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 시 알아둬야 할 동서양 문화 차이 <실전 편>

#5 이혼을 원하는 독일 남자의 심리

by 뿌리와 날개
한 인간의 본질을 제대로 탐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나는 이러한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을 마치고, 학술적 논문을 쓰는 것이 아니라 동서양의 문화 차이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도 최대한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조건과 기준을 적용해 나름의 분석을 할 뿐이다. 수만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고, 인간이 이분법 논리에 의해 이것 또는 저것으로 나뉠 수 없는 복잡한 존재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그렇게 방대해지면 비교 자체가 아예 불가능하기에 이분법의 틀을 사용하는 것이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집단주의적인 문화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이런 말을 듣기 쉽다.


- 친구들과 사이좋게 놀아라

- 부모님 말씀 잘 들어라

- 어른들께 공손해라

- 동생 잘 챙겨라/ 언니 오빠 말 잘 들어라

- 모나게 굴지 마라

- 잘난 척하지 마라

- 고자질하지 마라

- 겸손해라

- 하기 싫어도 열심히 해라

- 결석하지 않는 것은 성실한 일이다

- 먹기 싫어도 골고루 먹어라

- 따박따박 말대답하지 마라



이런 말들은 개인의 특성이나 행복보다 개인이 속한 집단에서의 역할에 순응하고 집단 속에서 조화롭게 지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교육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세상을 통해 내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의식하는 상호 의존적 자아상을 발달시키게 된다.




그 극명한 예로 “자기만족과 행복에 대한 정의”가 있다.



소위 말해 쥐뿔도 없는 사람이 “나 정도면 잘났지. 난 행복해.”라고 하면 상호 의존적 자아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사는 한국 사회에서는 이 꼴이 우습게 받아들여진다. 변변하게 내세울 것도 없는 주제에 뭐가 잘났다고 나서나, 부족한 걸 알고 채울 생각을 해야지, 지가 잘났다고 떠드는 게 잘난 건가? 남들이 잘났다고 인정해주는 게 진짜 잘난 거지. 저렇게 살면서 행복하다는 게 자기 위안밖에 더 되나. 저런 생각을 하니 발전 없이 저렇게 밖에 못 살지….



당신이 아무리 편견 없는 사람이고, 조건보다 사람 됨됨이를 먼저 보려 노력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4년제 대학을 나와 전문직에 종사하며 자기 소유의 작은 아파트를 갖고 있는 착하고 예쁜 당신의 딸이, 당신의 동생이나 언니 또는 누나가, 당신의 가장 친한 친구가 그 모든 조건에 반대되는데 위와 같은 마인드를 가진 남자를 데려와 결혼하겠다고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반대로, 개인주의적인 문화에서 아이들이 자주 듣는 말은 이런 것들이다.


- 마음에 맞는 친구를 찾아 놀아라

- 하고 싶은 대로 하되 네가 한 행동에 책임을 져라

-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는 눈을 맞춰라

- 의사를 정확하게 표시해라

- 하지 않은 것은 하지 않았다고 해라

- 네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안 들면 사과할 필요 없다

- 사과하기 싫으면 당장 안 해도 된다

- 당당해라

- 컨디션이 안 좋으면 학교는 하루 쉬어라

- 네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해라

- 먹기 싫으면 먹지 마라

- 스스로를 사랑해라



이런 말들을 통해 서구의 아이들은 조직이나 집단에서의 조화보다 한 개인으로서 자신이 가진 개성을 인정받고 자신의 욕구와 의사를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도록 자란다. 고유성과 자주성을 가치 있게 여기는 독립적 자아상에 초점이 맞춰진 교육인 것이다.



이렇게 독립적 자아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사는 사회에서는, “나 정도면 잘났지. 난 행복해.”라는 사람을 볼 때 크게 불편함이 없다. 인간의 가치는 외형적인 조건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므로, 본인이 어떤 조건을 가진 사람이건 진심으로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건강하고 자존감 높은 것이다.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은 뭔가 내적으로 결핍이 있는 것이며, 행복은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외부에서 찾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닌 나의 내적인 마음 상태이다.








자, 이제 이런 문화적 배경에서 나고 자란, 독립적 자아상을 가진 독일인 남자와 상호 의존적 자아상을 가진 한국인 여자가 만났다고 치자.



