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진욱 Mar 30. 2023

핫카이산 준마이긴조 유키무로 3년

눈 속에서 보낸 시간의 의미

  술을 사들고 가야 할 자리가 있어, 잠실역 보틀벙커를 들렸다. 저녁 메뉴가 참치회이기에 사케가 어울릴 것 같아 사케 코너를 둘러보았다. 닷사이, 쿠보타 등 많이 들어본 이름의 사케 사이에 핫카이산이 보인다. 

  작년에 회사 동료들과 함께 '핫카이산 준마이 다이긴조'를 즐겼던 기억이 있어, 이번엔 좀 더 있어 보이는 '핫카이산 준마이긴조 유키무로 3년'이란 제품을 선택해 봤다.


  1922년 창업한 핫카이산 양조장은 니키타 현 우오누마 지방에 위치해 있다. 

  일본 혼슈 지역 중북부에 자리 잡은 니가타(新潟) 현은 눈과 쌀과 사케가 유명해 3백()의 지역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니가타현을 배경으로 소설 '설국'을 집필했고, 그는 1968년 일본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설국'의 첫 문장은 소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첫 문장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설국이었다.


  실제로 이 지역은 북서쪽엔 바다, 남동쪽엔 에치고 산맥이 위치한 지역 특성 때문에 겨울에 3~4미터 이상 눈이 쌓이는 지역이라고 한다. 쌓였던 눈이 녹아 비옥한 땅으로 흘러내리기에 맛 좋은 쌀이 만들어진다. 좋은 쌀과 물은 곧 좋은 사케로 연결된다. 그래서 이곳은 눈과 쌀과 사케가 유명하다. 실제로 이 지역에 위치한 양조장이 90여 개에 달한다고 한다.

핫카이산

  니가타현의 핫카이산(八海山)에는 핫카이산 양조장이 있다. 핫카이산은 양조장 뒤에 위치한 산 이름이다. 실제로 핫카이산 주조는 겨울에 언 눈이 녹으면서 핫카이산에서 내려오는 하천수인 '라이덴사마(雷電)'를 파이프라인으로 끌어와 술 만드는데 직접 사용하고 있다. 또한 사케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쌀은 야마다니시키(山田錦)와 고햐쿠만고쿠(五百万石)를 사용하고 있다.


  핫카이산 주조는 쿠보타와 함께 니가타 현을 대표하는 양조장이라고 하는데, 아직 한국에서는 쿠보타만큼의 인지도는 없는듯하다. 1922년 문을 연 핫카이산 주조는 제조 과정이 현대화되었지만 누룩과 주모 만드는 과정과 술을 저어주는 과정만큼은 사람이 직접 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품질을 유지하면서도 사케의 가격이 너무 높아져 사람들이 즐기지 못하는 상황을 막고자 하는 핫카이산 주조의 신조가 반영된 것이다. 1922년 이래 3대째 양조장을 운영 중이고, 2019년 3월에는 홋카이도에 위스키 증류소까지 착공했다니, 위스키를 즐기는 나에겐 또 하나의 재미가 생긴 듯하다.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눈을 창고에 넣어 온도를 낮추는 유키무로(설실)가 대설지대인 우오누마(魚沼) 지방에서는 전통적인 보관 방법이 되었다. 유키무로는 일반적으로 두 개의 방으로 나뉘는데, 한쪽 방에는 눈이 쌓여 있고 바로 옆방에는 술 저장탱크가 있다. 핫카이산 주조에서는 겨울에 내린 눈을 1000톤 이상 저장하여 유키무로를 만든다. 유키무로 내에서는 1년 내내 3도 정도의 저온고습 환경이 만들어져 사케를 저장하기에 좋은 공간이 된다. 여기에서 숙성시킨 사케는 주질이 부드러워 마실 때 편안하다고 한다. 이번에 구매한 '핫카이산 준마이긴조 유키무로 3년'이 바로 이 유키무로에서 3년을 숙성한 제품이다.

유키무로


핫카이산 준마이 다이긴조 유키무로 3년

  해석해 보면 핫카이산 주조에서 만든 쌀과 누룩 이외의 다른 것을 첨가하지 않은(준마이), 정미율 60% 이상의(긴조), 설실에서 3년을 숙성시킨(유키무로 3년) 사케이다.

 하얀 눈이 가득한 양조장, 그리고 그 하얀 눈과 함께 3년을 기다린 사케인만큼 병도 일반 사케병과 달리 새하얗다.  

  첫 향은 약간의 배 같은 과실향에 부드러운 누룩향이 난다. 누룩향이 너무 많으면 거북하지만 아주 기분 좋은 향이다. 입안에 머금을 때의 쌀의 단맛과 미네랄 느낌이 들고, 목으로 넘어갈 때 언제 넘어갔는지 모르게 부드럽고 약간의 유질감도 느껴진다.


  참치와 함께 페어링을 하려고 가져왔지만, 술 자체로 훌륭해서 계속 니트로 들이키다 참치를 많이 못 먹었다. 빨간색의 회보다는 하얀 살을 가진 회랑 잘 어울릴 것 같은 정말 깔끔하고 훌륭한 사케라는 느낌이다. 다음에는 고노와다를 곁들인 광어회와 함께 마셔보면 어떨까 싶다.

  향이 훌륭해서 따뜻하게나 차갑게 모두 가능할 것 같지만, 아무래도 3년을 차가운 눈과 함께 있었던 만큼 기왕이면 차갑게 칠링해서 마시는 게 좋을 것 같다.




◦ 일본술

◦ 상품명 : 핫카이산 유키모로쵸조우 준마이긴죠

◦ 재료 : 야마다니시키 (누룩), 유키노정 (掛米), 오백만석 (掛米)

◦ 일본 주도 : -1.0

◦ 산도 : 1.5

◦ 아미노산도 : 1.3

◦ 정미 비율 : 50%

◦ 알코올 도수 : 17도

◦ 용량 : 720ml

◦ 공급자 : 핫카이산(니가타 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위스키는 처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