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진욱 Apr 27. 2023

에드워드 호퍼 전시를 다녀와서

역설이 만들어내는 목격자의 특권에 대해

  2022년 말부터 기다려왔던 에드워드 호퍼 전시가 어느새 시작했다. 시간 참 빠르다, 그새 한 살 더 먹다니, 무릎이 아픈 것 같다.


  얼리버드로 빠르게 예약한 S 덕에 오픈 바로 다음 날 볼 수 있는 행운도 누렸다. 아마 게으른 나는 혼자 보려 했으면 아직도 못 보고 있겠지. 뉴욕 휘트니 미술관과 함께한 이번 전시에는 약 270여 점이 찾아왔고, 서울시립미술관 서수문관 본관에서 2023.4.20 ~ 8.20까지 진행된다.


  전시를 보고 나오면서 들었던 생각은 그동안 호퍼를 너무 가볍게 알고 있었구나라는 것이다. 어두운 색채, 기계화된 물건의 등장, 인적이 끊긴 곳에 내던져진 인물, 정적, 우울한 분위기가 호퍼 작품에 대해 보통 나누는 이야기들이고, 나 역시 그 정도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많은 다른 면모들을 볼 수 있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있다면, 그림을 그릴 필요 없다."


  호퍼의 그림은 무척 낯익은 듯한 느낌을 주는 장면들이지만, 볼수록 낯설고 생소하게 느껴진다. 기시감과 미시감을 동시에, 익숙하지만 소원한, 그림에 빠져들게 하지만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역설적인 느낌을 준다. 그렇게 호퍼가 만들어둔 연출 덕에 그 앞에 선 우리는 특별히 허락된 목격자가 된다.


  호퍼는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이유에 대해  "말로 다 표현할 수 있다면, 그림을 그릴 필요 없다."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호퍼의 그림을 보는 이들은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좋아하고, 다른 그림에 비해 어렵지 않다고도 하지만, 막상 말로 설명하려면 걸맞은 표현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미묘하게 일반적이지 않은 구도, 따뜻한 색으로 분류되는 색을 쓰더라도 우울한 분위기, 사실주의라고 말할 만큼 사실적인 그림으로 보이지만 가려져 있는 디테일 등 때문에 막상 표현하려 하면 혼란스럽다.


  누군가는 호퍼의 그림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누군가는 고독을, 누군가는 우울함, 무서움을 느끼기도 한다. 많은 평들은 호퍼의 그림에서 고독을 읽지만 막상 호퍼 자신은 "고독을 그려내고 싶은 마음으로 그리지 않았다.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은 나 자신이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사람은 누구나 계속 변화하고 매 순간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을 테니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을 보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한마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을 표현할 때 아주 좋은 방법이 있다. 롤랑바르트가 사랑에 대해 표현하기 위해 '사랑의 단상'에서 썼던 방법인, 바로 파편들을 나열해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전시된 작품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호퍼에 대한 사실들을 몇 가지 정리해 보았다. 이것들이 모여 호퍼를 이룬다고 생각해 본다.

 


호퍼에 대한 파편들

 시작부터 일러스터에 관련이 있었다

  호퍼는 어렸을 적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다. 첫 유화는 13살 때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래 그림은 아마추어 화가를 위한 잡지의 그림을 모방한 것이다. 여기에서 이미 그의 재능이 엿보이기 시작한다.


잡지의 그림(좌), 호퍼의 유화(우)


  하지만 호퍼의 장래를 걱정한 부모는 호퍼를 순수 예술이 아닌 상업 미술을 추천했고, 호퍼는 17살에 우편 일러스트 통신학교에 입학한다. 1년 뒤 기계적인 작업에 견디지 못하고 뉴욕예술디자인 학교로 떠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미술로 전공을 바꾸기는 하지만, 일러스트 느낌의 그림은 여기서 영향이 시작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곳에서 윌리엄 메릿 체이서와 로버트 헨리를 스승으로 삼는다.