당신이 외국인 남자와 결혼을 결심했다면, 그는 흑인이나 동남아시아 계열보다 같은 동아시아나 영어권 또는 유럽인일 확률이, 이혼가정보다 양친 있는 가정에서 자랐을 확률이, 무학이나 고졸자보다 대(학원) 졸업자일 확률이, 저소득자보다 고소득자일 확률이, 키가 작고 못생기기보다 키가 크고 잘생겼을 확률이 높다.



우리는 흔히 외국인 남편과 낭만적으로 사랑에 빠졌다고 하지만, 사실 자라오면서 수십 년간 체득해온 사회적인 기준이 내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내가 잘 모르는 나라, 문화, 언어를 가진 남자를 관련 데이터 없이 판단해야 한다. 내가 이 남자랑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게 됐을 때 이것이 한국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치며 어떤 대접을 받게 될지 그 “안전성”의 여부를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그리고 배우자의 그런 조건들을 체크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사회적 정서에 비춰볼 때 아무 남자나 만나 함부로 가정을 꾸리는 것보다 책임감 있는 행동이기도 하다. 결혼두 사람의 약속일뿐만 아니라 양가의 결합이며 당신과 당신 자녀들의 사회적인 안전망이기도 하다. 이혼을 하게 되면 아이들은 이혼가정의 혼혈아, 본인은 이혼녀라는 딱지가 붙는 사회적인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데, 신중한 것은 당연하다.



당신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사회적으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스스로를 발전시키며 살아왔을수록 그 잣대는 더 강력할 것이다. (실제로 오래 사귄 동남아시아인 남자 친구를 한국의 가족들에게 소개하려고 했더니 아빠는 화가 나서 만나주지도 않았고, 친척들은 그 남자가 동남아 왕자나 재벌이라도 되냐며 비아냥 거렸다는 사례가 있다.)



그렇게 고른 독일인 남편과 문제가 있다고 치자. 그래도 당신은 그 남자가 아이들의 아빠이고, 돈을 잘 벌어오는 한, 심지어 좀 못 벌어오더라도 심각한 문제만 없으면 웬만해서는 함께 살고 싶을 것이다. 독일에 산다고 다를 바 없다. 누가 누군지 다 아는 코딱지만 한 한인 커뮤니티에서 독일 남자랑 이혼한 어떤 한국 여자가 애 데리고 혼자 산다는 말의 주인공이 되어 오르락내리락거릴 일이 어찌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랑이고 나발이고, 어지간하면 참고 넘기며 조용히 살고 싶다. 살다 보면 좋을 때도, 싫을 때도 있는 것 아닌가. 서로 맞춰가며 그렇게 사는 거지. 이 나이에 애들 데리고 헤어지면 뭘 먹고살며, 애도 둘, 셋 낳아 몸매도 예전 같지 않은데 어디 가서 이 나이에 또 괜찮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부부 사이에 섹스가 사라진 지 오래이지만, 그것이 그렇게 큰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뜨거운 열정이 없을 뿐 서로 미워 죽겠는 것도 아닌데… 나이 먹을수록 부부관계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오히려 나는 자기 때문에 다 포기하고 독일로 넘어와 친정도 없이 이렇게 애들 키우느라 고생인데, 남편은 자기 친구들이랑 놀러 갈 생각이나 하고,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자기 취미생활은 즐겨야겠다니, 그러면서 꼬박꼬박 섹스까지 하자고 하는 게 어이가 없다.



무엇보다 나는 그렇다 쳐도, 한국에 살면 한국에 사는 대로 편모 밑의 혼혈아라는 말, 독일에 살면 독일에 사는 대로 동양 엄마가 아빠 없이 혼자 키우는 애 취급받을 게 두렵고 슬프고 막막하다. 남편과의 사이가 예전 같지 않은 것은 불만이지만, 그것 때문에 이혼을 해야 할 만큼 이게 큰 문제일까?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자신은 더더욱 없다. 이혼 뒤의 삶은 생각만 해도 가혹하다.








독일인 남자가 당신과 결혼을 결심했다면, 당신의 외모는 그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개인적인 미적 취향에 들어맞을 확률이 높다. 그의 미적 취향은 통념이나 객관적 미의 지표에 따른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본인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므로 당신의 외모에 그의 친구들이 모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에게 당신은 매우 아름다운 여성이다.



