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한다고 하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 중 하나가 “문화 차이”다. 국제결혼이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자라온 두 사람의 결합을 가리키는 이상 따라올 수밖에 없는 이 “문화 차이”는 꼭, 원튼 원치 않튼 받아가야 하는 1+1 행사상품 같다.
주변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같은 한국인끼리 결혼해도 양가의 가풍이 달라 부딪히는 게 일상이라던데,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양보하고 노력하면 되는 거 아닐까? 이렇게 사랑하고, 마음이 잘 맞는데 정말 “문화 차이”라는 것이 우려해야 할 만큼 큰 일일까? 싶기도 하다.
문화가 다른 만큼 어느 정도 부딪히리라는 것은 당연히 예상하면서도, 정작 그 “문화 차이”라는 것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란 어렵다. 그저 막연히 서양 남자들은 가정적이고 자상하다더라, 그런데 또 자기중심적이기도 하다더라 정도의 풍문으로 대략 짐작할 뿐이다.
이러한 “문화 차이”가 왜 만들어지는 것이며, 어떤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발생하고, 그것이 다시 그/그녀와 나의 결혼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 두 사람 모두 정확하게 인지하고 결혼하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
오늘은 이혼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독일인 전 남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 내가, 동서양의 문화 차이를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독일 생활 전반에 적용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던 문화심리학 수업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한다.
그전에 간단한 실험을 해보자! 아래 그림을 보면, 네 가지 사물이 있다. 이 네 가지 사물 중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면 무엇일까?
문화 심리학 수업 때 질문으로 던져진 이 물음에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망치를 제외시켰다. 교수가 제외시킨 사물에 따라 학생들에게 손을 들게 시켰는데 100명이 넘는 학생들 중에 나처럼 망치를 제외시킨 학생들은 서너 명 안짝이었다.
나는 손을 들고 순간 얼굴이 빨개졌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내가 뭘 놓쳤나?’ 싶은 순간 다음 학생들이 무더기로 손을 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통나무를 제외시켰다고 했다. ‘못도 없는 상황에서 망치를 어떻게 쓴다는 거지? IQ 테스트 같은 건가?’ 싶은 생각이 들면서 분류기준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다양한 문화들을 집단주의와 개인주의라는 두 가지 관점으로 나눠 설명할 수 있다. 집단주의적인 문화란, 상호 의존적인 자아상에 초점을 맞춰 긴밀한 관계 나 조직 내의 멤버십 등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반면 개인주의적인 문화에서는 독립적인 자아상에 초점을 맞춰 고유성과자주성을 가치 있게 여기는 특성을 지닌다.
“상호 의존적 자아상”이란 무엇일까? 독일어로 Interdependente Selbstsicht라고 쓰는 상호 의존적 자아상이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많이 의식하며, 보통 “대상으로서의 자의식”을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상호 의존적 자아상을 가진 사람이라면 마치 내가 이 세상을 통해 평가받고 있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나 자신을 사회적 대상이라는 하나의 객체로서 경험하게 된다.
그와 반대되는 “독립적 자아상”이란, Independente Selbstsicht라고 쓰며 타인이 나를 판단하는 것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흔히 “주관적인 자의식”을 갖는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보다 내가 세상을 탐색하고 발견하는데 더 큰 관심이 있다.
이번에는 이와 관련 있는 두 가지 자아 이론(Selbst-Theorien)을 살펴보자.
Inkrementelle Selbst-Theorien과Wesens (Entity) Selbst-Theorien 이 있다. Inkrement 가 “증가”라는 뜻을 가진 이 자아 이론은 인간의 능력이 입체적이라서 노력으로 그것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다. (전문 번역된 용어를 모르므로 편의상 ‘입체적 자아 이론’이라고 하자.) 이것은 상호 의존적 자아상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반면 Wesen(Entity)가 “천성, 타고난 기질”을 뜻하는 두 번째 자아 이론은 인간의 능력이 이미 상당 부분 정해져 있어서, 자신의 타고난 기질이 그저 반영되는 것일 뿐이라는 확신이다. (역시 편의상 ‘기질적 자아 이론’이라고 하자.) 보통 독립적 자아상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다.
아래 그림을 살펴보자.
동양 문화권의 “상호 의존적”인 자아상
이것은 상호 의존적 자아상과 이러한 자아상을 가진 사람이 속한 세상의 모습이다.
중심에 있는 나(Individual)라는 원에 주변의 친구, 엄마, 형제가 겹쳐져있는 부분이 보일 것이다. 나는 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친구나 가족의 일부이기도 하다.
