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상대방 국가의 문화와 정서적 맥락에서 상황을 해석해야 하는 이유
상담을 하다 보면 가장 먼저 두드러지는 내담자들의 공통점은 이혼 진행 중인 외국인 남편을 대하는 자세이다. 그녀들은 대부분 한국인의 정서로 남편과 관련된 상황을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대응한다. 마치 이혼이 진행되고 있는 이 곳이 한국이고, 남편이 한국인의 정서를 가진 것처럼.
이러한 접근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이것이 왜 문제가 될까?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정보의 올바른 취사선택과 정보의 올바른 해석 그리고 적절한 대응, 이 세 가지에 혼선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정보의 취사선택에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독일인 남편이 이혼을 요구했고, 그가 외도 중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하자. 대부분의 한국인 아내들은 남편의 외도 사실에 분개하고 상간녀와의 뻔뻔스러운 행보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경험상 독일에서 부부 중 한쪽이 외도를 했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 식었고, 부부 사이가 이미 파탄난 관계라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혼과 재산분할, 심지어 양육권에도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바람을 피웠다는 것이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아니라는 뜻과 직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상담 케이스에서 남편이 결국 외도를 한 사실이 밝혀졌지만, 그로 인한 위자료를 받은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어떤 케이스는 이혼이 성립하기도 전에 상간녀가 출산을 했는데도 말이다.
그녀가 너보다 뭐가 얼마나 잘나고 훌륭한 여자인지 지껄이는 남편의 개소리에 휘둘리는 대신 왜 남편이 변호사를 각자 따로 구하지 말고 합의 이혼하자고 하는지, 왜 먼저 생활비 액수를 자진해서 제시하는지와 같은 정보가 가진 의미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문제들은 거의 재산분할과 양육권이다. 그러니 힘들더라도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채 그 부분에 관련된 정보에 집중해야 한다.
두 번째, 받아들인 정보의 해석에 문제가 생긴다.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고 이혼 과정이 진행되면 대부분의 한국인 여성들은 남편의 오락가락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마음의 갈등을 겪는 과정을 거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히 운명처럼 사랑에 빠져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결혼했고, 내 남편, 우리 아이들의 아빠이자 우리는 가족이라 믿고 산 세월이 있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한국인의 정서다. 그래서 하루아침에 달라진 남편의 태도를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워한다. 때로는,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 말이나 이젠 너한테 남은 마음이 없다는 말을 듣고도 ‘이 남자가 나한테 정 떼려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독일에서 나고 자라 독일인의 정서로 길러진 독일 남자들이다. 정을 뗀다는 개념도 없을뿐더러, 있는 여자를 없다고 하면 했지 없는 여자를 있다고 하는 것은 이들의 정서로 보면 잘 이해하기 어렵다.
경험상, 그들이 “너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 “라고 했다면 정말 그렇게 받아들이면 된다. 덧붙여 대부분의 경우 그 속에 숨은 말은, ‘정을 떼겠다, 너를 상처주겠다‘가 아니라
‘어제까지 한 이불을 덮었던 어쨌건 이제 나는 너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야. 나에게 너는 지금부터 내 재산을 양심도 없이 반땡해가려는 Crazy bitch 일 뿐이니 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나를 방어하겠어!’
라고 해석하는 것이 차라리 문맥상 더 어울린다.
세 번째, 적절하지 않은 대응을 하게 된다.
독일인들에게 당황스럽게 비칠 수 있는 한국인의 정서중 하나는, 새 여자와 알콩달콩 중인 남편에게 바람을 용서할 테니 반성문을 쓰라고 한다거나 핸디캡을 요구하는 것이다. 물론 한국인에게는 ‘가정을 지킨다’라는 개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독일인들은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거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를 (그것이 설사 본인의 자녀일지라도) 상당히 기피하기 때문에 한국인 아내의 이러한 태도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뭔 소리야. 내가 사랑하는 건 이제 네가 아니라 그 여자라는 건데 네가 나를 용서하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어?’ 이렇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독일 남자가 자진해서 그러겠다고 한다면, 나는 그 남자가 동양의 문화와 동양 여자의 정서를 상당히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이라 추측한다.
