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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와날개 Jun 17. 2023

동양 vs 서양, 내 사고방식은 어느 쪽?

제5탄 국제결혼과 동서양 문화차이

국제부부가 이혼할 때 정서적 타격도에 대한 차이, 어떻게 보셨나요? 2009년에 나온 <EBS 다큐프라임 동과서 1, 2편>을 보시면 이 동서양의 서로 다른 자아상에 근거한 문화차이를 더 확실히 보실 수 있습니다.


저는 결혼 전에 이 다큐를 굉장히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고 잊고 살다가 이번에 이 영상을 찍게 되면서 여러분께 링크를 소개해드리기 위해 다시 한번 찾아봤습니다. 영상이 길긴 한데 아마 재미있으실 거예요. 관심 있으신 분들은 댓글창과 설명란에 링크 올려뒀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여름방학 때 여유되면 다시 한번 보려고 해요. 예전에 봤을 때는 유럽생활 전이었는데 이제는 벌써 유럽생활 12년 차라 아마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오늘은 그래서 동서양의 문화차이에 관한 간단한 사고 실험을 통해서 그 의미를 해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그림을 보면, 네 가지 사물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어울리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면 무엇일까요?



 문화 심리학 수업에서 이 질문이 나왔을 때 저는 고민할 것도 없이 망치를 골랐거든요. 교수님께서 이 제외시킨 사물에 따라서 학생들에게도 손을 들게 하셨는데, 그 대강의실에 족히 100명은 넘는 학생들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처럼 망치를 제외시킨 학생들은 서너 명 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순간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뭐지?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내가 뭘 놓쳤나? 싶어 가지고 당황하는 순간, 다음 사물에서 학생들이 무더기로 손을 들기 시작하는 거예요.


뭐였을까요? 네. 바로 통나무였습니다. 저는 ‘못도 없는 상황에서 망치를 어떻게 쓴다는 거지? IQ테스트 같은 건가?’ 싶은 생각이 들면서 분류기준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넓은 세상 속 다양한 문화들을 크게 집단주의와 개인주의라는 두 가지 관점으로 나눠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집단주의적 문화라는 건, 상호의존적 자아상에 초점을 맞춰서 긴밀한 관계나 조직 내의 멤버십 등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를 말합니다. 반면에 개인주의적인 문화에서는 독립적인 자아상에 초점을 맞춰서 고유성과 자주성을 가치 있게 여기는 특성을 지닙니다.


상호의존적 자아상이라는 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많이 의식하고, 보통 “대상으로서의 자의식”을 갖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호 의존적 자아상을 가진 사람이라면 마치 내가 이 세상을 통해 평가받고 있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나 자신을 사회적 대상이라는 하나의 객체로서 경험하게 되는 거예요. 내가 그냥 나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회 안에서,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거죠.


이것과 반대되는 독립적 자아상이라는 건, 타인이 나를 판단하는 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주관적 자의식”을 갖습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보다 내가 세상을 탐색하고 발견하는데 더 큰 관심이 있습니다.


이것과 관련 있는 두 가지 자아이론을 하나 더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독일어로는 Inkrementelle Selbst-Theorien과 Wesens(Entity) Selbst-Theorien이라고 부르는데, 저는 한국어로 전문 번역된 용어를 모르기 때문에 이 영상에서는 편의상 입체적 자아이론과 기질적 자아이론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입체적 자아이론이라는 건, 인간의 능력이 입체적이라서 노력으로 그것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입체적 자아이론은 상호 의존적 자아상을 가진 사람들(동양인)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반면에 기질적 자아이론은 인간의 능력이 이미 상당 부분 정해져 있어서 자신의 타고난 기질이 그저 반영되는 것일 뿐이라는 확신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질적 자아이론은 보통 독립적 자아상을 가진 사람들(서양인)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지난 편의 그 벤 다이어그램을 볼까요?




동양 문화권을 보면, 중심에 나라는 자아가 있기는 한데, 아무와도 겹치지 않는 온전한 나는 소문자 x이고 오히려 친구나 가족의 일부로서의 내 자아는 대문자 X인 것이 보이십니까?


이렇게 상호의존적 자아상을 가진 사람들의 자아는 온전한 나로 있을 때보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맺어진 관계 속에서 맡은 역할로서의 자아가 더 크고 단단합니다.