  이후 생활고 때문에 상업화가로서 활동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에는 일러스트 느낌의 그림들이 다수 있는 것은 배움의 시작이 일러스트였음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한다.


At the Café, 1906~07(좌), Standing Smoker, 1917~20(우)



생활을 위해 상업화가로 일했다

  1905년 광고회사의 파트 타이머로 취업한다. 이후 1920년대 중반까지 생활고로 인해 일러스트를 계속 그렸다. 하지만 그는 이 작업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파리를 여행 다니며 순수 예술을 하고자 했으나, 결국은 먹고살아야 했고 계속해서 잡지, 포스터 등 작업을 한다.


  아래 작품은 독일군을 부숴버리자라는 문구의 작품으로 1919년 The Morse Dry Dock Dial 2월호 표지호에 실렸고 미국 선박협회로 부터 상을 받는다.

Smash the Hun, 1918



파리 여행을 다니며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

  일러스트 작업을 하면서도 파리로 3번의 여행을 다니며 자신만의 작품을 그려보고자 한다. 그는 파리와 인상파를 사랑했지만 그들처럼 그리지는 않았다고 평을 받는다. 하지만 호퍼 자신은 세상을 끝나기 전까지도 자신이 인상파 화가라고 말을 한다. 이렇게 세간의 평과 호퍼의 말이 어긋나는 경우가 꽤 많은 것도 재밌는 요소이다.



푸른 저녁(Soir Bleu), 1914

  도대체 어떤 장면일까? 피에로는 갑자기 무엇일까? 연극이 끝나고 식사일까? 그렇다고 하기에 왼쪽 노동자 같은 이와 오른쪽 부르주아 같은 이의 대비는 무엇이란 말인가.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Notre Dame de Paris), 1907


  후기 작과 비교했을 때 붓터치가 그대로 보이는 등의 과도기적인 그림의 느낌이 있다.




에드가 드가의 영향을 받았다

  여러 번의 파리 여행에서 그는 에드가 드가의 작품을 보고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1924년 아내 조세핀이 호퍼에게 드가의 작품을 선물하기도 한다. 바라보는 이의 익명성, 화면 중심주의의 구도에서 벗어나는 구도 선정 등이 드가의 특징인데, 이런 부분들은 호퍼에게서도 나타난다.

  하지만 호퍼 자신은 드가에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이렇게 호퍼의 말과 세간의 평이 갈리는 경우가 많은 것 보면 어쩌면 호퍼는 호퍼 자신을 모르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뉴욕 실내(New York Interior), 1921

이 작품은 특히 드가의 발레리나 시리즈를 생각하게 한다. 과연 뒤쪽 모자는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에칭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갔다.

 이번 전시에는 많은 에칭 작품이 전시되었다. 호퍼의 유화만 생각하고 갔던 나에게는 가장 의외였고 마음에 드는 작품들이 바로 에칭이었다.

  호퍼는 생계 문제의 답을 찾지 못하자 에칭으로 방향을 전환한다.  그는 친구 마틴 루이스에게 에칭 기술을 배우는데 루이스의 작품을 보면 호퍼의 작품과 비슷한 모습들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에칭은 단순히 먹고살기 위한 작업뿐만이 아니었다. 호퍼는 자신에게 영향을 준 유일한 작가를 프랑스 에칭 작가인 샤를르 메이롱(Charles Meryon)라고 말하기도 했다. "에칭을 시작한 뒤부터 내 그림은 구체화되어 가는 듯했다."라고 할 정도로 에칭은 그의 작품 세계의 길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리고 1923년부터 시카고 에칭 협회에게 상을 받으며 에칭 화가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많은 에칭 작품들이 찾아왔는데, 아래 밤의 그림자(Night Shadows)는 이후 1940년대 갱스터 영화에서 차용되는 이미지로  익숙했다.