그가 당신을 고른 이유는, 당신과 함께하면 그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동안 만나왔던 여자들과 달리 삶의 가치관도 잘 맞는 것 같고, 무엇보다 함께 있을 때 마음이 편안하고 즐겁다. 성적 취향과 섹스도 물론 매우 잘 맞는다.



아내가 부지런하고 열심히 사는 모습은 동양인 특유의 근면함이라고 이해한다. 좀 의존적인 면이 피곤한 것도 사실이지만, 대신 독일 여자들과 다른 여성스러운 매력이 있어, 귀엽고 다루기 편한 점도 있다. 무엇보다 독일 여자들과 다르게 남자를 존중할 줄 알고, 가족을 위해 정성 들여 요리하는 등의 모습이 마음에 든다.



지금은 직장에 다니지 않지만, 한국에서 대학까지 나오고 (또는 직장생활도 해본 여자라고 하니), 독일어도 배우고 친구도 사귀고 하면 스스로 운전도 하고, 직장도 다니고 하며 곧 독립적인 성인의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한다, 다른 보통의 독일 여자들처럼.



그런데 살다 보니 아닌 것 같다. 잘 맞는 줄 알았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아내와 행복하지가 않다. 내가 이렇게 기분이 별로이면 한 번쯤 등이라도 쓰다듬으며 “당신, 요새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는데 괜찮아?”라고 나에게 다정하게 물어봐줄 법도 한데 아내는 아이들 챙기느라 정신이 없다.



독일 여자들과 다르게 잔소리와 간섭도 심하다. 내가 친구랑 축구 보며 맥주 한잔 하고 싶어도, 친구들과 여행을 가고 싶어도 안된다고 한다. 결혼했으니 가정에 충실하라는데 내가 가족을 사랑하는 것과 내 친구들과의 시간을 즐기는 게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



나는 지금 사는 모습에 만족하는데 아내는 자꾸 돈을 절약하자고 하고, 마당이 딸린 더 큰 집으로 이사 가기를 원하고, 더 좋은 직장으로 옮기기를 바란다. 공동 생활비가 아닌 내 개인적인 돈까지 관심을 갖고 어디에 쓰는지 알려하고, 모든 것을 나누려고 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 그렇게 돈이 필요하다면 본인이 일을 했으면 좋겠다.



처음에는 독일 여자보다 다정하고 부드러운 여자인 줄 알았는데 살아보니 독일 여자들보다 정서적 감수성도 낮고, 걸핏하면 막말에 상처도 잘 준다. 아내와의 섹스도 더 이상 즐겁지 않다. 2주가 넘도록 안 했는데도 이 여자는 뭐가 문제인 줄도 모른다.



점점 자유는 사라지고, 제약은 많아지는데 이 여자랑 말도 안 통한다. 합리적인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데 이 여자는 늘 감정이 우선이고, 본인과 다른 내 의견을 제시하면 상처를 받는다고 한다. 이해하기 어렵다.



집에 돌아와도 냉랭한 아내 때문에 냉기가 감도는데 이럴 바에야 양육비를 주더라도 내가 번 돈 내가 쓰며 자유롭게 혼자 사는 게 낫겠다. 밖에 나가면 여자들이 늘 추파를 던지고 나는 아직도 살 날이 창창하다. 그런데 나를 불행하는 만드는 이런 여자 때문에 섹스도 못하고, 이렇게 사랑도 없이 살 이유가 없다. 내 인생은 소중하다.



아이들에게도 이렇게 매일 같이 싸우는 부모 (또는 사랑 없이 냉랭한 부모) 밑에서 크는 것보다 헤어지고 화목한 양쪽 집을 왔다 갔다 하는 게 정서적으로 훨씬 안정적이다. 아내는 나한테 양육비도 받을 거고, 직장도 곧 다니면 되고, 싱글맘이라 어차피 정부로부터 받는 혜택도 많을 테니 큰 걱정은 없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불행한 것처럼 아내도 마찬가지일 테니 헤어지는 게 그녀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다른 독일 여자들처럼 아내도 나랑 헤어지면 금방 다른 남자를 만날 것이다. 일찍 헤어질수록 아내 몫으로 나눠줘야 할 연금도 줄어든다. 이혼 뒤의 삶의 벌써부터 기대된다.