제가 자랄 때까지만 해도 외동은 이기적이네, 사회성이 떨어지네! 하면서 외동아이에 대한 편견이 가득했었는데 요즘은 많이 사라졌겠죠? 그래도 비혼으로 혼자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을 동정하는 시선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그게 다 이런 관계 속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상호 의존적 자아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라서 그렇습니다.


동양 문화권과 대비되어 서구 문화권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나의 내면이 대문자 X로 가득 차 있다는 겁니다. 동양 문화권은 주변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생긴 집단 내 역할이 더 강하잖아요? 그런데 서양에서는 나 자체로 이렇게 파워풀한 거예요. 심지어 내집단 내에서 원의 크기도 가장 큽니다. 스스로 느끼는 나의 존재감이 막강하다는 거거든요.


쉽게 말하자면, 동양에서는 나도 나지만 우리 엄마 아들, 우리 엄마 딸, 우리 애들 엄마, 아빠라는 역할이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에 오롯이 “나”라는 한 인간보다 더 큰 존재감을 갖는데, 서양에서는 내가 누구 아들딸이고 누구 엄마, 아빠라는 것보다 나라는 사람이 항상 온전하게 나로 존재한다는 겁니다.


서양의 내집단에서, 왼쪽 위에 있는 친구는 원 사이의 틈이 조금 벌어져 있는 게 보이십니까? 이게 바로 심리적 거리를 뜻하는 거예요. 나와 내가 아닌 타자와의 친밀함은 피붙이나 부부 또는 가족이라는 이름, 같은 학교 친구들, 같은 나라 사람들이라는 이런 집단의 관점에서 맺어지는 게 아니라 바로 이 심리적 경계를 맞댈 수 있느냐 , 없느냐, 있다면 얼마나 가깝게 맞댈 수 있느냐로 나눠지는 겁니다.


그래서 독일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국가에 대한 소속감이 훨씬 덜한 측면이 있는 거예요.










이쯤 해서 앞서 말씀드린 사고실험의 결과를 알려드리자면, 그림의 왼쪽에서 보이는 것처럼 망치를 제외시킨 사람들은 사물을 상호 간의 관계에 따라 구분한 것이고, 오른쪽처럼 통나무를 제외시킨 사람들은 사물을 개별적인 특징과 논리에 따라서 구분한 겁니다.


서로 간의 역할과 관계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에게는 톱과 도끼는 통나무를 자르는데 쓰이는 것이니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지만, 망치는 쌩뚱맞죠. 그런데 개별적인 특징을 분석해 논리적 추론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연장들 사이에 끼어있는 통나무가 생뚱맞아 보이는 겁니다.


같은 사진을 보여줬을 때 대부분의 독일 학생들이 통나무를 제외시킨 반면, 한국인인 저를 포함한 상호 의존적 자아상을 가진 문화권에서 온 몇몇 학생들만 망치를 제외시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겁니다.


독일어를 할 줄 아시는 분들은 이미 눈치를 채셨겠지만,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 실험이 동서양의 사고방식 차이에 대한 실험이 아니라 사실은 “정규 교육의 효과“에 대한 실험이라는 점입니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집단이 그러한 집단에 비해서 관계 중심적인(동양적) 분류를 한다는 내용이죠.


그렇다면 저를 비롯해 망치를 골랐을 대부분의 동양인들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고, 통나무를 골랐을 대부분의 서양인들은 정규 교육의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라는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1976년에 행해진 이 실험이 2023년인 오늘날에는 어떻게 바뀌었는지 저는 모릅니다. 다만 저는 양쪽의 문화를 비교적 깊게 모두 경험한 입장에서 서구권의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들이 자신들의 가치관을 우위에 두고 동양인의 사고방식과 태도를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멋대로 해석한 시각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동서양의 사고방식 차이는 다음 실험에서 더 뚜렷해집니다.



이것은 <EBS스토리 배워서남줄랩>이라는 프로그램에서도 김경일 교수님께서 소개해주신 유명한 사고실험입니다. 자, 이 사진에서 판다, 원숭이, 바나나 중 관계가 없는 하나를 제외시킨다면 여러분은 어떤 걸 고르시겠습니까?


