지평선 너머로 태양을 삼키는 순간까지 단 한 번의 미동도 없이 그 자리를 지켰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이 애잔하기도 했고 동시에 눈을 떼기도 힘들만큼 아름다운 일몰에 감탄까지 하면서 두 가지 감정이 뒤섞여 미묘한 기분마저 들었다. 나도 서서히 해변을 떠날 채비를 했다. 날이 저물자 기온은 빠르게 내려갔고 셔츠만 입고 있기엔 지난 달 감기로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하아-'


마침내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짧은 한 숨을 내쉬었는데 그 한 숨이 자신의 지난 세월에 대한 회한인지 아니면 지금 자신의 현실에 대한 답답한 심경인지 알 수 는 없었다. 나는 누가봐도 80세는 넘었을 듯한 하얗게 샌 머리와 느릿느릿한 동작을 보며 그저 삶이 얼마남지 않은 자신의 생에 대한 아쉬움이나 두려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나를 향해 돌아서자, 난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먼 발치를 바라보는 척을 했다. 그는 나를 쳐다보지는 않은 듯 했는데, 얼핏 본 그의 얼굴은 생각보다는 주름이 적었고 곱게 나이들었다는 느낌을 줄만큼 인상이 밝았다. 불현듯 짧은 시간동안 내가 했던 생각들은, 마치, 처음 본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오직 개인의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그를 평가한 것은 아니었나하는 짧은 반성이 들 만큼 부질없는 걱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누굴 걱정해. 역시 인간은 제멋대로야. 내 걱정이나 하자구.'


"안녕하세요? 여행오셨나봐요?"


부드럽고 기품있는 목소리의 그녀는 역시나 내 생각대로 남은 여생이나 걱정하는 노인은 아니었던것 같다. 갑작스레 말을 걸며 다가온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인자하면서도 아름다운 미소에 나 역시 절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안녕하세요? 네, 혼자 여행왔어요. 여긴 전세계에서도 경치로 손꼽히는 곳이잖아요?"


"그렇죠. 너무 걱정하지도 말고 편안하게 쉬었다가세요. 여긴 여행자들의 천국이고 특히, 이 호수는 상처받은 이들이 치유를 받으러 오는 곳이랍니다. 그러니 이젠 생각을 좀 내려놓아요."


그녀는-나보다 한참 나이가 든 노인이었지만 차마 할머니라고 부르기는 힘든 묘한 분위기를 가진-뭔가 묘한 한 마디를 던지고는 다시 한 번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천천히 나를 지나갔다. 방금전까지 생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한 노파를 걱정하던 내가 마치 크게 한 방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 만큼 얼떨떨한 기분이 들어 잠시 동안 그녀의 뒷모습만 쳐다 보았다. 그녀는 나이가 들었지만 늙은 이가 아니었고 몸짓은 느리지만 목소리에는 힘이 가득 차 있었다.


'생각을 좀 내려놓으라는게 무슨 말이지.. 나에 대해 알기라도 하는 걸까..?'


산 정상에 모터보트로 가로질러가도 3~4시간은 걸려야 반대편에 도착 할 만큼 큰 호수가 있는 이 곳은 전 세계에서 삶에 지친 많은 이들이 몰려오는 곳이었기에 그녀의 한 마디를 흘려들었다면 지친 젊은 이에게 건내 준 한 노인의 흔한 격려로 그저 지나칠 수 있었겠지만 정말 많은 생각과 고민에 지쳐 쫓기다시피 여기로 온 나에게 낯선 이의 한 마디는 나를 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저기.. 저기요!"


난 그녀를 어떻게 부를 지 몰라 그냥 큰 소리를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호수의 바람 소리 때문인지 지나가는 관광객들의 시끄러운 소리 때문인지 그녀는 느릿느릿, 하지만 어느 새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 가방을 챙겨서 얼른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사방이 어두워지면서 상점과 레스토랑에 불이 켜지기 시작했고 군데군데 설치된 가로등들도 빛을 밝히며 주변이 점점 환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낮은 건물들 사이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었고 나는 그녀를 따라 달려갔다.


"저기, 할.. 할머니!"


나는 그녀를 그렇게 부르고 싶지않았다. 그래서 '할머니'라는 단어를 꺼낸 직후 그녀를 그렇게 부른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덕분에 그녀는 가던 길을 멈추고 그를 돌아보았다. 나이 든 모습이었지만 기품있는 옷차림과 온화한 미소는 호수가에서 보다 그녀를 더 밝게 빛나게 하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젊은 이?"


석양을 마주한 탓이었을까, 마치 후광이 그녀 뒤에서 번져나오는 듯한 모습을 한 모습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맙소사, 그녀는 그저 지나간 세월을 후회하며 하루하루 사라지는 석양에 아쉬워하며 눈물짓는 그런 노파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그녀를 똑바로, 오래 쳐다보기가 힘들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아닌 어떤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무언가가 어려있었던 것이다.


"아.. 그게, 호.. 혹시 괜찮으시면, 저녁을 함께 할 수 있을까요? 제가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녀는 분명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할 것 이다. 아니면 여행지에서 종종 밥을 구걸하는 흔한 돈없는 젊은 배낭 여행객으로 생각할 것이다. 사실, 그게 더 낫다.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기보다는 밥을 구걸하는 젊음이 더 설득력이 있으니까. 그런데 내가 이런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그녀는 예상보다 더 빠르게 대답했다.


"물론이죠. 따라오세요. 마침 먹으러가던 길인걸요. 여행온 사람에게 오늘은 혼자 밥먹기엔 아까운 저녁이죠."


그녀는 마치 나를 알고있는 사람처럼 대했다. 내 마음을 읽는 것일까? 잠깐 이런 생각도 했지만 얼른 부질없는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길을 건너 곧장 달려갔고 곧 그녀의 옆에 서서는 나란히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한 동안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도 나를 보고 그 인자한 미소를 한 번 더 지어줬을 뿐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양갈래의 골목을 몇 번 지나 우리는 곧 어느 건물에 도착했고 그녀는 문에 노크를 하고는 나에게 한 마디 건냈다.


"생추어리에 온 걸 환영해요. 어서 저녁을 먹으러 올라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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