어떤 느낌이 드는가. 이것이 다는 아니겠지만, 포인트가 될 만한 것들은 다 들어있다. 가족과 우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인 아내는 남편과의 사이가 좀 소원해져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부부란 어차피 그런 것 아닌가. 어떻게 매일 같이 눈에서 꿀이 떨어지며 살겠나. “결혼”이라는 정식 제도로 묶여 있는 우리는 연인관계나 동거 중인 다른 커플보다 월등히 단단하므로 하루 이틀 곰살맞게 굴지 않았다고 깨질 그런 수준의 관계가 아니다.



하지만 독일인 남편에게는 사소하더라도 매일같이 애정표현을 하며 두 사람의 관계를 보살피는 게 중요하다. 이들에게 부부는 “너와 나”의 사랑이 가장 기본이다. 그래서 자식도, 결혼제도도 사랑 없는 결혼생활을 지속해야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정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두 사람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것은 지속정인 애정의 표현과 관심이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남녀 불문하고 상대방의 애정표현과 관심이 사라지면 헤어질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독일 여자 같았으면 벌써 다른 남자를 찾아 떠나고도 남았을 푸대접(눈 마주침 거부, 대화 단절, 애정표현이나 섹스 없음 등등..)을 받고도 곁에 남아 그제야 온순하게 “가정 지키기 모드”에 돌입한 한국인 아내가 만만해지기 시작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개인주의적 문화 + 독립적 자아상에 따라오는 또 한 가지, “기질적 자아상”을 보자. 이 관점에 따르면, 사람은 고쳐서 쓰는 것이 아니라 타고 난 모습 그대로 존중되어야 한다. 아내랑 다툼이 잦아지며 잘 안 맞는다 싶어 지면, 독일인 남편은 아내와 내가 서로 고쳐가며 맞춰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보다 애당초 서로 안 맞는 것을 모르고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본다. 그래서 굳이 피곤하게 부딪히고 싸우며 맞춰나가느니 나가서 본인과 잘 맞는 다른 여자를 찾고 싶어 진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반면, 집단주의적 문화 + 상호 의존적 자아상에 맞는 “입체적 자아상”을 가진 한국인 아내는, 노력하면 나아질 수 있는데 서로 양보하고 배려할 생각은 안 하고 유부남 주제에 자기랑 맞는 여자 타령이나 하고 있는 뻔뻔한 남편이 이해가 될 리 없다. 겨우 그런 사소한 일 따위로 자신에게 애정이 떠났다는 남편이 어이가 없기도 하고, 그래서 이혼을 하자는 말은 더더욱 이해가 안 된다. 이게 이혼의 사유가 된단 말인가?



독일에서는 사랑에 나이가 별 상관없다. 나이로 존대와 반말을 구분하는 문화가 없으니 초면에 대화를 나누는데도 어려움이 없고, 나이로 무시당하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등 나이에 구애받을 일이 적다. 그래서 독일 사람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이성과의 만남의 기회도 활짝 열려있으며, 결혼을 안 해도 꾸준히 이성교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나이 먹고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덜하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매력적이라 느끼는 이성 간의 플러팅은 이 독일 사회에서 기본값이다.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머리가 하얀 두 노인이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걷거나 키스를 하는 모습이 낭만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그들이 노인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백년해로한 부부라는 보장은 없다. 그럴 수도 있지만, 사귄 지 두 달 된 커플일 수도 있고 10년 전 만나 재혼한 커플일 수도 있다. 실제로 40대, 50대, 60대, 70대 할 것 없이 건강만 허락한다면 다들 연애도 하고 섹스도 하고, 결혼도 한다.








헤어질 때의 정서적 타격의 차이도 보자.





한국인인 당신이 독일인 남편과 헤어지게 되면 왼쪽에 보이는 것처럼 남편과 겹쳐진 당신의 일부를 남편이 뜯어가는 것과 같다. 아플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는 시댁 식구들, 남편의 친구들과 당신이 맺은 정서적인 관계들도 포함되어 있다. 남편 쪽 사람이었던 그들이 나와 겹쳐졌던 부분들을 다 뜯어가고 나면 나는 이제 배신감에 치를 떨고 너덜너덜해진다.