밤의 그림자(Night Shadows), 1921, Whitney Museum

  호퍼의 많은 그림에서 우린 이야기를 찾게 된다. 하지만 그 순간은  짧고 고립된 순간이다. 실제의 삶을 그린 것이 아닌, 삶의 전과 후의 시간을 그린 빈 공간이다.



수채화로 출구를 찾다

  1923년 호퍼와 글로스터에 머물 때 조세핀은 그에게 수채화를 권유한다. 이후 그는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하는데, 유화 작품들과는 달리 따뜻한 색감이 엿보인다.

 호퍼가 일러스트를 그만둔 것은 유화 때문이 아닌 수채화 때문이었다. 1923년 브루클린 미술관에 6점의 수채화 작품이 전시되는데 그중 한 점이 $100에 판매가 된다. 이때 호퍼는 일러스트를 그만두기로 마음먹는다.


the mansard roof, 1923(좌), Jo Sketching at Good Harbor Beach, 1923~24(우)




그는 모델이나 풍경, 대상을 바로 보면서 그리지 않는다.

  호퍼는 대상을 보면서 그리는 것은 오히려 대상에 빠져들어 자신만의 생각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서인지 언제나 습작이나 스케치 이후 자신의 작업실에서 적당한 연출과 함께 그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예를 들어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Nighthawks 역시 많은 습작 이후 제작된 작품이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을 위한 습작(Study for Nighthawks), 1941 or 1942


 이번 전시의 포스터에 등장한 작품인 철길의 석양(Railroad Sunset) 역시 습작과 함께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스케치 이후 해당 색깔까지 적어두어 이후 작업에 참고하려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렇게 스케치와 함께 정보들이 적혀있는 습작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어, 그가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철길의 석양(Railroad Sunset), 1929

  이번 전시의 메인 포스터, 간판에 사용된 작품이다. 전시장에도 한편에 독립으로 진열되어 있었는데, 눈길을 끌었다. 우선 다양한 색의 사용으로 눈에 들어왔지만 이상하게 따뜻한 색들이 들어가 있음에도 고독함이 보인다.

  그래서일까 함께 본 친구는 '교도소'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알고 보니 호퍼가 조세핀이 뉴 멕시코 여행을 가며 보던 석양이 모티브라고 한다.

  이 작품에 대한 습작은 아래이다. 그는 이렇게 습작을 그리고 색깔등의 정보를 습작에 적어둔 후, 적당한 연출을 섞어 그만의 그림으로 연습실에서 완성한다.

철길의 석양을 위한 습작(Study for Railroad Sunset), 1929



Morning Sun, 1952, Columbus Museum of Art
Study for Morning Sun, 1952




에드워드 호퍼와 휘트니 미술관

  호퍼의 첫 개인전은 1920년 1월 거트루드  반더빌트 휘트니가 운영하는 '휘트니 스튜디오'에서 열렸다. 그의 나이 37세였다. 이 '휘트니 스튜디오'는 훗날 '휘트니 미술관'의 토대로 현재 휘트니 미술관이 호퍼의 그림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호퍼는 상당한 보수주의자였다.

  엄격한 침례교 가풍을 물려받은 호퍼는 밀려드는 이민자를 향해 적개심을 드러내고, 공화당을 열정적으로 지지하는 보수파였다. 또한 당연히 가부장적이었다.

  그의 아내 조세핀이 호퍼와 결혼 후 화가로서의 경력이 이어지지 않은 것은 여기에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다. 또한 조세핀에게 운전은 시키면서 주차는 절대 못하게 하며 아내의 양쪽 다리를 잡아 끌어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조세핀도 보통 사람은 아니라 호퍼를 꼬집고 때리며 대립했다)



호퍼와 조세핀

  호퍼는 42세, 조세핀은 41세에 결혼을 했다고 한다.  뭔가 안심이 되는 기분은 뭘까? 하지만 그래도 나보다 빨리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현실도피를 해본다.