심지어 온전한 나의 자아를 뜻하는 x는 소문자이며, 친구로서의 나, 엄마의 아들로서의 나, 동생의 형으로서의 나라는 자아는 대문자 X이다. 게다가 이렇게 여러 상호작용의 관계 속에 만들어진 “나”라는 존재마저도 온전한 실선이 아닌 점선이다. 서로 간의 왕래 또는 침범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내가 사는 세상은 내부 그룹과 외부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일단 누군가 나의 내부 그룹으로 들어오면 언제든 나와 겹칠 만큼 친밀한 관계가 될 수 있는 영역에 놓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외부 그룹과는 그 공간이 실선으로 철저하게 닫혀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걸러져 언젠가 잠정적 나의 일부가 될지도 모르는 이 내부 그룹의 사람들이 나에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조금 알고 지내는 지인(Acquaintance)도 내부 그룹에 들어간다. 이 지인은 아직 나와 서로 겹칠 정도로 친밀한 사이는 아니지만 점선이기 때문에 더 친해지면 언제든 나의 일부가 될 수 있다.
반면 타인(Stranger)을 보자. 그들은 이 사회를 이루고 있는 다른 모든 개인이 그러하듯, 그 존재 자체는 언제든 영역을 침범당할 수 있는 점선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나의 세계에서는 외부 그룹으로 분류되어 실선으로 닫혀있다. 언젠가 내가 그 사람을 나의 내부 그룹으로 인정하면 들어올 수도 있겠지만, 실선인 만큼 진입장벽이 높다.
이들에게 이 세상은 나와 타인이 아니라 내가 속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뉘는 것이다.
이러한 자아상은 보통 집단주의가 발달한 동양 문화권에서 만들어지며, 이것은 다시 입체적 자아 이론과 연결된다. 다시 말해, 한국인인 당신의 정서를 지배하고 있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서양인 배우자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는 정서와 그들이 나고 자란 세상의 기본적인 모습은 어떨까?
서양 문화권의 “독립적”인 자아상
얼핏 보기에 내부 그룹과 외부그룹으로 나누어 지며, 내부 그룹에 가족, 친구, 지인들이 속해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를 바 없어보인다. 그러나 “나”라는 존재가 상당히 두드러지며, 내부 그룹에 속할지라도 개인끼리 서로 겹치는 부분 없이 제각각 실선으로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다. 가족이라 할지라도 “나”라는 존재를 침범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심지어 내부 그룹 안에서 크기도 내가 가장 크다. 상호 의존적 자아상에서 구성원들과의 공통분모를 제외하고 남은 온전한 나의 모습만 놓고 비교해보면 "나"라는 존재가 이들에게 얼마나 큰 지 감이 올 것이다.
나의 내면은 대문자 X라는 자아로 가득 차있다. 얼핏 친해 보이는 친구지만 작은 틈이 보이는가? 그렇다. 가족과 친구는 나와 심리적 경계를 맞댈 수 있느냐 없느냐로 나눠지는 것이다.
반면, 내부 그룹과 외부 그룹은 활짝 열려있다. 어차피 내가 아닌 타인이라면, 그것이 가족이든 생판 모르는 남이든 거리만 약간 다를 뿐 내가 속한 세상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이들에게 세상은 내가 속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가 아닌 타자들로 나뉜다.
여기서 우리는 왜 서양인들이 길 가다 만나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엄마나 친구나, 낯선 행인이나 나로부터 거리감만 다를 뿐 기본적으로 내가 사는 세상에 함께 사는 것은 똑같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정서로는 내부 그룹과 외부 그룹이 닫혀있기 때문에 서로 모르는 사이인 행인은 내부 그룹에 속하지 않은 무의미한 존재이다. 그러니 인사를 하는 행위가 이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에 살면서 서양인과 서양 문화를 간접적으로만 경험해 본 사람, 해외여행이나 유학생활로 그들을 직접 경험해 본 사람, 국제 연애로 그들과 일대일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 혼인을 통해 그들과 가족이 된 사람, 그리고 나처럼 이 모든 경험을 거친 뒤 메타인지적 관점에서 고찰해 볼 수 있는 사람….
여기까지 잘 따라왔다면 이제 여러분은 위에서 언급한 사람들 중 한 명이 되어 머릿속에 특정 인물들을 떠올리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할 것이다.
물론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는 우리가 사는 복잡 다양한 세상을 간편하게 이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보조 장치 중 하나일 뿐 모든 곳에 적용되는 절대불변의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미리 전제한다.
다음 글에서는 위에 소개된 이 이분법적인 필터로 국제연애 또는 국제결혼이라는 관계를 커피 내리듯 한번 내려줄 것이다. 필터를 통과해 향기로운 커피로 잔에 담기지 못하고 필터에 남는 찌꺼기, 나는 이것을 바로 우리가 당면하는 “문화 차이”라고 본다.
이 커피 찌꺼기가 국제결혼과 이혼에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실제 사례를 통해서 알아보자.
*자료 출처 : “Einführung in die Kulturpsychologie” von Sebastian Bamberg in FH Bielefeld/ 2019 Wintersemester 수업자료 중 제4장 36쪽, 제5장 8-9쪽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