게다가 내부 그룹과 외부 그룹이 닫혀 있는 것처럼, 헤어지더라도 남편은 나에게 완전한 남이 될 수 없다. 여전히 아이의 아빠이기 때문이다. 이혼이 이렇게 빨리 진행되는 것도 감당이 안되고 마음 아픈데, 헤어진다고 칼 같이 잔인하게 내 이속만 챙기는 것도 차마 할 짓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남편이 하는 말에 오락가락하기 쉽다. 한국인들이 이혼남, 이혼녀와 연애할 때 그들의 전처, 전남편의 존재와 교류를 쉽게 인정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내가 사람 보고 결혼했지 돈 보고 결혼했나? 돈 준다고 나가라는 남편이 너무 자존심이 상한다. 그까짓 돈 안 받아도 좋으니 나는 내 가정을 지키고 싶다.(실제로 상담 중에 한국인 아내들로부터 많이 듣는 말이다.)



반면, 독일인인 당신의 남편은 오른쪽과 같다. 당신이 여자 친구였을 때에도, 아내였을 때에도, 그리고 지금처럼 헤어질 때에도 당신은 남편과 닿아있는 거리만 달라졌을 뿐이다. 늘 당신과 분리되어 독립된 주체로서의 자신을 놓아본 적이 없는 남편은 헤어져도 큰 타격이 없다. 슬프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심리적 충격이 당신에 비해 현저히 적을 거라는 것이다.



생활비를 거부하고 자존심을 지키려는 당당한 당신의 모습을 보고 “아, 그래도 내가 돈 밝히는 속물이 아니라 꽤 괜찮은 여자랑 살았구나.” 싶은 마음에 존경심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역시나 자기가 가진 권리도 챙길 줄 모르는 바보구나. 당장 생계가 막막하면서도 저러는 걸 보니 어디 돈 나올 구멍이 있는 게 분명하다.”하고 논리적 계산을 할 확률이 높다.



내부 그룹과 외부 그룹이 열려있기 때문에 더 이상 가족이 아닌 당신을 타인으로 밀어내는 게 어렵지 않다. 남편의 옆자리는 금세 다른 여자가 메꿀 것이다. 그의 가족들도 새 여자에 큰 거부감이 없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가꿔 나가는 성인 들인 만큼,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여자가 상간녀라 할 지라도 문제 되지 않는다.



상간녀라는 단어도 한국에나 있는 말이지 여기서 그 여자는 그냥 남편의 여자 친구이다. 부부 사이의 문제는 당신과 남편의 일이며, 남편의 주변 사람들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 남편이 당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확신한 순간부터 당신과의 불행한 부부 사이는 이미 끝난 것이기 때문에 남편의 가족들이 “불행했던 결혼 생활을 뒤로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은” 남편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혼하고 비참한 상황이 열릴 것 같은 당신의 입장도 거의 이해하기 어렵다. 독일에서는 이혼한 여자가 아이를 혼자 키우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 자체가 쉽지 않은 것이지, 이혼했다거나 이혼 가정의 아이가 흠이 되는 사회가 아니다. 이혼에 대한 책임나와 그녀 둘에게 있으며 죄책감은 왜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빠져나간 자리는 사회제도가 채워줄 것이며 그녀의 자리는 그녀 스스로 메꿔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적다 보니 끝이 없다. 이혼 뒤에 흘러가는 상황에 따른 문화 차이의 충격은 더 가관인데, 차차 하나씩 풀어나가기로 하자. 이러한 문화 차이는 같이 살 때는 잘 모른다. 파국으로 치닫기 전까지는 대부분 동상이몽이기 때문이다.



함께 살고 있고, 결혼생활이 유지되고 있다고 해서 그들이 대화가 잘 통하고 서로를 잘 안다는 뜻은 아니다. 그가 하는 행동을 나는 내 식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하는 행동을 그는 그의 식대로 받아들이는데 큰 이질감이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 그렇게 살아왔을 뿐이다.



“아는 변호사”라는 유튜버의 말마따나, 이혼이 진흙탕 싸움이 아니라 원래 진흙탕이었던 결혼생활이 이혼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나는 이 진흙탕이라는 말을 “문화 차이”로 바꿔도 별 반 다르지 않다고 본다.