  호퍼는 여행에서 몇 번 마주치던 조세핀 니비슨과 가까워졌고, 1924년 결혼한다. 조세핀은 1902년 호퍼가 가르침을 받았던 헨리의 제자로 조세핀과 호퍼는 동창 관계이다.

  특히 조세핀은 뉴잉글랜드 지역의 풍경화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유화보다 수채화를 즐겼다. 1923년 호퍼와 글로스터에 머물 때 호퍼에게 수채화를 권유하기도 했다. 호퍼가 뉴잉글랜드 풍경을 남긴 것, 많은 수채화 작품을 남긴 것은 그녀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뉴잉글랜드 지역의 집을 그린 작품들 제목이 "탈봇의 집", "에봇의 집" 같이 집주인의 이름이 붙은 것은 사교성이 좋은 조세핀 덕분에 집주인들과도 아는 사이가 되어서라고 한다. MBTI로 하자면 호퍼는 완전한 I, 조는 완전한 E가 아닐까?

  

Talbot's House, 1926

  호퍼는 Grass Hopper(메뚜기)라는 변명을 얻을 만큼 키카 190cm가 넘는 반면, 조세핀은 겨우 150cm였다. 호퍼는 내성적이며 말이 없는 편이었던 반면 조세핀은 왈가닥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외향적이며 말이 많았다. 호퍼는 매우 보수적이었으나 조세핀은 매우 자유분방했다.

  많은 다른 부분들 때문에 둘은 엄청나게 싸웠다고 한다. 호퍼가 자신보다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여겨 싸우기도 했다니 둘은 계속해서 싸웠던 것 같다.



Jo Hopper Reading, 1935–1940

  아마 그 고양이가 저 샴고양이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다툼이 있으면 화해도 있고, 서로에 대한 다양한 시선도 있게 된다. 그렇기에 모델로서의 조세핀을 바라보는 호퍼, 그리고 작품을 완성시키는 호퍼를 바라보는 조세핀의 서로에 대한 존경이 그림에서 드리나지 않나 싶다.

  물론 호퍼의 그림에 달려있는 조세핀의 코멘트에는 조용한 남자 호퍼에 대한 심술이 좀 드러나는 것도 같다.


이층에 내리는 햇빛(Second Story Sunlight), 1960

  호퍼부부는 매년 케이프 코트로 여행 와서 가을까지 지내며 작업하고 겨울이 되면 뉴욕으로 돌아갔다는데, 이층에 내리는 햇빛은 그때 그려진 그림이다. 베란다라는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 다른 생각에 빠진듯한 두 사람은 나무와 하늘빛으로 안정된 분위기를 깨놓는다. 호퍼는 그렇게 관객이 서서 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준다. 

  이 그림에 대한 조세핀의 메모가 재밌었다. 여자분을 '눈치는 빠르지만 조용한'이라고 표현했는데, 뭔지 모를 호퍼에 대한 불만이 드러나는 것도 같다.



잘 살다 갑니다.

  이번 전시에는 찾아오지 않았지만, 호퍼의 마지막 그림이기에 의미가 있어 추가해 본다.

Two Comedians, 1965, private collection

  이 작품은 에드워드 호퍼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는 1967년 5월 15일 세상을 떠나는데, 이 그림이 그의 마지막이라는 것은 꽤 인상 깊다. 작품 속 두 코미디언은 호퍼와 그의 아네 조이다. 그들이 손을 꼭 붙잡고 관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듯한 장면은 마치 그들의 인생이 즐거웠고, 그에 대한 인사를 관객, 즉 세상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 같다.

  "그동안 즐겁게 저희를 보셨습니까? 저희도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그렇게 조세핀은 호퍼가 세상을 뜨고 나서 10개월 후 그를 따라 세상을 떠난다.


