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삶의 지속성을 위하여

by Rooney Kim


더위는 식을 줄 모르고 식탁 위에는 읽지 않은 책이 쌓여간다. 실링팬의 바람이 주방을 가득 메울 때쯤 커피잔에 맺힌 물방울들이 서로 엉겨 붙어 쪼르르 식탁을 향해 떨어진다. 겁 없이 떨어지는 물방울. 그런데 컵 아래에 있던 패브릭 코스터가 이를 날름 받아마신다.


습한 여름이었다. 매해 여름은 쉬이 우릴 보내주지 않지만 다행인 건 제아무리 뜨거운 태양도 시간이 흐를수록 아침저녁으로 잦아드는 가을의 원투펀치에 머쓱해진 얼굴로 한낮의 기운만 맹렬히 뽐내다 가랑비에 옷 젖듯 누적된 잽의 대미지를 안고 곧 계절 뒤편 링 밖으로 사라진다는 점이었다.


어느새 선선한 바람이 옷깃에 스며들어 옷도 내 마음에도 숨 쉴 여유가 생길 때쯤이면 식탁에 쌓아둔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 그래서 가을은 독서의 계절인가 보다. 문득 선조의 현명한 가르침에 또 무릎만 탁하고 치고 만다.


그래, 내가 그동안 책을 안 읽었던 이유는 어쩌면 못 읽을 수밖에 없는 환경의 탓도 있다. 제아무리 에어컨을 틀어 집안을 쾌적하게 만들어도 좀처럼 책으로 눈이 가지 않았던 이유는 어쩌면 계절이 가진 원초적인 힘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내가 독서를 게을리하고 텍스트보다 영상과 이미지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 이유의 팔 할은 어쩌면 나의 의지보다는 환경이 가진 강력한 힘이었고 나는 힘의 논리에 따른 평화로운 일상을 지키기 위해 여름과 타협했던 것이다."


자연의 섭리. 크..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정도의 거대한 변화가 오더라도 차마 역행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건 자연환경을 통해 본능적으로 부여받은 망각과 게으름이 아닐까.


20대부터 30대를 지나 지금까지 평생 게으름을 쫓아내며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기어이 나의 안으로 비집고 들어온 녀석을 이제는 삶의 일부로, 에너지 충전의 재료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논리와 합리적인 이유는 모두 제쳐두고, 뭐든지 잘잘못을 따져보려는 의도적인 에너지 또한 배제한 채 이런저런 잡생각에 빠져드는 요즘이다. 어쩌면 이런 생각과 기분에 ‘잡생각’이라는 이름의 명명조차 미안할 정도로, 이런 감정과 생각을 너무 경시해 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적어도 잡생각을 하는 동안에는 머리는 쉬고 있었는데 말이다.



최선의 시간, 그다음은 휴식


노력은 중요하다. 최선은 더더욱 중요하다. 하지만 에너지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다.


나의 에너지도, 서비스의 인기도, 브랜드의 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에너지가 빠진다. 즉, 사람이든 서비스든 브랜드든 그것이 가진 에너지의 한계와 기간을 정확히 인지해야 한다. 에너지는 유한하고 시간은 흐르니까.


혹시라도 그 사이에 뭔가 반응을 얻고, 인기를 끌며, 성공하게 되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이 ‘나는 운이 좋았다.’ 고한다. 물론, 그 운은 당연히 노력한 자들에게 주어진다. 노력한 자들 중에서 우연히, 혹은, ‘그 운’의 범위에 들어가기 위해 분석하고 노력하고 끈질기게 매달린 자들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죽도록 노력하고 능력까지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운’의 눈에 들지 못하면 또다시 리셋되거나, 다른 경로를 찾거나, 다시 시작해야 한다. 힘이 주욱하고 빠진다. 그런데 그게 현실인걸 어떡하나.


그래서 휴식이 필요하다.


대부분 ‘운’의 범주에 들지 못한 이들은 ‘다시 한번 더’라는 기회에 도전하기 전에 좀 쉬어야 한다. 체력도 마음도 좀 쉬면서 재정비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휴식의 힘은 위대하다. 마음은 안정되고 머릿속은 정리된다. 과열된 감정으로 인해 과장된 시각이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고, 소진된 의지와 빈약해진 열정의 드럼통을 탈탈 털어 비워내고 새로운 연료로 다시 가득 채워준다.


목적지 없이 나와 시내를 활보하고 공원을 걷다 보면 새로운 자극과 의욕이 조금씩 차오른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하릴없이 유쾌한 콘텐츠를 보다 보면 뜻밖의 영감과 방법이 떠오른다.

소중한 가족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요리하고 먹다 보면 삶의 중요한 것에 대해 어느새 깨닫는다.


쉬이 가시지 않는 더운 열기가 가을의 잽에 조금씩 조금씩 파편처럼 흩어지는 밤, 휴식의 참의미와 함께 ‘쉬는 시간’을 가져본다.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ko/s/%EC%82%AC%EC%A7%84/rest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객관의 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