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 안내서’를 들어가며

by 뿌리와 날개

2015년 여름, 블로그를 통해 나의 이혼 과정을 실시간으로 공개하면서부터 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사는 이혼한, 또는 이혼 위기에 놓인 한국인 여성들로부터 메시지들을 받기 시작했다.


독일 현지에서 당장 이혼에 대한 급박한 도움이 필요해 그렇게 찾아다녀도 없던 외국 남자와의 이혼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내가 나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공개했기 때문에 그들도 차마 알리지 못했던 자신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나에게 개인적으로 털어놓으며 동병상련의 처지에서 힘을 주고자 했을 것이다.


그런 메시지들은 대부분 ‘나도 그런 일을 당했지만 잘 살아가고 있으니 힘내시라’하는 내용이었지만, ‘나도 지금 비슷한 처지에 처했는데 어떻게 도와주실 수 없겠는가’하는 내용도 적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나도 충격에 빠져 있었고,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고 있던 때라 그런 도움 요청에 도저히 일일이 응답할 수 없었다.


그때마다 나는, 언젠가 내가 조금 살만해지는 날이 오면 반드시 내 다음 사람들을 위해 경험하고 배운 이 모든 것들을 이정표처럼 만들어 길목마다 세워주리라 결심했다.


그런 일들이 몇 년 간 쌓이고 쌓여 2020년 봄, 코로나와 함께 모든 일상이 정지된 그때 나는 독일인 남편과의 이혼을 진행 중인 한국 여성들을 위해 온라인과 전화로 상담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어려울 때 다른 사람들로부터 십시일반 도움을 받았듯, 나 역시 국제이혼 과정에서 힘든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시작한 이 일은 1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나,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일종의 책임감과 부채감이 더해진 사명감으로 시작했던 이 일은 녹록지 않은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국제결혼과 파경’이라는 큰 틀은 같았으나 사람이 열이면, 상황도 열 가지로 모두 달랐다.


공감과 위로가 필요한 이들도 있었고, 문제 해결에 실질적 도움이 될만한 전문적 도움(대부분의 경우 법적 자문)이 필요한 이들도 있었으며, 당장 오늘 잘 곳이 없고 먹을 것이 없어 긴급한 구조가 필요한 이들도 있었다.


상담이 아니라 정신건강의학과 관련한 전문적 테라피가 필요한 경우도 있었다. 일회성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한 경우도 많았다.


독일인과의 이혼을 진행 중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려던 내 단순한 의도 역시 빗나갔다.


독일 땅에서 이혼하는 한국인 부부, 독일과 한국 양국에서 이혼을 진행하는 한독 부부, 독일인이 아닌 외국인 배우자와 독일에서 이혼하는 경우, 독일인 배우자와 제3 국에서 이혼하는 경우, 혼인 없이 자녀만 출산한 경우 등 상황이 천차만별이었기 때문이다.


점차 상담의 틀을 잡고, 관련 기관에서의 실습 및 전문가의 자문 등으로 부족한 부분을 충당하며 나름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내 개인의 역량으로 혼자서 충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사람을 돕는 일에 사람의 마음이 빠질 수는 없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이기에 이 일을 계속하려면 정식으로 상담 관련 공부를 하고 자격을 취득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흥미로운 것은 상담을 통해 지켜본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쓰는 글과 그 안에 담긴 정보 및 격려로 이미 충분히 길을 잘 찾아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비록 내 도움이 전문적이지는 아닐지라도 그 안에서 자신에게 도움이 될만한 부분을 적극적으로 파악하고 적용하며 도생의 길을 찾아갔다.


지금 당장의 현실이 어렵고 좌절스러웠을 뿐 그들은 이미 총명하고, 현명했으며 또한 강인했다. 그런 이들은 굳이 나의 상담 없이도 충분해 보였다.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아주 구체적이고 시급한 법적 자문이나 통번역 자문이 필요하거나 또는 정신적 및 신체적 건강상의 어려움을 수반했다.


내 개인이 자투리 시간을 내어 전화로 상담봉사를 하는 선에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현 거주지에서 실질적이고 전문적인 도움의 개입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런 이들에게는 나의 상담이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어느새 나는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상담사로서 전문적인 자격을 갖출 것이냐, 현재 내 삶을 지속해나가며 글을 계속 쓸 것이냐.


상담사로서 자격을 갖춘다 해도 직접 기관에서 실습을 해보니 현실적인 문제가 많았다. 일의 특성상 여러 공공기관 및 관련 단체들과의 연계시스템이 중요한데, 이러한 인프라 구축은 내가 하루아침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미 시스템이 갖춰진 기관에 취직을 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이곳이 독일인 이상 수요가 턱없이 적은 한국인들만을 상대로 일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또 한국인들을 상대한다고 해도 결국 내가 사는 도시에 한 할 수밖에 없다.








내가 가진 작은 경험과 지혜를 자투리 시간에 나누고자 시작한 일이었으나 깊이 들어갈수록 본래의 의도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을 느꼈다. 게다가 이것은 나의 선한 의도만으로는 결코 지속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담자들에게 무료로 상담을 하는 대신, 그들의 동의 하에 상담 내용을 개인적 학업의 자료로 쓰거나 다른 국제커플들을 위한 공개자료로 활용하려고 했던 기존의 계획도 무산되었다.


타인의 개인사를 발설하는 행위 자체가 상담의 기본 원칙에 위배되는 일이다.


당사자의 동의를 얻고 최대한 사생활을 보호한다고 한들 독일 안의 이 작은 한인사회에서 한번 새어나간 이야기가 앞으로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이 더 이상 상처받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밀 유지와 사생활 보호가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이미 나의 많은 개인적인 이야기가 공개된 상황에서 ‘상담’이라는 일을 하다 보니 그로 인해 예상치 못했던 난감한 문제와 어려움이 따랐다.


나의 깊은 내면과 사색, 개인사를 오픈하는 수필 쓰기와 내담자와 거리를 둬야 하는 상담은, 더군다나 비전문가인 내 입장에서는 양립시키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것은 내담자들에게도 힘들어 보였다. 이 일을 지속하려면 글 쓰는 일은 접고 상담사로서 자격만을 갖춰나가야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담봉사를 시작했던 본래의 의도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은 물론, 내 삶의 궤적을 크게 바꿔야 했다.


무엇보다 나는 상담이 아니라 글을 쓰고 싶었다. 상담도 훌륭한 일이지만, 나는 글 쓰는 일을 더 사랑하고 또 더 잘할 수 있었다.


오랜 고민과 상의 끝에 나는 개인적인 상담보다 글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효과적이고 본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으며 그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상담을 멈추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에는, 오랫동안 내 안에 머물렀던 동병상련의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과 부채감이 사라져 있었다.


현재 나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가며, 때때로 내가 경험하고 배운 것들을 글로 나눌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이제,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국제결혼 및 이혼에 대한 글을 정리해 책으로 엮으려 한다.


결혼과 이혼을 한 권에 모두 담기에는 내용이 많아서, 이 책에서는 먼저 국제결혼을 준비하거나 이미 결혼 생활 중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위주로 다루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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