  "두 등장인물이 어두운 무대에 서 있는 그림을 그렸어요. 우리는 당신처럼 아름다운 사람들이 잘 있길 바랍니다. 최근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죽음들이 지금 살아있음을 소중하게 느끼게 합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정말 한없이 귀하다는 것을요. 오늘 살아 있음을 정말 좋아요. 삶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 Two Comedians가 완성된 후 조가 휘트니 미술관 큐레이터에게 보낸 편지에서




주요 작품들


  이번 전시에 찾아온 작품들 중 인상 깊어서 기억에 남는 작품들을 찾아보았다. 당연히 말로 표현이 힘들기에 이상한 코멘트들을 조금 덧붙였다.


Early Sunday Morning(일요일 아침), 1930, Whitney Museum

  일요일 이른 아침은 어떤 시간일까. 보통 같으면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많은 차량이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쉬고 있는 일요일 아침은 그러한 일상이 제거되는 시간이다. 그렇기에 세상의 이면, 아니 어쩌면 그 거리의 본질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다. 호퍼는 이 그림에 창문 내부의 색을 어둡게 표현하면서 갑자기 설명할 수 없는 깊이감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보는 이는 익숙한 듯한 거리의 모습에서 갑자기 전혀 알 수 없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자화상(Self-Portrait), 1903–1906
자화상(Self-Portrait), 1930

  그의 자화상이 몇 개 전시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의 젊은 시절 모습과 그의 나이가 50세에 가까워진 이 작품이다. 동행했던 친구나 나나 젊었을 때의 화가 가득한 모습과 여유가 생긴 모습의 1930년 작품을 함께 보며 "역시 사람은 자금적 여유가 생겨야 얼굴이 풀리는구나."라고 소곤거렸다.

  호퍼는 젊은 시절 큰 키에 마른 외모를 지녀 자신에게 자신감이 없었다고 하는데, 그런 모습들이 가미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waks), 1942,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이번 전시에는 오지 않았으나 이를 위한 습작에 관련된 스케치가 포함되었기에 넣어봤다. 에드워드 호퍼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아닐까 싶은데, 이 작품은 완성 후 한 달도 안돼서 시카고 미술관에서 $3,000에 구매를 해간다.

  출입구가 보이지 않아 관객들과 그림 속 등장인물이 분리되는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관객은 동시에 그림에서 보이지 않는 골목길에서 무엇인가 나올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작품 속 이야기가 궁금하지만 작품에 완전히 빠져들지 않게 하는 호퍼의 기술이다. 또한 모든 이들의 시선이 따로 논다는 점, 새로운 기계 문명인 커피 머신, 혼자 등을 돌리고 있는 남자 등이 그 시대 미국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다.

  너무도 미국 문명을 잘 표현해 주는 작품들 이기에 많은 패러디 역시 만들어졌던 작품이다.






밤의 창문(Night Windows), 1928

 호퍼의 빛은 다른 화가들의 작품이 공기를 채우고 있는 것과 달리 벽이나 물건에 달라붙어 있는 느낌을 준다. 호퍼는 조심스럽게 벽이나 물건에서 잉태되는 빛을 고르고 고른 색조로 표현한다. 이 그림에서의 빛 역시 빛을 발하는 느낌보다는 벽에 달라붙어 있는 느낌이다. 

 밖에서 바라보는 관음증적인 시점은 호퍼가 많이 사용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호퍼의 별명 중 하나가 '관음증의 화가'라고도 한다. 이런 이미지는 히치콕이 많이 참조했다고 하는데, 한국의 봉준호  감독의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도시 지붕(City Roofs), 1932

  정확히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자꾸 신경 쓰이고 예뻐서 결국 문진까지 사온 <도시 지붕>이란 작품이다. 그는 뉴욕의 마천루보단 이런 일반적인 건물의 옥상을 그렸다고 한다. 여기서도 역시 빛이 비치지 않는 부분과 빛이 비치는 부분이 빛이 발하는 방향을 보게 만들기보다는 그 벽면 자체를 바라보게 만든다. 그것은 그가 그림을 기록과 기억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호퍼의 그림은 즉흥적이라기보다는 조심스럽고 꼼꼼하게 계획한다. 그렇게 빛은 흩어지지 않고 견고함을 갖추어 생명을 지닌다.