공대 나오신 한국분들이 통나무를 연장 속에서 분류해 내기는 쉬웠어도 이 셋 중에서 판다를 분류해 내기란 상당히 어려우셨을 겁니다. 왜냐하면 바나나와 원숭이는 우리에게 누가 봐도 짝꿍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사진을 독일 친구들에게 보여줬을 때 놀랍게도, 독일에서 중문학을 전공하고 중국에서 2년 동안 살았던 경험이 있는 독일 남자 한 명 빼고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바나나를 골랐습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논리 중심적인 서양인 남편과 그의 가족들이 한국인 아내의 관계 지향적인 가치관과 태도를 은연중에 폄하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전후 상황, 맥락을 고려한 배려, 이해, 양보, 겸손과 같은 관계 중심적 가치들은 논리 중심의 사고방식에 의해 이런 식으로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그런 상황이 생길 때마다, 그런 취급을 받을 때마다 스스로 받아칠 필요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겁니다.


그들이 나쁘거나 못돼서가 아니에요.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가버리면 서양인 배우자는 자기가 아는 선에서 식대로 해석해 버리게 됩니다.


모처럼 가족끼리 모인 자리에서 시댁 식구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감정이 불쾌해졌더라도 그 자리에서 받아치는 대신 분위기가 상하지 않도록 참았다가 나중에 남편을 통해 넌지시 의사를 전달한 것은 여러분의 자존감이 낮아서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집단과 그 순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위해서 개인의 감정을 미뤄둘 줄 아는 동양 특유의 미덕에서 비롯한 성숙한 태도라는 것을 여러분의 서양인 배우자에게 반드시 설명하셔야 한다는 겁니다.


더불어 여러분 역시도 서양인 배우자가 가진 서양식 사고방식과 태도를 정확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설사 그것이 문제를 불러일으키지 않더라도 정말 내가 생각하는 그 뜻으로 그 사람도 한 말과 행동인지 가끔씩 체크해 볼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자칫 동상이몽 격이 될 수 있습니다.


서양인 배우자와 나는 그저 주식으로 빵을 먹는 사람과 밥을 먹는 사람, 포크를 쓰는 사람과 젓가락 쓰는 사람 수준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다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의 근본 자체가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점을 숙지하고 있으셔야 합니다.








한국에 살면서 서양인과 서양 문화를 미디어로 간접 경험만 해 본 사람들, 해외여행이나 유학생활로 그들을 단시간이나마 직접 경험해 본 사람들, 국제연애나 결혼으로 그들과 일대일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거나 가족이 된 사람들, 그 사회로 이주해서 그 속에 섞여 많은 시행착오와 서러움을 겪으며 고군분투 중인 사람들, 그리고 그 모든 과정들을 지나 이제는 메타인지적 관점에서 두 문화를 여유 있게 고찰하기 시작한 사람들…


여기까지 잘 따라왔다면 이제 여러분들은 대부분의 경우에 위에서 언급한 사람들 중 한 명이 되어 머릿속에 여러분 주변의 특정 인물들을 떠올리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시게 될 겁니다.


물론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는 우리가 사는 복잡 다양한 세상을 간편하게 이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보조 장치 중 하나일 뿐 모든 곳에 천편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절대불변의 진리가 아님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채널에서 이런 장치가 필요한 이유는, 제 채널의 목적이 이렇게 갑작스러운 이혼통보와 동시에 찾아오는 엄청난 문화차이로 인해 길을 잃고 당황하는 분들에게 길잡이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밑도 끝도 없이, 이게 이 뜻입니다, 지금 여러분께서 처하신 상황이 이런 겁니다! 하면 잘 이해가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앞으로 채널을 운영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그런 사례들을 쉽게 설명해 드리기 위해서 빌드업을 해놓은 거예요.


제가 봤을 때 문화차이 다섯 편 정도면 기본기는 충분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이 기본기를 바탕으로 서양인과의 국제이혼에 대해서 더 심도 깊게 들어갈 예정이에요. 그럼 오늘도 제 영상이 많은 도움 되셨기를 바라면서 다음 영상에서 뵙겠습니다.


여러분의 구독과 좋아요는 세상 모든 한부모가정을 향한 자유입니다. 안녕!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생생한 영상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PQzGshCLwK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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