내가 했던 가장 어리석은 대응은 남편의 직장을 찾아가 남편의 불륜사실을 아주 소심하게 동료에게 전달한 것이다. 그로 인해 나는 남편을 부양의 의무로부터 해방시켜 줄 뻔했다.
요즘 상간녀를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하는데, 독일에서 공과 사는 매우 분명해서 사적인 애정문제를 공적인 직장에 끌어 들일 수 없다. 상간녀와 남편을 망신 주고 이런 문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유책주의를 따르는 한국에서는 이혼의 책임이 있는 사람이 이혼소송을 제기할 수 없지만, 파탄주의를 따르는 독일은 둘 중 한 명이라도 이혼을 원하는 이상 이혼의 책임이나 원인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한국이 아닌 곳에서 이혼을 진행 중인 사람들은 꼭 명심하길 바란다. 내가 갖고 있는 문화와 정서가 아닌, 각자 살고 있는 나라의 국민정서와 법에 맞게 대응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밖에도 남편이 한국에 머리도 식힐 겸 휴가를 다녀오라고 한다거나, 부동산은 내가 알아서 처리한다거나, 너는 독일어를 잘 못하니 이혼 서류를 대신 작성해주겠다던가 하는 말을 하면 그것을 믿고 얼떨결에 남편이 하자는 대로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왜 그런 말에 넘어가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따로 분류해서 쓰겠다.)
독일인 남편이 이혼을 하기로 했다면 당신과 남편 사이는 이미 끝났다고 봐야 한다. 이혼하고 다시 결혼하는 한이 있더라도 남편 입에서 이혼이라는 말이 나온 이상 이혼은 진행되게 되어있다. 그 말은 남편은 앞으로 자기 앞가림만을 할 확률이 크니 당신도 냉정하게 본인의 권리에만 집중해서 일을 진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10년, 20년씩 잘 살고도 헤어질 때 하루아침에 돌변하는 독일인 남편의 모습에 거의 대부분의 한국인 아내들은 처음에 큰 충격을 받고 정신을 못 차린다. 허나 그것이 그들의 정서이다.
‘나‘와 ‘너’의 구분이 분명한 그들은 결혼생활 중에도 꾸준히 ‘나’라는 존재를 지켜오며, 때가 되었을 때 ‘너‘라는 부분을 탁 잘라내는 것이 어렵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가족으로 묶인 순간부터 ‘내가 너고 네가 나이며 그것이 우리’라는 유대감으로 똘똘 뭉쳐 살아왔다고 믿었을 한국인 여성들은 그것이 비록 허울만 남은 남편의 껍데기일지라도 하루아침에 내던지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이혼과 같은 응급상황에 처하면 유럽 물 먹고 쿨해진 나의 글로벌한 면이 나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뼛속에 각인된 한국인의 정서가 나를 지탱해준다.
재미있는 것은, 된장찌개 맛있다며 불편한 양반다리를 하고 이상하게 앉아 서툰 수저질을 하던, 어설픈 말투로 ‘아룡하- 쎄요!’를 외치며 귀여운 독일 사위 노릇을 하던 독일인 남편 역시 이혼 앞에서 백 프로 독일 남자로 돌변해 매섭게 우리를 대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두려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혼 과정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은 이혼을 요구한 그나 요구받은 나나 매한가지이다. 저 독일 남자가, 저 한국 여자가 무슨 생각을 할지, 어떻게 반응할지 피차 두려운 것이다.
이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에서 카테고리를 찾아 이 불확실성을 명쾌하게 분류하고 예측하고 싶어 진다. 그 말인즉슨, 독일 남자는 본인이 가진 압도적인 데이터, 즉 독일 사회에서 독일 여성들이 이혼에 어떻게 대처하고 그 후 독일 남자들이 어떻게 K.O. 되는지를 바탕으로 당신의 행보를 예측하고 우위를 점하려 할 것이며, 한국 여성인 당신은 당신이 가진 압도적인 데이터, 즉 한국 사회에서 한국 남성들이 이혼에 대처하는 것을 바탕으로 ‘그래도 애 아빠인데 어떻게’ 내지는 ‘지 자식 엄마인 나를 설마 그렇게까지’와 같은 것들을 상식이라 믿고 독일인 남편의 행보를 예측하는 것이다.
