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지키는 사람들
그녀는 족히 수 백 년은 됐을 법한 오래된 나무문을 가볍게 밀고 생추어리 안으로 들어섰다. 곧 알게 된 것이었지만 생추어리는 이 지역에서 수 백 년 전, 아니 천 년도 더 전에 지어진 성당이었는데 그건 생추어리라는 이름과 건물이 풍기는 분위기만으로도 대충 짐작 할 수 있었다. 내부는 더욱 놀라웠는데 수 백 년이 되었다는 건물이었음에도 아주 깨끗한 바닥과 먼지 하나 보이지않는 가구들은 사치스럽지는 않았지만 고고한 미를 뽐내는 고가의 앤틱가구들로 멋스럽게 꾸며놓은 부티크 살롱이나 호텔을 보는 것 만 같았다. 그녀는 나를 한 번 돌아보고는 복도를 따라 한참을 먼저 걸어갔다. 나 역시 달리 할 말이 없어 그냥 실내를 둘러보며 감탄에 젖어 자연스럽게 그녀를 따라갔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중앙 계단 아래에서 웅성거리는 듯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는듯 해서 귀를 기울였다. 마침 그녀가 오른쪽으로 돌아서더니 나를 보고는 아래로 따라오라며 손짓을 하곤 아래로 내려갔다.
“이제 다 끝나가는 것 같아요. 가서 식사 하면서 좀 쉬었다가세요.”
실내의 조명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정말 나이와는 무관한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깊은 산 속의 신선 같으면서도 기품이 느껴지는 귀족의 자태 까지 갖춘 그녀는 마치 자기 홀로 다른 세상에서 사는 듯한 느낌마저 주었다. 아무튼 그녀의 분위기와 생추어리 내부의 분위기에 압도당한 나는 '네' 하며 짧게 대답하고는 그녀를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큰 목소리로 단 번에 대답을 못한터라 내심 그녀가 나를 소심한 성격으로 보거나 혹은 버릇없게 보지는 않았을까 살짝 신경이 쓰일 정도 였다. 길쭉하게 둥근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1층에서는 상상도 못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대부분 현지인들이라 현지의 언어는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간혹 영어나 불어도 들렸다. 처음에는 큰 파티나 잔치가 벌어져 나를 데리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은 곧 현실과 마주하게 되면서 금새 사라져버렸다.
“자, 처음 저녁에 초대한건데 이런 곳으로 데려와서 좀 미안하네요. 저도 예상에 없던 초대이니 이해해주시기 바래요. 식사를 하기 전에 혹시 인사를 하고 오시겠어요?”
그랬다. 그 곳은 이 지역에서 오래 살다간 누군가의 장례가 치러지고있었던 것이다. 생추어리가 막연히 교회일 것 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생판 모르는 사람을 따라서 본 적도 없는 누군가의 장례식에 오게 되리라고는 출국을 할 때는 물론 그녀가 저녁을 먹으러 따라오라고 할 때에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런데 장례식장이라고 하기엔 어느 파티장 마냥 분위기가 너무 소란스러웠고 따라서 큰 거부감이나 부담감은 없었다.
“그런데.. 전 아예 모르는사람인데 제가 인사를 해도 여기 가족분들에게 괜찮을까요? 저기 고인이 되신 분에게도 그렇고..”
마침 그녀가 시신이 안치된 곳 근처에 놓인 사진들을 쳐다보고 있었고 나 역시 잠시 그 사진들을 훑어보았다. 사진들은 보통 우리나라의 장례식에서 볼 수 있는 딱딱한 형식의 영정 사진이 아닌 그 사람의 나이를 짐작케 할만큼 오래된 흑백사진속의 젊은 시절부터 나이든 모습들 그리고 행복하고 즐거운 한 때들로 다양하게 마치 갤러리처럼 이루어져 있었고 그래서인지 장례식장에는슬피 우는 사람들보다는 저마다 웃음을 띠고 삼삼오오 모여 웃으며 이야기 꽃을 피우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마치동창회 모임이나 친목단체의 모임같은 분위기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이 말이다.
“당연하죠. 지금 저기사진들을 봐요. 지금 그녀는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그녀와 함께했던 행복한 순간들은 여기 이 공간에서 숨쉬고 있는 사람들과 여전히 함께 살아있죠. 그리고 그녀 역시 저 세상에서 행복할 거예요. 진심으로 말이죠.”
말을 끝낸 그녀의 눈은 약간 붉게 충혈되었고 눈시울이 약간 촉촉하게 젖었지만 눈물을 흘리거나 목소리가 떨리지는않았다. 묘하게 감정을 조절하며 슬픔을 절제하는 듯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웃고 있는 그녀의 눈은 진실했다.