외국생활을 오래 하고, 독일에서 결혼 생활을 오래 유지한 한국인 여성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모든 것을 겪고 넘어가는 과정이 조금 빠를 뿐이지 충격을 거치는 단계는 비슷비슷하다. 특히 외국에서 오래 산 사람들의 경우 한국을 떠났을 때의 시점에서 한국인 정서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2010년까지 한국에 살았던 나는 2010년 버전의 한국인인 것이다. (그래서 2021년의 한국은 나에게 낯설다. 여자들이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도 신기하고, 유튜브에 일반인들이 심지어 외국 남자와의 동거생활을 찍어 올리는 것이 놀랍다.) 외국에서 오래 산 한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내가 아는 2010년의 한국보다 더 옛날 한국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 가끔 놀라곤 한다.




이쯤에서 지난 글 속의 실험 결과를 보자.





그림의 왼쪽에서 보이는 것처럼 나처럼 망치를 제외시킨 사람들은 사물을 상호 간의 관계에 따라 구분한 것이고, 오른쪽처럼 통나무를 제외시킨 사람들은 사물을 개별적인 특징과 논리에 따라 구분한 것이다.




서로 간의 역할과 관계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에게 톱과 도끼는 통나무를 자르는데 쓰이는 것이니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지만, 망치는 생뚱맞다. 그러나 개별적인 특징을 분석해 논리적인 추론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연장 사이에 끼어있는 통나무가 생뚱맞아 보이는 것이다.



같은 사진을 독일인에게 보여주면 대부분 통나무를 제외시킨다. 반면 한국인에게 보여주면 절반 정도가 망치를 제외시킨다.



독일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은 이미 눈치챘겠지만,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 실험이 동서양의 사고 실험이 아니라 사실은 “정규 교육의 효과”에 대한 실험이라는 것이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집단이 그러한 집단에 비해 관계 중심적인 분류를 한다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망치를 고른 많은 한국인들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고, 통나무를 고른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정규 교육의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라는 뜻일까? 그렇지 않다. 나는 이것이 서구권의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들이 자신들의 가치관을 우위에 두고 동양인의 사고방식과 태도를 멋대로 해석한 시각이라고 해석한다.



이러한 동서양의 사고방식의 차이는 다음 실험에서 더 뚜렷하다.



팬더, 바나나, 원숭이 중에서 관계가 없는 하나를 제외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고르겠는가?










공대 나온 한국 친구들이 통나무를 연장 속에서 분류해내기는 쉬웠어도 이 셋 중에 팬더를 분류해내기란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다. 바나나와 원숭이는 우리에게 누가 봐도 짝꿍이기 때문이다.



압도적으로 팬더를 골라낸 나의 한국 친구들과 다르게 독일인 중에서 이 중에 팬더를 골라낸 사람은 단 한 명, 중문학을 전공하고 중국에서 2년 동안 살았던 경험이 있는 독일인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바나나를 골랐다.



이렇게 철저하게 논리 중심적인 독일인 남편과 그의 가족들이 한국인 아내인 당신의 관계 지향적인 가치관과 태도를 은연중에 폄하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전후 상황, 맥락을 고려한 배려, 이해, 양보, 겸손과 같은 관계 중심적 가치들이 논리 중심의 사고방식에 의해 이런 식으로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그런 상황이 생길 때마다, 그런 취급을 받을 때마다 스스로 받아쳐야 한다는 것이다.



모처럼 가족끼리 모인 자리에서 시댁 식구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감정이 불쾌해졌더라도 그 자리에서 받아치는 대신 분위기가 상하지 않도록 참았다가 나중에 남편을 통해 넌지시 의사를 전달한 것은 당신의 자존감이 낮아서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집단을 위해 개인의 감정을 미뤄둘 줄 아는 동양의 미덕에서 비롯한 성숙한 태도라는 것을 당신의 독일인 남편에게 반드시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당신도 남편이 가진 서양식의 사고방식과 태도를 정확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서양인 남편과 나는 그저 빵을 먹는 사람과 밥을 먹는 사람, 포크를 쓰는 사람과 젓가락을 쓰는 사람 수준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다시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의 근본 자체가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점반드시 숙지해야만 한다.



두 사람이 이 간극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좁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서로가 원하는 방식으로 오해 없이 서로를 대하고 사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국제결혼은 잘 유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모쪼록 이 글이 독일을 비롯한 서구권 국가의 남성들과 결혼 또는 이혼을 준비하고 있는 한국인 여성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자료 출처 : “Einführung in die Kulturpsychologie” von Sebastian Bamberg in FH Bielefeld/ 2019 Wintersemester 수업자료 중 제4장 36쪽, 제5장 8-9쪽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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