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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샘 Oct 18. 2023

설렁탕처럼 쓰고 싶다

어느 새벽의 고백

 습관적으로 하루에 한 번은 글을 쓴다. 글을 쓸 때 나는 일단 쓰고 싶은 말은 다 넣고 본다. 의식의 흐름대로 이 얘기, 저 얘기, 불필요한 설명까지 다 쓴다. 쓰다보면 어떤 문장이 나올지, 결론을 어디로 데리고 갈지 모르기 때문에 다다익선의 마음으로 몽땅 다 써 본다. 한편으론 대학시절 레포트를 쓸 때면 늘 정해진 분량을 채우기 위해 급급했었던 경험 탓에 일단 길게 쓰는 것 자체가 글쓰기 실력이 나아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쓴 후 불필요한 문장들을 삭제하는 퇴고 단계로 넘어간다. 결론까지 완성하고 나면 어떤 문장과 문단이 어울리거나 상관없는 얘기를 하는지 파악이 좀 더 쉬워진다. 


 문제는 수정하다보면 좀처럼 쉽게 지울 수 없는 문장들이 맞닥뜨릴 때이다. 주제나 글의 흐름과 크게 상관은 없지만 내가 좀 더 설명하고 싶은 부분이라던가, 평소에 내가 생각하던 것이라던가, 마음에 드는 표현이 대체적으로 그렇다. 마치 딱히 쓸모는 없지만 버리기엔 멀쩡한 물건처럼 문장의 오류도 없고, 흐름에 크게 저해도 되지 않으니 버리기 아깝다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내 무의식 중엔 아마 기껏 써놓은 글을 지우긴 아깝다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여정씨, 글을 좀 더 줄여보세요.”

최근 수업에서 받은 피드는 모두 글을 줄이라는 것이다. 줄일 수 있을 만큼 줄였고 추릴 수 있을 만큼 추렸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도 나의 착각이었다. 아닌게아니라 최대한 줄였다고 생각한 지난 수정글 또한 강평시간에 소리 내어 읽고 나서야 왜 이렇게 길게 썼을까 후회하던 참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꼭 짧게 쓰리라 다짐했건만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나의 글은 더 간추리고 짧아져야 했다. 


 어떻게 고쳐 쓸지 고민하는 와중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글은 요리 못하는 사람이 만든 요리 같다고. 요리를 못 하는 사람은 레시피 대로 하지 않는다. 나만 해도 그렇다. 두부가 조금 많이 남으면 정량보다 두부를 좀 더 넣고 한 스푼 넣어야 되는 간장을 넣다가 더 많이 넣어버리기도 한다. 오늘따라 냉장고에 애호박이 눈에 띄면 넣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애호박을 썰어 넣는다. 그래서 요리가 제 맛을 띄지 못하고 잡탕이 된다. 양도 많아지고 결국은 다 못 먹어 남게 된다. 


 반면에 맛있는 요리를 생각해 보면 들어간 재료 중 어느 것 하나 필요치 않은 게 없다. 마늘은 약간의 알싸한 맛을 위해 반 티스푼, 미림은 고기의 잡내를 잡아주기 위해 3스푼. 모두 필요한 만큼만 필요한 재료들이 들어간다. 재료들이 모두 한 데로 어울려 하나의 요리로 완성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맛을 끄집어낸다. 그렇게 제대로 끓여진 요리를 맛 보게 되면 All for one, One for all 이라는 거창한 표현마저 떠오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설렁탕 같은 글을 쓰고 싶다.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설렁탕 위로 툭툭 뿌리는 소금과 후추, 결이 드러난 고기 몇 점과 불지 말라고 따로 나온 사리까지 소박하고 많지 않은 재료지만 각각의 자리에서 설렁탕을 완성시키기 위한 최선의 재료들이다.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것들만 추려 한 편의 글로 써 내려가고 싶다. 잘 쓰고 싶은 욕심, 멋진 표현을 쓰고 싶은 욕심을 버리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 집중해서 쓰고 싶다. 푹 고아 뽀얀 설렁탕처럼 내 글 역시 사색과 시간, 세월을 담아 하나의 맑은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설렁탕처럼 다른 이들의 마음을 든든하게 해주고 세상을 살아가는 데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설렁탕처럼 글을 쓸 수 있을 때 쯤이면 설렁탕을 베이스로 끓이는 떡국이나 만둣국처럼 기본에 충실하지만 새로운 글에 도전해 보는 것이다. 때로는 마라탕 빨간 국물의 육수가 되어 맵고 뜨거운 글을 써 봐도 좋겠다. 기본에 최선을 다하다보면 오히려 선택지는 다양해지는 것이다.      


 집중해야 할 것에 집중하고, 써야할 것들에 집중하는 글. 욕심도, 지나친 힘도 버리고 푹 삶은 육수마냥 오랜 사색 끝에 나온 글. 더할 나위 없이 담백하지만 어느 문장 하나 빠뜨릴 수 없는 글. -나는 이렇게 글을 쓰고 싶다. 정신없이 한 그릇 뚝딱하게 되는 설렁탕처럼, 그렇게 읽히는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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