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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샘 Oct 18. 2023

복근이 가르쳐 준 것들

요즘 거울 앞에 서는 시간이 늘었다. 티셔츠를 들어올려 배를 살피고 이 곳 저 곳 꾹꾹 눌러보기도 한다.

이유는 단 하나.

근육이 갖고 싶다는 바램,

그것도 초콜릿처럼 선명하게 갈라진 복근을 갖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다.

 

처음부터 근육을 소망한 건 아니었다. 작년 연말즈음 pt를 받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하루를 살더라도 좀비가 아닌 사람같이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올해 휴직을 하며 일상에 생기가 돌자 얼마전부터 매일 하루에 한 시간 씩 운동을 하게 되었고 체지방이 감소하고 근육이 느는 걸 보며 조금씩 욕심이 생기더니 마침내 올해 여름에는 래쉬가드를 입었을 때도 선명한 복근을 갖고 싶다는 야심찬 꿈을 갖게 된 것이다.

 

사실 여기에는 나의 pt선생님도 한 몫 했다. 나보다 10살 많은 그녀는 배가 살짝 갈라지기 시작했다는 말에 내 배를 꾹꾹 눌러보더니 복근이 생겼다며 칭찬해주었다. 내가 슬쩍 나의 야망을 말하자 할 수 있을거라며 화이팅해주었다. 친절하지만 단호한 그녀의 성격을 알기에 영 이루지 못할 목표는 아니구나 싶어, 아니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설렘을 마음 한구석에 품고 운동을 계속 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누구나 알다시피 마음과 몸은 별개다. 머리로는 3대 500을 치고 있는데 현실의 나는 스쿼트 자세가 제대로 안잡혀 통 무게를 늘리지 못했다. 스쿼트를 매일 하고 매일 하는데도 말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나에겐 복근이 있으니까. 크런치는 중량이 필요없으니 그저 복근에 힘을 주고 열심히 하면 될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복근은 그 모습을 영 시원하게 나타내지 않았다. 조명을 킨 화장대 거울 앞에서는 음영덕에 어렴풋하게 쪼개진 복근이 살짝 보이는데 환한 거실에 앉아 있는 가족들 앞에서 복근이랍시고 배를 공개하면 복근은 커녕 볼록 나왔다며 놀림감이 되기 일쑤였다. 또, 그동안 봤던 tv 속 연예인들이나 일반인 바디 프로필에서의 복근은 날씬한 배 위에 쪼개진 복근이 있는 반면 내 배는 살짝 둥글고 아랫배가 조금 나와 있는데 이 위로 복근이 생겼다 사라졌다 했다.

 

점점 더 선명해지기는 커녕 간혹 사라지기도 하는 복근을 보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pt선생님께 여쭈어 보았다.

“선셍님, 제 복근은 왜 이렇게 볼록한가요?”

선생님은 당연한 걸 물어본다는 듯 특유의 단호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회원님, 그건 지방입니다.”

“아, 아니, 저번엔 복근이 생겼다고..”

선생님의 설명은 이랬다. 지방은 제일 겉부분이고 근육은 지방 아래 생기는데 내 배에 근육이 생겼으니 복근이 생긴 것이다. 다만 그 위에 지방이 있는거고. 즉, 지방을 없애야 복근이 밖으로 드러나며 내가 상상한 빨래판 같은 그런 상체가 되는 것이다.

 

“그럼 지방을 없애면 되는 일인가요?”

“회원님이 말하는 몸매를 갖기 위해선 식단조절이 필수이고요, 수분 흡수도 최소한으로 하며 몸을 짜내야 합니다. 티비나 인터넷에서 봤던 사진이나 바디프로필에 속지 마세요.”

 

나는 무지했다. 운동만 열심히 한다면 식단 관리 없이 언젠가는 빨래판 근육을 갖고, 계속 유지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내가 쫓고 있던 꿈의 실체가 사실은 엄청난 식단과 관리가 필수이며 설사 갖더라도 노력하지 않으면 금새 사라져 버린다니. 내가 봤던 울끈이 불끈이들의 복근 또한 그들에게 소유된 게 아니라 잠시 스쳐지나 간 것 이었나.

 

허무해 진 마음에 문득 내가 왜 복근을 꿈꾸며 그것에 연연하였는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았다.