작은 배들, 오컨킷(The Dories, Ogunquit), 1914

  호퍼도 여행을 갔을 때는 이렇게 경쾌한 색을 쓰는 걸까 싶었다. 아직은 우울해지지 않았을 호퍼였을까? 아니면 여행을 왔기에 갑자기 밝아진 것일까? 



황혼의 집(House At Dusk),1935

  황혼의 시간, 낮과 저녁의 경계선의 시간, 밝지만 시야가 흐려지는 시간이다. 차가운 느낌이 드는 색들 속에서 집 안의 빛이 역설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Seven A.M., 1948

  시계는 7시를 가리키고 있다. 무엇을 파는 집인지 모르겠는데, 설명을 보면 '밀주' 판매점이라고 되어 있다. 그림의 주제는 건물과 건물 내부인 것 같으나 굳게 닫힌 문과 기둥은 보는 이에게 뒤쪽 숲으로 들어가라고 말하는 듯하다.




통로의 두 사람(Two on the Aisle), 1927

  개인전에서 팔린 이 작품은 그 당시까지 호퍼의 판매 최고가인 $1,900에 판매된다. 이 돈으로 그는 자동차를 구매하고, 조와 여행을 다니며 작품들을 남긴다. 

  청렴을 강조하는 가풍에 따라 낭비를 하지 않던 호퍼는 유일하게 책과 연극 관람에는 돈을 썼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극장을 그린 작품들이 많다.



Apartment Houses, East River, 1930

  파크하리오가 연상되는 이 작품, 호퍼의 작품은 파란색 계열을 잘 썼다는 생각이 든다. 파란색이 주는 어떤 우울함. 그런데 뒤쪽에는 전혀 다른 빨간색 건물도 보인다. 하지만 그래서 더 고독한 느낌.



햇빛 속의 여인(A Woman in the Sun), 1961

  조세핀을 그린 그림들이 꽤 많이 왔다. 그의 거의 유일한 모델이 조세핀이다 보니 당연한 것일까. 이 그림의 재밌는 것은 조세핀이 나이가 들었을 때 그린 그림임에도 화폭 속 여자는 젊어 보인다는 것이다. 호퍼는 조세핀을 단순한 모델로만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녀의 젊은 시절을 다시 살려보고 싶었던 것일까?

아침 햇살(Morning Sun), 1952(좌) | 케이프 코드의 아침(Cape Cod Morning), 1950

  이러한 구도의 작품들이 몇 개 더 있다. 공통적으로 여성은 창문 밖 무언가를 응시한다. 빛이 여성의 몸에 닿고 여성의 몸은 그 빛으로 조각된 것 같다. 호퍼의 빛이 사물에 닿았을 때는 사물 자체에서 잉태되는 빛으로 견고한 생명력을 지닌 빛이라면, 인물에게 닿는 빛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다. 그 메시지를 이 여성들은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우린 그 진원지가 무엇인지 알 수 없고 단지 여성의 몸짓만을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마무리하며

  전시를 보고, 그에 대해 조사를 하고 나서 드는 생각은 호퍼에 대한 기존의 평들이 너무나 한정적이라는 것이었다. 보통 호퍼를 미국적 사실주의라고 말하는데, 이에 대해 불만이 생긴다. 이는 호퍼를 설명하는 동시에 그를 제한하는 표현이다.

  그가 만들려고 했던 세상을 세간의 평이 아닌 그가 만들어준 목격자의 자리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젊은 남자 - 아니 에르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