“그럼 잠시 고인에게 인사를 하고 오겠습니다.”
나는 주변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시신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곳엔 평생 한 번도 보지 못한 한 나이 든 노인이 역시 한 번도 본 적 없는 편안한 표정으로 마치 잠을 자는 듯이 두 눈을 감고 누워있었고 그녀의 관은 다양한 꽃으로 이미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딱히 그녀에게 줄 것 이 없어 그녀의 관 앞에서 두 눈을감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는 그녀를 위해 기도를 해주었다.
‘답답하고 막막한 현실에 쫓기다 여기까지 날아왔는데 이렇게 처음으로 인사와 기도를 드립니다. 저는 삶의 답을 찾으러 왔는데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이렇게 훌륭하게 삶의 여정을 끝내고 마지막 축제를 온 가족과 이웃들과 즐기고 있었군요. 저를 오늘 이 자리에 초대해준 분에 대해서도 아직 아는 게 없는데 막상 또 이렇게 기도를 하려고 하니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부디 즐겁고 여한이 없는 한 평생이셨길바라고, 천국에 가셔서 삶의 고통과 고민과 두려움이 없는 영원의 시간을 잘 누리시길 바랍니다.’
정말 무슨 기도를 할까, 아무런 생각도 없었는데 두 눈을 감으니 또 거짓말처럼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막 눈을 뜨고 관 속의 그녀를 한 번 떠 바라보았는데 아까와는 다르게 마치 옅은 미소를 띤 것 마냥 살짝 웃는 것처럼 보여 놀라우면서도 약간은 무섭기도 했다. 나는 곧장 뒤를 돌아 다시 그녀에게 다갔고 그녀는 다시 한 번 활짝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자, 그럼 이제 식사하러갈까요?”
그녀는 뒤를 돌아서더니 나에게 따라오라는 손짓과 함께 주방 근처의 조금은 한적한 곳의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가 자리를 잡자마자 거짓말처럼 어디선가 두 소녀가 다가오더니 무얼 먹을지 묻지도 않았는데 재빠르게 홍차와 먹을 것들을 가져다 주었다. 적당한 굽기로 먹음직스럽게 나온 스테이크와 제철 과일과 채소로 만든 샐러드, 올리브유에 가볍게 볶은 듯한 아스파라거스와 관자살 그리고 따뜻한 빵과 부드러운 양송이 스프까지 식탁 위의 음식들은 마치 내가 평소에 먹고 싶은 걸 알아내서 차려온 듯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하긴.. 여기가 식당도 아니고 뭘 먹을지 고민은 왜 했을까? 주문할 것도 아닌데.’
“스테이크 좋아하죠? 혹시 못 먹는 음식 있으면 말해요. 먹을 만한 걸로 구해다 줄테니까요.”
“전 아무거나 다 잘 먹지만 오늘은 정말 최고예요. 어제 여기 도착해서 오늘이 이틀 째인데 이틀 째 저녁을 이렇게 진수성찬으로 먹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네요. 하하하.”
내가 큰 소리로 웃자 그녀도 나를 따라 웃었다. 순간, 여기가 장례식장이라는 생각이 번쩍 들어 곧 웃음을 멈추고 미안하다고 했는데 그녀는 오히려 이 순간들을 더 즐기라고했다. 지금 이 즐거운 순간들은 관 속에 있는 그녀가 원했던 저녁일 수도 있다면서 말이다.
우리는 밥을 먹기에 앞서 서로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그녀의 이름은 마들란이었다. 나이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아마도 80세는훌쩍 넘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원래 유럽에서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부터 이곳으로 와서 거의 현지인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해질녁, 호수의 선착장에서 그녀의 눈을 보며 죽음을 몇 해 남기지 않은 노인의 슬픈 저녁을 상상하며 혼자 망상에 잠겼던 내 자신이 몹시도 부끄럽고 유치하게 느껴졌다. 나 보다 수 십년은 더 산 분들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살았을 텐데 그 분들이 지금 나의 이런 제멋대로인 생각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우스울까. 나의 현실적인 고민들 마저도 어쩌면 그녀에게는 가슴 뛰는 도전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앞날에 대한 고민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도 늙음 보다는 젊음이 더 좋으니.
“그럼 태주씨가 여기로 온건 앞날에 대한 고민 때문인 거네요? 단순히 놀러온게 아니라?”
“네.. 지금도 앞으로 뭘 해먹고 살지 생각하면 갑갑하고 막막해요. 물론 뭐라도 하려면 할 수 있겠죠. 그런데 행복하기는 커녕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예요.”