두 사람이 부부로 얼마나 오래 살을 맞대고 살았건, 당신이 독일 여자가 아니듯
그도 한국 남자가 아니다.
그러니 한독 가정의 한국인 언니라던가 한국에 있는 토종 한국인 가족이나 친구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다.
차라리 그동안 독일 사회 속에서 보고 느꼈던 다른 독일인들에 대한 본인의 기억과 느낌을 되새겨 지금 상황에 적용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 그것이 당신과 이혼을 원하는 독일인 남편의 본질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이럴 때 내가 권하는 방법은, 전후 사정 차치하고 ‘이혼’이라는 주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면 최대한 빨리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다.
아직 상황이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고, 이혼을 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데 변호사 상담 비용이 부담스럽다거나 하는 이유로 변호사 만나는 것을 미루거나 이혼의 시기를 몇 달 미루다가 나중에 남편이 완벽하게 무장을 끝낸 뒤 이혼을 밀어붙일 때 맥없이 처절하게 당하는 케이스를 여전히 만난다.
앞서 말했듯 독일인 남편의 입에서 “이혼하자”라는 말이 나왔다면 그 이혼은 진행된다고 보는 것이 맞다.
서류나 법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치밀하다 못해 잔인하기까지 한 그들의 정서상 “이혼”이라는 법률용어는 절대 감정적으로 나오는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느끼는 “우리 차라리 이혼해.” 정도의 정서를 가진 표현은 “나 너랑 사는 게 별로 행복하지 않아” 정도라고 보인다. “널 사랑하지 않아.” 까지 왔다면 이미 이 관계가 거의 끝났다는 것을 감지해야 하며, 이혼하자는 말은 ‘나는 이미 심적, 법적 준비를 다 끝냈으니 사인만 해라.’라는 뜻에 가깝다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보고 느낀 바로는 그렇다. 실제로 이혼하자는 말이 나온 당일, 독일 남편이 바로 짐을 싸 나가는 경우도 흔하다.
다시 맥락으로 돌아가 보자. 변호사와 상담하며 궁금한 것, 본인이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것들도 물어보되, 변호사의 질문내용도 빠짐없이 받아 적어야 한다.
변호사가 관심 있게 물어보는 것이 바로 내 이혼 사건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다들 분하고 억울한 것이 한가득이라 변호사가 정작 중요한 것에는 관심이 없다고 토로하기도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변호사의 눈‘이라는 것이 있다.
그들은 법률적으로 의미가 있는 정보만을 받아들이는 데에 최적화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피가 거꾸로 솟아있는 당신 멘탈의 대척점에 서서 당신을 가장 균형있게 보완해줄 수 있다.
그러므로 본인의 그러한 상태를 감안하여 변호사의 질문을 메모한 내용을 여러 번 읽으며 독일에서 법률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지는 정보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남편으로부터 쏟아지는 정보의 쓰레기 더미 속에서 그것이 가진 의미의 유무를 가려내는 눈을 기르기 바란다.
사랑할 때는 누구보다 뜨겁고 순수하지만, 사랑이 식어버리면 차갑다 못해 싸늘해지는 것.
안타깝지만 그것도 우리가 사랑했던 그네들 정서의 한 면이다.
이 모든 변화와 그로 인한 충격 속에서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이 물론 쉽진 않겠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서 현지인과 현지 언어로 진행되는 이혼소송을 유리하게 끌고 가는 것은 더 어렵다.
그러니 힘들더라도, 그래서 때로는 이성의 끈을 놓게 되는 순간이 있더라도 마음 가다듬고 그 끈 다시 부여잡기 바란다. 비틀거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가다 보면 상황은 언젠가 나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