아마 나 또한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과시할 수 있는 명품이나 외제차처럼 내 몸을 멋지게 만들어 다른 이들 앞에 서고 싶었던 것이다. 한 편으론 평범한 남자들도 못한 걸 애 셋 낳은 아줌마가 해냈다는 그런 자부심 또한 꿈꾸었었다.

 

자부심.

나 자신에게 자부심을 가졌던 적이 언제였더라.

나는 주로 시험처럼 결과가 눈으로 보이는 것들에 강한 면모를 가졌다. 수능이든 임용시험이든 수험생 시절 늘 상위권이었다. 하지만 발령 받고 나서 학급 운영이나 수업 기술, 다른 선생님들과의 관계처럼 자로 재단할 수 없고 외우고 암기해야 하는 대상이 아닌 스스로 깨우쳐야 하는 것들에 대해 나 자신에게 항상 낮은 점수를 주곤 했다. 결혼과 출산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도, 집안일을 하는 것도 뭐 하나 잘하는 게 없었다. 학창시절 내내 잘한다는 얘기만 듣고 자라왔던 터라 언젠가부터 많이 괴로웠다. 특히 육아는 시험처럼 내가 밤새고 끈질기게 노력한다고 해서 금방 달라질 종류의 것도 아니었다.

 

최근에야 스스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나는 겸손이 부족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자신에 대해 특별하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 여기는 마음이 가득하였다. 누군가의 도움보다 스스로 해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성취해 낸 만큼 좋은 결과는 모두 내 덕이라 여겼다. 타고나길 참 작은 그릇으로 태어난 나는 여지껏 내 그릇이 그렇게 작은 줄도 모르고 있다가 이 나이 먹고 아등바등 하고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무튼 그렇게 요즘의 나는 잊어버린 자부심과 억지로 갖게 된 겸손과 뭐 그런 기타 등등의 아름답지 못한 것들이 섞여 때로는 우울하기도, 때로는 후회하기도 하며 지내고 있었는데 이러한 것들을 복근으로 보상받고 싶었나 보다.

내 노력으로 만든 복근에서 해냈구나 하고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은 성취감, 난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우월감을 통한 자기만족이 내가 추구하던 복근의 실체였을 것이다.

 

오늘 아침은 평소와 다르게 체육관까지 걸어서 다녀왔다. 늘 차로 다녀서 몰랐는데 내 걸음으론 왕복 1시간 거리였다. 오랜만에 홀로 걷노라니 머리가 맑아져서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복근으로 밖에 뿌듯함을 얻을 수가 없냐고, 아이의 성적으로 너의 점수를 매길 거냐고, 너를 좋아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로 너를 재단할 거냐고.

당연히 모든 답은 No 이다.

나는 그 누구와도 상관없이 나 자체로 살아갈 것이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에겐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고자 노력하겠지만 아내와 엄마의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는 나 자신으로 살아갈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며 내가 살아가고 싶은 방식으로 나아갈 테다.

나이가 들수록 흔들리지 않고서 살아가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실감한다.

바벨을 어깨에 얹고 스쿼트를 시작한 첫 날, 다리가 불쌍하리 만치 부들부들 떨렸다. 매일 연습해도 그렇고 몇 달이 지난 지금도 마지막 세트에서는 다리가 떨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근육이 생긴 건지 확실히 예전보다 수월해지고 자세도 잡히고 있다.

삶도 그럴 것이다.

어깨에 바벨 대신 올라간 엄마로서, 아내로서, 경력자 교사로서의 무게 덕에 지금은 일어나기가 힘들고 자세가 제대로 나오지 않을 지라도 어디에 힘을 주고 빼야 하는지 충분히 인지하고 매일 해나간다면 분명히 점점 더 나아질 것이다. 나는 좋은 책과 매일 글쓰기로 계속 나를 확인하고자 한다. 지금 제대로 힘을 주고 있는지, 힘이 들어가면 안 되는 곳에 억지로 힘을 주고 있는 건 아닌지 제대로 된 방법으로 연습하고 있는건지 말이다. 어느 날은 좋은 인연들과 만남을 갖기도 하고 때로는 바깥 바람을 쐬기도 하며 조금씩 마음의 근육, 삶의 근육을 키워나가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한 나의 삶을 살아갈 방법이다.

그러니, 살아가자. 최선을 다해 나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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