“그렇군요. 하긴, 우리 때보다 더 살기 힘든게 요즘이라던데 이해해요. 물론, 제가 이해하는 것보다 더 힘들거라 뭐라 위로해주기도 미안하네요. 인생의 선배로서 말이예요.”
그녀는 나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고 있었다. 적어도 난 정말 그렇게느꼈다. 왜냐하면 그녀는 나의 이야기를 무턱대고 딱 자르지 않았고 아무리 길어도 끝까지 들었으며 한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도 그것에 대한 정답이나 방법을 일러주려고 하기보단 정말 답답한 심경과 힘든 내 마음을 그녀의 얼굴 표정에 그대로 실어 나의 감정을 그대로 공감하는 모습을 아무런 몸짓이나 한 마디의 말 없이 표정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은 돈이 안 된다고 하더라구요..”
“태주씨가 좋아하는 일들이요? 정말하고 싶은 일들이 돈벌이로는 부족하다는 말인가요? 누가 그래요? 남들이?”
“네, 저는 거의 9년동안 국내외 영업을 했어요. 글로벌기업에서 일을 하기도 했죠. 사람들을 만나는 걸 좋아하고 거침없이 진행하는 것도 잘하는 편이라 직업적으로는 잘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저기 어딘가에 이 직업의 끝이 보이더라구요. 덜컥 겁이 났어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어떡하지? 그래서 그 끝이 먼저 오기 전에 내가 먼저 움직이자, 내가 스스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거죠. 나의 아이디어들로 사업을하고 싶다는 생각도 몇 년 전 부터 하긴 했구요.”
“그럼 뭘 하고 싶은데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창업도 하고 싶은데 아이템들이 확실하지가 않고.. 사실, 제가 취미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음악도 만드는데요. 아, 물론 아마추어 수준들이 예요. 아무튼 그런데, 전 언젠가는 제가 만든 컨텐츠를 통해 전세계 사람들이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진짜 숨을 쉬고 살 수 있도록 해주고 싶거든요.”
이 말을 하자마자 나는 또 후회를 했다. 무슨 초등학생이나 할 법한수준의 생각에 신입사원 면접에서나 할 화법으로 설명하고 있었다는 걸 나 스스로가 이 이야기를 하면서 느꼈기 때문이었다. 손발이 오그라들게 말이다. 젠장.
“좋은데요? 좀 더 말해봐요. 어떤 글을 쓰죠? 그림은 요? 음악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오히려 그녀는 나의 짧은 설명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내가 글을 쓴다고 했을 때, 내가 그림을 그린다고 했을 때, 내가 작곡을 했다고 했을 때, 내 주위에 친한 친구들은 나에게 어떠 했던가? 내가쓴 글의 링크를 보내주고 귀에 이어폰까지 끼워주며 음악을 듣게 했지만 그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이 시간에 일이나 더 열심히 해서 연봉이나 더 올릴 생각을 하라고 했으니.. 말 다했다. 사실, 나도 그렇게 살아왔고 그래서 수입도 나쁜 편은 아니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니까. 그녀가 한글을 읽을 수는 없었기에 휴대폰에 있던 그림 몇 개와 내가 만들었던 노래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내 노래 중 피아노와 신디사이저를 섞어 만든 노래 두어 곡이 마음에 든다며 나중에 꼭 파일로 달라고 까지 했다.
“그래서 아까 호숫가에서 저한테 인사치레로 한 한 마디에 마들란을 불렀던 거예요. 바보같이 들리겠지만 생각을 좀 내려 놓으란 말이 뭔가 답을 가지고 있진 않을까 하는생각이 불현듯 들었거든요.”
“가뜩이나 머릿속이 복잡할 텐데 제가 괜한 말을 해서 뭔가 답을 찾을거라는 희망을 드린 거라면 좀 미안해지는데요?”
그녀는 따뜻한 홍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답했다.
“제가 보기에 태주씨는 이미 답을 가지고 있거든요.”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머릿속에서는 아주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들이 흘러갔다. ‘답은 그대 안에 있다.’ 이는 마치 광고에서 한 번은 봤을 법한 뻔한 카피같은 말이기도 했고 어찌 보면 수 많은 멘티들을 앞에 두고 던진 무책임한 멘토의 한 마디와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마치 나의 이런 표정과 생각도 짐작이나 한 듯이 한 없이 평화로운 표정을 지어보였고 나는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그 표정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저 친구는 제 동생이예요.”
마들란이 관 속의 여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 저 친구라면..”
“오늘이 제 동생 사브리나의 장례식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